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잔치 벌이는 유통재벌, 책임은 직원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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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범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2-18 01:02:03

최근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던 국내 유통업계가 결국 대규모 구조조정 칼을 빼들었다. 신동빈 회장이 이끄는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슈퍼, 롭스 등 현재 운영 중인 오프라인 매장 700여개 중 실적이 부진한 점포 200여곳의 문을 3~5년 내 닫을 계획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롯데그룹 전체 점포의 30%가 문을 닫게 된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는 신 회장이 강조했던 롯데그룹 비상경영 체제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달 있었던 사장단회의에서도 “수익이 안 나는 사업은 다 접는다”고 했다. 발언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현실화됐다. 그만큼 롯데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방증한다.

지난해 롯데쇼핑의 실적은 시장 예상치보다 나빴다. 연결기준 매출이 17조6328억원으로 전년 대비 1.1% 줄었다. 영업이익은 4279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28.3% 감소했다. 당기순손실 규모는 전년보다 3886억원 늘어난 8536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나마 롯데백화점이 선방했지만 마트와 슈퍼사업 부문의 부진이 뼈아팠다.

국내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사상 첫 분기 적자를 기록했던 이마트는 지난해 150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전년보다 67.4% 감소한 수치다. 당기순이익도 2238억원으로 반토막났다.

극심한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이마트 역시 지난해 10월 신임대표를 교체하고 대대적인 조직 쇄신을 단행하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이 야심차게 선보였지만 수익성 악화에 시달렸던 ‘삐에로쑈핑’부터 ‘일렉트로마트’, ‘부츠’ 등의 매장을 정리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유통공룡이라 불렸던 롯데와 이마트가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데에는 시장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탓이 크다. 유통시장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데 비해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를 알고도 오랫동안 오프라인 시장에 머물렀다. 뒤늦게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이미 시장을 선점한 쿠팡과 티몬 등 이커머스 업체의 공세에 밀려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이 대거 문을 닫으면 인력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롯데나 이마트나 오프라인 매장이 차지하던 비중이 컸던 만큼 폐점하는 매장 수가 늘어날수록 기존에 일하던 직원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폐점하는 이유가 인건비와 임대료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낮추기 위한 일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회사의 경영을 진두지휘했던 신 회장과 정 부회장 등 오너경영인의 책임의식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이마트의 경우 지난달 직원들의 성과급이 직군별로 최대 45%에서 20%까지 줄었다. 거듭된 실적 부진이 주된 이유로 지목된다. 반면 지난해 2분기 이마트가 사상 첫 분기 적자를 기록했을 때 정 부회장이 상반기에만 받은 보수는 17억1800만원이다. 급여로 9억9200만원, 상여로 7억2600만원을 받았다. 비계량지표와 관련해 지속적인 사업혁신과 기업문화 개선을 통해 기업의 선도적 위치를 공고히 하고, 중장기 성장동력 개발을 위한 필요역량 확보 등에 기여한 점을 고려했다는 게 이마트 측의 설명이다.

정 부회장이 2018년 상반기 17억3700만원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분기 적자에도 불구하고 줄어든 보수는 1%에 불과하다. 배당을 통해 챙긴 금액은 오히려 늘었다. 이마트는 주당 2000원을 배당하기로 의결했는데, 이로 인해 정 부회장이 받게 될 배당금 규모는 57억6080만원에 달한다. 회사의 실적 부진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오너경영인이 권리만 누리고 책임은 직원들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러한 상황은 신 회장 역시 비슷하다. 신 회장은 지난해 상반기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유통가 연봉킹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롯데지주와 유통계열에서만 56억원이 넘는 급여를 받았다. 이 가운데 롯데쇼핑으로부터 받은 금액은 12억1400만원이다. 회사가 힘들어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까지 내놓고 있는데다, 추후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영실패의 책임을 오롯이 직원에게만 전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모든 기업이 그렇겠지만 맡은 역할이 크면 클수록 수반되는 책임과 권리는 커진다. 수조원이 넘는 대기업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오너경영인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 또한 결코 적지 않다. 잘못된 의사결정 하나가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생계와 산업, 이해관계자 등에 미치는 여파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대기업 오너로서 권리만 챙기고 책임은 외면하고 있는건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임현범 hby6609@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