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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과거 적폐 청산이다. 이를 보는 국민의 입장에서 때론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시큰둥한 반응이다.
적폐를 청산한답시고 완장을 차고 나온 인사들이 더 많은 적폐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실소와 아연실색에 더하여 격노를 표한다. 나라가 시끌벅적하게 과거의 비리와 부정을 뿌리 뽑겠다면서 서슬 퍼렇게 인신을 구속하고, 제도나 관행을 바꾸고 있지만 국민의 피부에 별로 와 닿는 것은 없다. 일부 자기편에 있는 무리들의 삐뚤어진 욕구만 충족시켜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하면 탈이 나듯 진영 내에서도 분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양심 있는 소수가 이들이 휘두르는 불편부당한 행위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오고 있는 것은 그나마 위안거리다. 말초신경만 자극하고 자기(진영)만 무조건 선(善)이라고 하는 우격다짐식의 적폐 청산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치르고 있는 현재의 홍역과 비용의 규모가 너무 크다. 진짜 적폐는 청산하지 못하고 가짜 적폐 청산만 난무하다.
오랜 기간 해외를 드나들면서 경험하고 느끼는 솔직한 심정은 아직 우리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다른 나라들에서 잘 보이지 않거나 미미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무척 크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가장 큰 병폐는 국민이 내는 세금에 대한 경시 풍조와 이를 틈타 떡 주무르듯이 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우고, 이너 서클의 노획물로 간주하는 풍토이다.
이에는 국민의 무관심과 자포자기도 한 몫을 한다. 열심히 벌어서 세금은 내지만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 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이를 감시하라고 뽑아 놓은 선량들은 오히려 그들의 전유물처럼 기상천외한 전횡을 일삼는다. 말 그대로 적반하장이다. 피와 땀의 결정체인 혈세를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이들과 교묘하게 한 편이 되어 공존공생을 한다. 만약 일반 국민들이 자기가 낸 세금이 어떠한 곳에 어떤 용도로 집행이 되는 지 정확하게 알기라도 한다면 분통이 터질 일이다. 세금 콩고물을 조금이라도 떼먹으려고 크고 작은 좀비들이 기를 쓰고 덤벼든다. 정권의 색깔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해묵은 적폐이다.
왜 국회의원이나 공무원 숫자 늘리는 것에 대해 국민의 거부감이 강한가.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산출물이 적은 저(低)생산성 때문이다. 천문학적 비용이 지속적으로 들어간다. 태생적으로 이들은 국민보다는 자기 안위를 먼저 생각한다. 갖은 핑계와 빌미를 만들어 세금을 포획하려고 혈안이 된다. 시쳇말로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 예나 지금이나 온갖 촉진법 혹은 진흥법 등을 만든다.
부처별 산하기관이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늘어난다. 필연적으로 규제는 늘어나게 되어 있고, 잘 나가는 퇴직자들의 낙하산 통로가 줄줄이 생겨난다. 일례로 중앙부처 서기관 이상 등의 고위직으로 퇴직한 공무원의 경우 퇴직 이후 10년 내외의 산하기관 혹은 단체에서 일을 한다. 평균 2∼3 군데를 돈다. 정년 연장이 따로 없다. 더 가관인 것은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조직들이 필요성이나 당위성이 거의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이후에는 일반 국민연금보다 훨씬 더 높은 공무원연금으로 노후까지 확실히 보장을 받는다. 정말 얼굴 두꺼운 집단들이다.
정상적인 국가에 필요한 가장 큰 덕목은 세입과 세출의 도덕성
해외 근무 시 엉뚱한 해프닝으로 민망한 경우를 당할 때가 허다하다. 주재국의 경제 기관 혹은 단체들의 이상한 문의 때문이다. 한국에는 왜 그렇게 비슷한 조직들이 많은가 하고 의아해 한다. 모두 자기들과 양해각서를 체결하자고 경쟁적으로 덤벼드는데 당황스럽다고 토로한다.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기능별 혹은 업종별 기관이나 단체들이 많지 않다. 있다고 하더라도 규모가 매우 작다. 대부분 이익 단체로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며, 세금이 보조금으로 지원되는 곳은 극소수이다.
다른 사례로는 국내에 주재하기 위해 부임하는 외국 주재원들의 푸념이다. 한국에는 왜 방문해야 할 곳이 그렇게 많은지 헷갈려서 일을 제대로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얼기설기 얽혀 있는 구조를 충분히 파악하고,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면 귀임 시점이 된다고도 한다. 그리고 한국에 주재하면서 성과를 내려고 하면 누가 혹은 어느 기관이 힘이 있는 지를 파악하여 이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는 것이 최선이라고까지 한다. 후임자에게 인계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만 유난한 또 다른 적폐가 있다. 바로 전관예우다. 고위직에 있다가 자리를 떠나더라도 여전히 그들은 득세를 한다. 기사가 딸린 고급 세단을 타고 다니면서 거드름을 피운다. 이들의 기득권 유지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 혈세에서 충당된다. 지구상의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경우를 잘 찾아볼 수 없다.
고위직이든 하위직이든 자리를 벗어나면 평범한 서민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편적이다. 몸을 낮추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서민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자주 목격이 되기도 한다. 자리를 보전하고 기회만 생기면 또 다른 먹이거리를 찾아 나서는 우리와는 크게 다르다. 대통령을 보좌하려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면 모시는 분과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 도리이다. 우리 경우는 틈만 생기면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혈안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거침없이 살던 시기에는 이러한 것들이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일부 용인되기도 했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국가의 성장 동력이 고갈되고, 글로벌 경쟁의 최전선에 노출되고 있는 공공 부문이 이래 가지고서는 곤란하다.
작년도 우리 경제 성장률이 2% 턱걸이를 했다. 국민 세금의 성장률 기여도가 무려 4분의 3이나 된다고 한다. 질(質)이 좋은 성장과 나쁜 성장이 있다. 퍼주기 식 포퓰리즘이 난무하면서 억지로 끌어올린 성장은 후자에 속한다. 국가가 정상적이고 미래지향적이 되려면 똑똑한 국민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혈세에 대한 감시와 감독에 눈을 부릅떠야 한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와 같이 방치하고 어리석음을 스스로 자초하는 것은 금물이다. 세금으로 나라를 구렁텅이로 만드는 무리들을 경계하고 경우에 따라선 칼자루를 들어야 한다. 국가가 건전하게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당연히 세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적재적소에 배분이 되고 효율성이 담보되며 낭비가 제거되어야 한다. 국민적 동의 없이 마구잡이로 횡행하는 한국판 세금 난기류를 보면 착잡하고 서글프다. 자기가 낸 세금의 혜택을 별로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국민들도 많다. 관심 없기 때문이라고 핀잔을 줄 수도 있지만 정상적인 국가의 가장 큰 덕목은 세입과 세출 부문의 도덕성이다. 이는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첫 단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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