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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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변화는 여러 힘들이 모여서 생기는 것

이정일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9-30 11:05:18

집으로 가는 언덕길에 피어 있는 꽃들의 이름을 아는 대로 쓰라고 한다면 우리는 몇 개나 쓸 수 있을까. 우린 객관식 시험엔 강하지만 주관식 시험엔 취약하다. 아침 출근길 길을 걷다 보면 가게 문 앞에 피어 있는 작은 꽃들이 보인다. 누가 심었을 리 만무하지만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운동 삼아 개천을 따라 걷다 보면 깨진 벽 틈에 피어 있기도 하다. 꽃을 본다고 삶이 달라질 것도 없지만, 이런 꽃에 관심을 두는 이가 있다. 시인이다.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시 ‘늙은 꽃’에서 시인은 이 땅에서 적당히 피는 꽃은 없다고 단언한다. 꽃은 어디에서 피든 언제 피든 있는 힘을 다한다. 아마도 꽃이 아름다운 것은 저마다 최선을 다해 피어났기 때문이리라. 보는 이가 있든 홀로 피든, 길가에 있든 정원에 있든, 꽃들은 저마다 온 힘을 모아 생의 정수(精髓)를 피어 올린다. 꽃의 생애는 순간이지만 그 짧은 순간을 위해서 꽃은 최선을 다한다. 꽃을 보면 행복은 매일의 일상에서 만나는 사사로운 것들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바쁘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은 아닐 것

요즘은 시 한편 읽을 마음의 여유를 갖기 쉽지 않다. 다들 스마트 폰에 빠져 살기 때문이다. 스마트 폰을 핑계 삼았지만 시와 친해질 수 없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좀더 정직하게 말한다면 시를 읽어야 하는 자신만의 관점과 기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이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고전을 선뜻 읽게 되진 않는다. 시도 마찬가지다. 결국 뭔가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꽃처럼 노력해야 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를 깨달으며 살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하루는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허나 지식이 많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아닌 것처럼, 바쁘게 산다고 해서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진짜 모습은 내 안에 있을 때보단 타인들의 삶 속에 흩어져 있을 때가 더 많다.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진짜 모습은 그가 떠난 다음에 드러나는 법이다. 우리가 일상을 단번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해도 노력은 해야 한다. 꽃처럼.

실수하지 않으려면 한 번의 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장석주 시인이 시 ‘대추 한 알’에서 말했듯이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그 안엔 태풍도 몇 개, 천둥도 몇 개, 벼락도 몇 개 있었다. 열매를 맺기 위해 대추도 노력을 한 것이다. 꽃처럼 대추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려 집중하는 사람에겐 태풍과 천둥과 벼락마저 모두 꿈을 이루기 위한 선물로 변한다.

삶은 겸손을 배워가는 오랜 수업

각자가 원하는 삶과 현실 사이엔 간극이 있다. 메울 수 없는 이 차이에 붙잡히면 삶이 어두워진다. 환자들의 임종을 오랫동안 지켜본 간호사들은 인간은 죽음에 임박해서야 철이 든다고 고백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개는 일하는 데 바빠 자녀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대망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한 회한보다는 작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한 삶을 후회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겸손에 대한 오랜 수업이라는 말이 이렇게 와 닿는다.

잘 가꿔진 정원에서 피는 꽃만 예쁜 꽃이 아니다. 어디서 피든 꽃은 다 아름답다. 늘 파도가 일렁여도 우리는 바다를 보면서 감동한다.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그 끝이 끝없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린왕자’를 지금도 읽는 이유는 뭘까.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어린왕자’를 읽으며 우리는 사는데 바빠 잃어버린 감정을 되찾는 것이다.

세상이 좋아졌어도 힘들었던 옛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어떤 일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하는가도 중요하다. 우리는 감정을 지녔기에 인간이다. 설령 이 사회가 낡고 진부하더라도 내 감정마저 이를 닮아가선 안 된다. 다들 느끼지만 인생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아 초조할 수 있다. 그래도 삶의 끝에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정한 속도대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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