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자의 오보가 불러온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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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자의 오보가 불러온 기적

스카이데일리 기자수첩

임보련 기자페이지 + 입력 2019-11-19 23:27:16

올해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독일은 45년간의 분단 상황을 딛고 1989년 11월 9일 통일로 가는 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사실 독일의 통일은 한 기자의 오보로 인해 순식간에 이뤄졌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가해자이다. 두 차례의 전쟁에서 패전하여 1945년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4등분으로 쪼개져 분할 통치를 받았다.

이후 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미국·영국·프랑스가 점령하고 있던 지역은 서독, 소련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은 동독으로 분단됐다. 자유주의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서독은 동독과는 달리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뤘다. 이에 자유와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탈출하기 시작하자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동독 정부는 1961년 그 유명한 분단의 상징물인 베를린 장벽을 세우게 된다.

장벽은 동·서 베를린 사이에 약 45.1km의 두꺼운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독인들의 이탈은 계속 이어졌고 많은 이들이 베를린 장벽을 넘다가 목숨을 잃었다. 1961년부터 1989년까지 약 5000명이 이 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했고 최소 10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랜 분단 속에서 동독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1989년 10월 라이프치히를 시작으로서 동독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동독인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방법을 고심하던 동독 정부는 11월 9일 여행자유화 법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발표로 인해 독일이 통일을 이루게 될지 그 누가 알았을까.

이날 오후 7시 생중계되던 기자회견에서 법안을 발표하던 동독 정부 대변인 귄터 샤보프스키에게 “언제부터 이 법안이 시행되느냐”는 질문이 날아왔다.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바로 참석하는 바람에 당 지도부에서 결정한 정책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던 샤보프스키 대변인은 순간 당황해 이렇게 답한다. “지체 없이, 즉시(Sofort, unverzüglich).”

사실 샤보프스키 대변인의 대답은 큰 말 실수라 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여행자유화 법안은 다음날인 10일에 시행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동독·서독 기자들은 이 법안이 국경 개방이 아닌, 단순한 여권심사 기간 단축 등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독일어에 서툴렀던 이탈리아 통신사 ANSA의 기자 리카르도 에르만이 이를 ‘베를린 장벽의 철거’라고 착각하면서, 이는 긴급 뉴스로 보도가 나가게 된다. 에르만은 ANSA 본사에 이 소식을 전하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The Berlin Wall has collapsed)’라는 제목으로 긴급뉴스(flash news)로 보도해 줄 것을 요청한다. 당시 ANSA 외신부장은 믿을 수 없다며 그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하며 거부했으나 “현장의 기자를 믿어달라”는 에르만 기자의 간청에 결국 보도한다.

이 엄청난 오보는 곧바로 전 세계로 퍼졌고 이 소식을 접한 동독인들은 공구를 들고 나와 장벽을 부수기에 이른다. 장벽을 지키고 있던 동독 국경수비대원들은 이들을 막으려고 애썼으나 통제 불가능한 엄청난 인파가 몰리면서 그저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수비대원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상부의 지시가 없자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서베를린으로 가는 출입문을 개방했다. 열린 문을 통해 동독인들과 서독인들은 서로를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28년간 냉전의 상징이자 두 진영으로 양분했던 베를린 장벽은 총 한 발, 피 한 방울 없이 그렇게 무너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10월 3일 동독과 서독은 통일을 이뤘다.

전 세계 그 누구도 이날 베를린 장벽이 붕괴할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으나, 한 기자의 오보로 인해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게 됐다. 비록 세기의 오보였으나 먼 훗날로 예측되던 독일의 통일을 앞당기고 유혈 사태 없이 통일을 이루게 만든 이 일을 기적이 아니면 뭐라 불러야할까.

독일의 통일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할 점이 있다. 먼저 독일인이 주도한 통일이라는 점, 정부·군·경찰·국민들 간의 충돌이 없었던 평화통일이었다는 점, 그리고 신속하게 이뤄진 통일이라는 점이다.

현재까지 여전히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돼 있는 우리로서는 반드시 배워야할 부분이다. 한 기자의 오보가 불러온 기적으로 독일은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키는 데만 그치지 않고 통일로 이끌어냈다. 통일이 우리가 예상치 못한 시기에 우리에게 닥친다면 이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통일에 대한 외침도 중요하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일을 대비한 준비다.

언젠가 닥쳐올 통일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한반도에도 역사를 뒤흔드는 기적이 날아오는 그날, 이를 발판삼아 통일 한국으로 신속히 이어져야 할 것이다.

[임보련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임보련 bll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