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사상의 자유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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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사상의 자유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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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19-10-25 00:02:05

지난 23일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정문 앞에 걸린 현수막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학생은 정치적 노리개가 아니다.” 인헌고학생수호연합 대표와 대변인을 맡고 있는 학생들이 학교의 일부 교사가 편향적인 사상을 강요한다며 이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학생수호연합은 일부 교사로부터 ‘반일’ ‘문재인 대통령 지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 부정’ ‘조국 관련 뉴스 불신’ 등 사상적으로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입장문을 발표하는 동안 취재진과 보수단체들이 모인 가운데 이들과 입장을 달리하는 다른 학생들이 “과장하지 말고 팩트만 말하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같은 시각, 학교 안에서는 나승표 인헌고 교장이 입장문을 내고 학생수호연합 학생들의 주장이 정확하지 않으니 언론에서 일방적인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학교 측 주장처럼 학생수호연합의 주장이 100퍼센트 사실이 아니라 해도 학생들이 밝힌 내용들은 정치적으로 한쪽에 치우친 사상을 강요당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일본과의 무역갈등으로 인해 시민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일본 불매운동이 벌어졌을 때 중구청에서 거리에 ‘No Japan’ 배너를 설치했다가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철거하는 해프닝을 벌인 적이 있다. 이는 시민들의 반일감정과 이에 따른 불매운동은 개인의 소신과 판단에 의한 것이지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강요할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사건이다.

그러므로 만일 어느 개인이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나 사회가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기된 대한민국 헌법 제19조에 따라 누구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는 외부로부터 속박을 받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를 의미한다. 이는 사람의 정신적 활동은 법이 나서서 금지하거나 강제할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종교적 신념 등의 이유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될 때 ‘양심적 병역 거부’를 법적으로 용인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양심의 자유는 여러 나라 헌법에서 인간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공적 교육기관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강요한다는 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학생수호연합은 발표문에서 “한 학생이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밝히자 교사가 ‘자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 좋은데 왜 싫어하냐’며 교무실로 데려가 혼을 냈다” “(조국 관련) ‘가짜 뉴스 믿지 마. 믿는 사람 다 개돼지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헌법에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듯 사상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한다. 헌법에는 따로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 규정이 없다. 대개 양심의 자유에 사상의 자유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강요했다면 이는 엄연히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예컨대 종교에 관해서라면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권유를 할지언정 자신의 신념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이나 강요는 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학교 수업시간에 교사가 학생에게 자신이 믿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교무실로 불러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일 그런 경우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어떤 반발과 비난이 쏟아질지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처럼 정치적으로는 왜 거리낌 없이 자신의 사상을 강요할까? 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사상이 옳고 이에 대립되는 사상은 그르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야말로 양심과 정의에 부합한다는 도덕적 윤리적 우월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현재 문재인 정권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소위 386세대를 비롯해 좌파적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오류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곤 한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들의 사상이나 판단을 강요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조국 전 장관이 쓴 저서 중에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2001년 초판, 2007년 개정판)가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과는 다른 종교, 신념, 이념,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자신들의 신념, 이념, 사상을 지키는 일에 함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는 ‘사상의 자유’에 대해 이렇게 소신을 표현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