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남효온 평전, 이상을 추구한 선비의 이야기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시대의 그늘을 비판한 젊은 선비 남효온의 희망과 좌절

이하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2-12 16:00:00

남효온 평전은 유교 체제와 왕조의 안정으로 황금기라 불렸던 조선 제 9대 국왕 성종 치세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다. 빛나는 시대의 이면에는 개국 이후 왕위계승을 두고 살육이 난무하던 어두운 시대의 그림자가 있었다. 세조가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찬탈한 이후 반정 공신들은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권세를 누렸다. 성종 재위 기간에도 그들은 원로대신으로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들에 유리하도록 정국을 주도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세조의 왕위계승 방법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나선 이가 남효온이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긴 후 세조에 의해 폐서인된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의 신원을 복권하고 능을 복위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린 것이다. 이 일로 권력 실세들의 역린을 건드린 그는 중앙 정치 무대에 올라설 기회를 박탈당하고 세상의 경계에 서서 세대의 명암을 증언했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반정 공신 무리들에 둘러싸여 있던 성종은 성인이 되면서 자신만의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유교정신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내걸고 젊은 유생들을 길러내기 시작한다. 이들 신진사류의 핵심적인 인물이 남효온이었다.

남효온은 스물다섯의 나이에 소릉복위 상소를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세조의 왕위계승 과정의 불법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반정공신으로 권력을 장악한 훈구대신들의 책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문제제기는 곧바로 차단됐다. 남효온은 이 한 장의 상소로 중앙 정치에서 배척당해 서른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전국을 떠돌며 은둔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중앙 정치에서 축출돼 경계인의 삶을 살아야 했던 남효온의 시문들은 대개 음울하고 착잡한 정서가 묻어나온다. 그럼에도 그를 단지 실패한 방랑자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저서 ‘육신전’의 가치를 통해 드러난다.

‘육신전’은 불법적인 왕위 찬탈에 반발해 단종을 복권시키려다 억울하게 역적으로 죽어간 사육신의 행적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단종 복권 도모로 벌어진 병자사화의 진실은 대부분 이 ‘육신전’에 의존하고 있다. ‘육신전’은 또한 역사를 왜곡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복원함으로써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고자 했던 남효온의 이상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남효온의 이상은 그의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으나, 중종 즉위 이후 그가 주장하던 소릉의 복위가 이뤄지면서 그 자신의 신원도 복원된다. 그의 올곧은 이상과 시도는 후대에서 인정받아 그는 생육신이라는 영예로운 이름까지 얻게 된다. 과거를 되새겨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역사의 소명임을 생각할 때, 남효온은 자신에게 부여된 역사적 소임을 충실히 다하고 간 인물임을 분명히 평가할 수 있다.

‘남효온 평전’의 저자 장출헌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저·역서로는 ‘고전소설사의 구도와 시각’,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최고의 예술, 판소리’, ‘김부식과 일연은 왜’, ‘추강집: 시대정신을 외치다’ 등이 있다.

[ 이하은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

이하은 기자 hele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