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되는 국민연금발 관치 야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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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화되는 국민연금발 관치 야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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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범 기자페이지 + 입력 2019-12-31 01:25:07

공적자금을 통한 기업 지배가 우려를 넘어 현실로 다가왔다.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이하·기금위)는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과 범위, 절차 등을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지난 27일 의결했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토입하면서 합법적 경영 개입의 길을 터놨다면 이번엔 대놓고 기업 경영에 간섭하겠다는 것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을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설명이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긴 어렵다는 게 대다수 정·재계 인사들의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데다 현재 공단 이사장은 문 대통령 캠프에도 몸 담았던 여당 정치인 출신이다.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복지부 장관이,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위원장마저 이사장이 맡고 있다. 기금운용이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국민연금의 말을 누구하나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당장 국민연금이 국내기업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19개 국내 상장사의 최대주주이며 2대주주 150개사, 3대주주 59개사, 4대주주 24개사, 5대주주 14개사 등이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이 19개 상장사의 최대주주로 있는 경우는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다.

공적연기금으로 국내주식에 투자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4개 회원국 중 공적연기금이 최대주주인 경우는 뉴질랜드 1건, 덴마크 6건 정도다. 핀란드나 네덜란드는 공적연금이 아닌 공적연금의 지급·운용 등을 담당하는 민간보험사나 운용기관이 최대주주인 만큼 국민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더욱이 제도적으로 봐도 국민연금이 국내 증시와 개별 상장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유리한 환경이다. 국민연금이 10% 넘는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80개사에 달하는데, 국민연금의 개별기업 주식보유 한도에 대한 강력한 규제 장치는 전무하다. 연기금운용규정에 개별기업 투자한도를 10%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이 있지만 리스크위원회만 거치면 한도 초과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은 보유지분의 의결권을 별다른 제한없이 100% 행사할 수 있다. 최근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입법 예고한 자본시장법 및 상법 시행렬 개정안 등이 통과되면 그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가로막던 장벽마저 사라진다. 국민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따라 경영 중립적 투자 결정에 나서야 할 국민연금이 정부의 기업 지배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은 그 자체로 거대한 공적연기금으로 자본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기존에 투자했던 기업으로부터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소문만 들려도 주가가 흔들릴 정도다. 그런 거대 연기금이 대놓고 기업경영에 개입하고 지배구조에 간섭한다는 건 신산업 진출과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 할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애당초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민간기업의 주인 행세를 한다는 자체부터 자유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임현범 hby6609@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