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노동자 길바닥 내몬 일자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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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노동자 길바닥 내몬 일자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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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범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2-25 00:02:31

최근 두산중공업이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만 45세(1975년생)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것이다. 국내 최대 원전기업인 두산중공업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선 건 2014년 말 이후 5년여 만이다. 당시 두산중공업은 창원 본사와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하는 52세 이상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약 절반인 250명이 회사를 떠났다.

이번엔 구조조정 규모가 더 커졌다. 전체 직원 6700여명 가운데 45세 이상은 2600여명에 이른다. 무려 40%에 달하는 직원이 감원 대상이다. 업계에선 5년 전 사례와 비교해 이번 명예퇴직 규모가 1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두산중공업 측은 아직까지 인원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규모를 예단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두산중공업 노조는 구조조정에 대해 극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영진의 무능함이 경영위기를 발생시키는 데 한 몫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비판의 화살을 쏜 곳은 경영진보다 정부가 먼저였다. 정부의 급진적 탈원전 정책이 국가 효자산업인 원전산업을 마치 악의 축인 양 잘라낸 탓에 회사가 부실해졌다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두산중공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원자로와 터빈 발전기 등 원전 기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핵심 수익원 역시 원전 사업이다. 그간 두산중공업이 임원을 줄이고 유급 휴직을 실시하는 등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자구노력을 해왔지만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에 따른 수주 부진은 피할 수 없었다. 탈원전이 본격화된 2017년까지만 해도 100%였던 원전 부문 공장 가동률이 올해는 60% 수준으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는 “정부는 지금이라도 신한울 3, 4호기 공사를 즉시 재개하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통령이 언급한 고용연장이 아니라 법적으로 보장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안정된 일터다”고 주장했다.

두산중공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정부는 이례적으로 해명자료까지 내면서 반박했지만 이마저도 산업 생태계는 외면한 채 면피하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두산중공업의 구조조정 요인은 발전시장 침체와 석탄화력 발주 감소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WEC나 Hitach 등 주요 원전기업들 역시 원전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에 따른 원전사업 수익성 및 경쟁력 악화가 구조조정의 주원인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 원전산업 기술력은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최고 수준이다. 한국형 차세대 원전이라 불리는 APR1400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해외 국가 중 처음이자 유일하게 인정한 원자로다.

국내 원전 기술력과 안정성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았지만 해외 수주 성과는 부진하다. 대통령이 탈원전을 외치고 있다보니 해외로부터 의구심어린 시선을 받고 있어서다. 자국에도 건설하지 않는 원전을 수출하려 하니 어느 국가가 이를 믿고 맡기겠냐는 것이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원전 사업은 그 자체로 대규모 사업이므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선 외면 받는 원전 사업이 해외에서 승승장구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후폭풍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원전 기술 운영과 관련된 인력은 유지되고 있지만 설계와 건설, 시공을 담당하는 고급 인력들이 대거 유출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선 원전기술을 보유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지원해줘도 모자랄 판에 내쫓고 있다. 탈원전 정책이 이어진다면 결국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 원전의 경쟁력 약화는 시간 문제다. 두산중공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순히 기업의 경영실패만으로 치부하기 힘든 이유다.

임현범 hby6609@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