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내가 돌아왔다”…남미 좌파 부활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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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트럼프’ 보우소나루 정권에 도전장

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9-11-12 00:03:39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9일(현지시간) 룰라 전 대통령을 어깨 위로 떠받치고 석방을 환영하고 있다. [사진=SCMP]

부패 혐의로 수감됐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전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1년 7개월 만에 석방된 후 정치 활동을 재개한 가운데, 남미 좌파의 아이콘 룰라 전 대통령과 극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브라질 정국이 긴장 국면에 돌입할 조짐이다.

로이터통신, 프랑스24, 가디언 등 외신들은 9일(현지시간) 룰라 전 대통령이 석방 이틀째인 이날 노동자당 상징색인 빨간색 옷을 입은 지지자 수천명이 모인 환영 행사장에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출발지라는 상징성이 담긴 금속노조 앞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45분간 연설을 했다.

올해 74세인 룰라 전 대통령은 “내가 돌아왔다”고 반대 진영을 향해 외쳤다. 그는 연설 내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노동계층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2022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 정권을 패배시키겠다면서 지지자들에게 맹세하고 또 남미에서 좌파 정권인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연대를 주장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대통령직을 연임했던 룰라 전 대통령은 보우소나루 대통령, 파울로 구에데스 경제 장관, 세르지오 모로 법무장관 등 정적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자신이 건재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모로 장관은 룰라 전 대통령을 유죄 판결한 전직 판사다.

룰라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와 돈세탁 등의 혐의로 지난해 2심 재판에서 12년1개월 형을 선고받아 수감 생활을 해오다 580일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2심 재판의 유죄 판결만으로 피고인을 수감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판단 하에 석방된 것이다.

룰라 전 대통령은 “지난 580일 동안 나는 증오심을 갖지 않기 위해, 복수심을 갖지 않기 위해 내 자신을 정신적으로 단련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이유는 “내가 그들에 의해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나는 양심에 따라 그들보다 더 편안하게 잠을 잔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해왔다.

룰라 전 대통령이 정치활동을 계속하게 되면 이는 극우파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맞서는 좌파 세력의 부활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 역시 룰라의 귀환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룰라 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브라질을 광기로부터 해방시키도록 하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 9일자 트위터에서 룰라를 겨냥해 “악당”이라 지칭했다. 또 그의 지지자들을 향해 “브라질 회생의 새로운 국면”을 탈선시키지 말라면서 정부의 우익 어젠다를 따르라고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자유와 선의를 사랑하는 자들이여, 우리가 주도권을 가졌다”면서 “북극성과 방향타가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군대라 하더라도 사방으로 총질해대는 오합지졸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잠시 자유의 몸이 됐으나 죄악으로 가득 찬 악당에게 탄약을 주지 말라”며 룰라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으면서 그를 암시하는 표현을 썼다.

룰라 전 대통령은 석방 당시 감옥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썩은” 경찰, 검찰, 판사들을 “좌파를 범죄시한 일”에 대해 기소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질의 정치판에 귀환을 선언한 룰라의 등장은 브라질 뿐 아니라 남미 전체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퇴조 기미를 보이던 남미 ‘핑크타이드(pink tide:온건 사회주의 좌파)’가 다시 득세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핑크타이드는 1990년 이후 미국식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반발로 남미 곳곳에서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2015년 친시장 성향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을 기점으로 남미 대륙에서 핑크타이드는 서서히 저물어 갔다.

지난달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60)가 당선되면서 남미에서 다시 좌파 물결이 부활했다는 평가가 나온 상황에서 룰라 전 대통령의 귀환은 남미 좌파 연대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된다.

외신에 따르면 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남미 좌파·중도 좌파 지도자의 모임 ‘푸에블라 클럽’ 총회에서 참석자들은 일제히 룰라의 석방을 축하했다. 룰라는 이 자리에서 “나는 자유이고, 싸울 준비가 됐다. 남미 지역의 강한 통합을 이루고 위대한 남미를 건설하는 것이 나의 인생 목표다”고 밝혔다.

[박선옥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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