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성노예 여성, 가해자와 TV 출연 중 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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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대면시킨 이라크 방송에 비난 여론

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9-12-03 17:16:52

▲2014년 ISIL의 성노예로 끌려갔던 야지디족 여성 아쉬왁 하지 하미드(19)(오른쪽)가 이라크 알이라키야 TV의 스페셜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가해자를 만나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며 울먹이고 있다. [사진=MEMRI 캡처]

이라크의 한 TV 방송국이 야지디족 여성에게 자신을 성폭행한 이라크 내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ISIL(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대원과 대면시키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내보내던 중 야지디 여성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텔레그라프·인디펜던트 등 외신들은 2일(현지시간) 5년 전 ISIL에 의해 성노예로 끌려갔던 야지디족 여성 아쉬왁 하지 하미드(19)가 고통스러웠던 과거와 대면하는 모습을 담은 이라크 TV 장면을 보도했다.

하미드는 2014년 이라크의 한 조용한 마을에 들이닥친 ISIL 대원들에 의해 다른 수 천명의 야지디 여성들과 함께 납치됐다. 이후 그는 모하메드 라쉬드라는 이슬람 극단주의 지하디스트에게 끌려가 수갑이 채워진 채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했다.

야지디족은 종족 상으로는 쿠르드인이면서 종교적으로는 야지디교를 믿는 민족종교집단이다. 주로 이라크 평원 등지에 살고 있으며 일부는 유럽 특히 독일로 이주했다. 이슬람 수니파 반군 ISIL은 2014년 8월 야지디족이 살고 있는 신자르 산맥 일대를 점령해 남성과 소년들을 대량학살하고 여성 수 천 명을 성노예로 끌고 갔다. ISIL의 야지디족 말살 행위는 2017년까지 계속됐다.

하미드는 몇몇 다른 여성들과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해 독일로 가서 난민 신청을 했다. 하지만 그녀를 억류하고 성폭행했던 ISIL 대원 라쉬드는 독일까지 쫓아왔고 201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내에서 그와 마주친 하미드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이라크의 알이라키야 TV의 스페셜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마주했다. 이라크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라쉬드는 죄수복 차림에 수갑이 채워진 채 스튜디오에서 하미드 앞에 섰고 하미드는 그에게 자신이 받았던 고통을 이야기했다.

하미드는 “당신은 내 삶을 망가뜨렸다. 나에게서 모든 꿈을 앗아가 버렸다”고 말하며 상대방에게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요구했다. “날 쳐다보라. 당신은 감정이 있는가? 당신에게 명예라는 게 있는가? 난 그때 14살이었다. 당신 딸이나 아들이나 여동생 같은 나이였다”면서 하미드는 울먹였다.

하지만 이내 하미드가 그 자리에서 쓰러지면서 뉴스 동영상은 거기서 끊어졌다. 이후 이 방송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트라우마 전문가들은 하미드의 경우처럼 트라우마를 지닌 피해자가 가해자와 대면할 때 내면의 깊은 상처를 다시 들춰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쿠르드계 독일 심리학자인 잔 일한 키질란 박사는 데일리텔레그라프에 “그들(방송국)은 그녀(하미드) 보다는 뉴스쇼의 시청률에 더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키질란 박사는 “그 생존자(하미드)는 내 환자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면서 “그녀가 쓰러지는 모습을 봤듯이 TV 인터뷰는 의학적으로 하미드의 심각한 트라우마에 절대적으로 충돌하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야지디족 활동가인 니브라스 쿠다이다는 “이라크 TV 쇼가 성폭행범과 야지디족 여성 피해자를 불러내 방송에서 대면시킨 것은 한심한 일이다”고 비난했다. 이어 “그녀(하미드)는 분명 아직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 뉴스 동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고, 많은 네티즌들이 자신에게 고통을 준 가해자와 마주한 하미드의 용기를 높이 칭찬했다. 하미드는 그후 쿠르드 TV와의 인터뷰에서 가해자 라쉬드를 만날 기회를 가졌던 것이 기뻤다면서 “(내 속에 있던 말들을) 그에게 쏟아내니 5년 동안 응어리져 있던 비통함이 모두 해소됐다”고 말했다.

하미드는 그러면서 성노예로 감금되어 있던 당시의 감정들이 다시 밀려왔다고 말하며 “그를 보는 순간 그가 다시 나를 성노예로 만들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텔레그라프에 따르면 라쉬드는 이라크 법정에서 자신의 잔혹행위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그라프는 인터뷰를 진행했던 알이라키야 TV에 해명을 듣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근 방송매체들이 ISIL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면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일고 있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쪽은 피해자들이 정의의 심판을 받는 가해자의 모습을 보는 것은 피해 여성들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본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런 TV 쇼는 피해 여성의 진정한 치유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시청자들의 관음증적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선옥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박선옥 기자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