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권 간과한 文의 줄타기외교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자유·인권 간과한 文의 줄타기외교

스카이데일리 칼럼

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19-12-27 00:02:59

지난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중국 언론들이 앞다퉈 관련기사를 내고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라면서 그 내용을 부각시켰다. 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홍콩과 신장위구르 문제에 대해 “중국의 문제”라고 인정했다는 내용이다.

홍콩과 신장위구르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중국과 대립해 있는 민감한 문제다. 지난 6월 이후 최근 크리스마스까지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홍콩 민주화 시위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앓는 이처럼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홍콩 행정부에 시위대를 향해 강경진압을 촉구해왔고 그런 과정에서 실제로 부상자들이 속출했고 사망자도 발생했다. 범죄인인도법안(일명 송환법)에 대한 반발로 지난 6월9일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 미국은 물론 일본과 유럽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들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 신장 지역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탄압 문제가 제기돼 국제 사회가 나서기도 했다. 지난 7월 영국, 덴마크, 일본 등 20여개 국가는 유엔인권이사회를 통해 신장 지역 내의 ‘재교육 수용소’에 갇혀 있는 위구르족 석방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은 이 시설이 수용된 위구르족들의 ‘극단주의적 사고’를 제거하기 위해 교육이 이뤄지는 ‘재교육 시설’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이곳에서 강압적인 감금과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 진영 국제 사회가 한 목소리로 홍콩 민주화 시위를 응원하고 신장 위구르족 인권문제에 나설 때 유독 우리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던 참에 이번 시진핑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된 모양이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는 23일자 한중 정상회담 관련 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은 홍콩 문제든 신장위구르 문제든 모두 중국의 내정(內政, 국내정치 문제)으로 여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것도 “홍콩과 신장위구르 문제는 내정” 부분을 굵은 글씨로 강조하기까지 했다.

중국 외교부 역시 “문 대통령이 ‘한국은 홍콩 문제든 신장위구르 문제든 모두 중국의 내정으로 여긴다’고 시 주석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 표현은 사실에 부합하고 그(문재인 대통령)는 기본적인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는 발언으로 문 대통령의 발언이 그들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시켜주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즉 ‘홍콩과 신장 문제는 내정’이며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내정 간섭’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다시 한번 내세운 것이다.

중국이 홍콩과 신장 문제와 관련해 국제적 비난을 받아 인권문제에 있어 수세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마치 응원군을 얻은 모양새다. 이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홍콩 문제에 관해 우려를 표명하고 위구르족 인권 문제에 관해서도 투명성을 가지고 설명하라고 촉구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언론들은 이 문제에 있어 한·일 정상의 대응이 “대조적”이라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관해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시 주석이 홍콩과 신장위구르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고 설명했고, 문 대통령은 시 주석의 언급을 잘 들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이 어떤 표현을 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나서 “말을 잘 들었다”고 답한다면 말한 쪽은 자신의 의견에 동의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만일 문 대통령이 시 주석의 의견에 동의를 표한 것이 아니라면 이를 잘못 전달한 중국 언론이나 외교부에 유감 표명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청와대나 우리 정부 측에서 그런 입장을 전달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가 없다.

이런 우리 정부의 태도는 국제적으로 오해를 살 여지가 크다. 지금까지 홍콩의 민주화 시위나 신장의 인권탄압 문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동맹국들의 지지 대열에 함께 나선 적도 없는데다가 특히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어 더욱 그렇다.

지난 16일 휴먼라이츠워치(HRW), 앰네스트 인터내셔널, 국제인권연맹, 그리고 세계 22개 국가의 67개 비정부기구들을 비롯한 인권관련 국제단체 및 개인들이 우리나라 문 대통령 앞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낸 바 있다.

HRW는 또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김정은을 달래며 남북 관계 개선만을 위해서만 노력을 함으로써, 북한의 심각한 인권 유린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은 홍콩인권법과 신장 위구르 인권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고 중국이 내정간섭이라면서 이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 보란 듯 미국 동맹국인 한국 대통령의 발언을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야말로 한국이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 신세가 되는 건 아닌지 우려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홍콩과 신장 문제는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온 자유와 인권이라는 절대 가치를 기준으로 선택해야할 일이라는 걸 상기하는 것만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어정쩡한 입장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