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일본 제국주의 시절, 여성 아나키스트 삶과 죽음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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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불살라 백치가 되어라’

28살 짧은 생 마감한 역정…일본사회 뒤흔든 논쟁 던지고 온몸 실천

조성우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9-10-14 16:21:08

▲ 구리하라 야스시, 마을을 불살라 백치가 되어라, 논형, 1만6000원

일본이 제국주의를 추구했던 시기에 무정부주의를 온 몸으로 외치고 살았던 한 ‘여성 아나키스트’의 삶을 주목해야 하는 책이 출간됐다.

28세의 짧은 삶을 살다간 이토 노에(1895~1923)가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마을을 불살라 백치가 되어라’(논형, 구리하라 야스시 지음)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부활했다.

이는 주인공 노에가 당대를 향해 외쳤던 외침들이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에도 공명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녀는 당시 일본 사회를 뒤흔드는 논쟁거리를 던지고 스스로 그 논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1900년대 초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일본은 자유주의를 비롯해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사상과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던 사회였다. 특히 국가로써의 일본은 강한 나라를 외치며 제국주의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일본인들은 치열하게 국가와는 다른 꿈을 꾸었고 그 실현을 위해 싸웠다. 그 중에서도 ‘무정부주의’라고 불리는 아나키즘은 국가 권력을 비롯한 인간 사이의 모든 권력을 부정하면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사상이다.

노에는 파트너이자 아나키스트인 오스기 사카에(大杉栄, 1885~1923)와 함께 온몸을 던져 아나키스트로의 삶을 실천했지만 당시 국가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길지 않은 생애동안 노에는 전근대적 여성의 삶을 강요하는 당대 일본 사회에 첨예하게 맞섰다. 집안의 강요로 맺어진 결혼을 거부하고 자유연애를 향해 내달렸다. 하지만 새롭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자 남편을 버리고 또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간다. 그 와중에 우먼리브 운동 논쟁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정조논쟁, 낙태논쟁, 폐창논쟁을 벌인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가끔 황당할 때가 있다. 너무나 자유롭고 자기중심적인 노에의 언동에 아연할 수밖에 없다. 특히 당시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연애스캔들의 전말을 들여다보면 웃음마저 나온다.

그녀는 남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다.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힘껏 움켜쥐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주변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도움을 구하는 친구가 있다면 누구보다 따뜻하게 그 손을 맞잡았다. 저자 구리하라는 노에를 그렇게 지금 우리의 곁으로 데려온다.

책은 노에의 삶과 죽음에 대해 쓴 일종의 평전이다. 저자는 자신의 연애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을 때 노에의 글을 읽었다고 한다. 결혼을 앞두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던 그에게 노에의 삶은 무엇보다 ‘생(生)의 부채화’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1979년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난 저자 구리하라 야스시는 와세다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오스기 사카에 평론을 계기로 아나키즘을 연구하게 됐다. 현재 도호쿠예술공과대학 강사로 일하고 있다.

번역공동체 ‘잇다’는 문장들과 단어들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있을 법하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고 앞뒤가 맞지 않는 대답을 하면서 만들어지는 작은 변화의 과정을 즐기는 모임이다. 역사와 역사 밖의 이야기, 영화와 문화 등 각자의 관심영역을 통해 일본을 이해하고자 하는 김해진, 김수용, 경혜진, 심아정이 함께 하고 있다.

조성우 기자 jsw5655@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