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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 빼기의 저의
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2월 1일, 당 차원의 개헌안에서 헌법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민주적 기본질서’로 고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2018년 1월 8일 발표된 국회 헌법개정 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의 개헌안 보고서에서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민주적 기본질서’라고 고쳐서 표현했다. 같은 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만든 새 검정 역사·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 시안에도 ‘자유’가 삭제된 그냥 ‘민주주의’로 표현돼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헌법 개정특위 자문위원회 위원들은 우리 헌법에서 자유를 빼려고 애를 쓴다. 또 이름 공개를 거부하면서 교과서 개정을 주도하는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위촉한 위원들은 교과서에서도 자유를 빼려고 안달을 한다. 이들은 왜 한사코 ‘자유’를 빼려고 할까?
바로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인간이 사회계약으로 만든 정치체제가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말의 의미를 비틀어 선전선동에 자주 활용하는 ‘민주’나 ‘공화’라는 말과는 달리, ‘자유’를 인정하고서는 교묘한 말로 시민들을 속여 공화정 체제를 전체주의 체제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시민들의 의식 속에서 자유의 가치를 뿌리 뽑아야만 자신들이 전체주의적 권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민주공화국의 중심 가치이다.
독재자들은 절대 권력을 틀어쥘 때까지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자유’를 외친다. 그 밖에도 정의나 공정, 평등과 같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의 지지를 모을 때까지 활용하는 선동용 미끼일 뿐이다. 독재자의 이런 선동 행태를 그리스 희극시인 테오폼포스는 시 구절로 잘 표현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포도주처럼 달콤한 자유를 맛보여주고, 다음에는 쓰고 시큼한 식초를 마시게 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제23장 리산드로스 편)
북한에서는 정치권력이 인민들의 공공활동 뿐 아니라, “생활총화”라는 이름으로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 개인적 친교와 사고와 감정까지 지배하려고 한다. 북한 빨갱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전체주의 독재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이런 잔혹함은 공산주의 사기극이 출현할 때부터 예견되었던 상황이다. 절대적 권력욕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은 시민들 뿐 아니라 자기네 조직원들이 가지는 자유도 용납할 수 없었다.
비판의 자유를 요구하는 당원들에게 레닌은 다음과 같이 냉소적으로 답한다. “비판의 자유는 사회민주주의운동 내부의 기회주의적 경향을 위한 자유, 사회민주당(이후 공산당으로 개칭)을 민주주의적 개량 정당으로 전향시키기 위한 자유, 부르주아지의 견해들과 요소들을 사회주의에 도입하기 위한 자유를 의미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될 것이다.”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제1장)
즉 공산당 지도부의 지침 이외 다른 주장이나 비판은 모두 ‘기회주의’니 ‘개량’이라고 비난하며, 당원들과 인민들이 듣지 못하도록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사기를 칠 때 사기꾼들이 사기 대상 인물을 둘러싸고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견해가 전달되지 못하도록 인의 장막을 치는 것과 비슷하다. 공산당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를 싫어했다. 그들의 국호에는 ‘민주’와 ‘공화’가 넘쳐나지만, 위 레닌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공산주의자들은 ‘민주주의’도 조롱한다.
‘민주적 기본질서’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큰 차이가 없는 듯 들린다. 본래 ‘다수의 지배’라는 뜻인 ‘데모크라시’와 달리, 한자어 번역어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말에서 풍기는 ‘백성이 주인’인 듯한 어감을 이용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조작 불가능한 개념인 ‘자유’를 빼내려는 것은 교묘한 선동 술책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이 정립돼 있고, 또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근본 가치도 그렇다.
민주주의의 여러 의미
스웨덴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arieties of democracy institute; V-Dem)에서는 1900년 이래 등장한 모든 국가들을 대상으로, 2600명 이상의 각국 전문가들이 수집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유형별로 개념화하고 측정했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다의성을 인식하여 크게 5가지 원리로 나누어 각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측정한 것이다. 그것은, 선거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y),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 숙의민주주의(deliberate democracy), 평등민주주의(egalitarian democracy) 등이다.
선거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y)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원리이고, 나머지 네 가지 유형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것이다. 선거란 시민들이 정치적 책임을 지는 대표자를 경쟁을 통해 선출하는 것을 뜻한다. 선거민주주의의 수준 평가는, 결사의 자유가 인정되는지, 선거가 부정 없이 투명하게 치러지는지, 정부 수반이 법에 의거하여 선출되는지 등으로 판단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란 국가의 폭정이나 권력의 자의적인 지배로부터 개인과 소수집단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가치를 내포한 개념이다. 위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① 법 앞의 평등과 개인의 자유(equality before the law and individual liberty), ② 행정권력에 대한 사법적 통제(judicial constraints on executive), ③ 행정권력에 대한 입법적 통제(legislative constraints on executive) 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란 구성원들의 직접통치가 이루어지고, 시민들이 모든 정치과정에 능동적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일컫는다. 시민단체나 직접민주주의 등을 통한 ‘선거 아닌 형태의 정치참여’(non-electoral forms of participation)가 강조된다.
숙의민주주의(deliberate democracy)는 공동체의 정치적 의사결정이 공공선(public good)에 입각하여 이성적인 담론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형태를 말한다. 또 평등민주주의(egalitarian democracy)는 각종 재화가 여러 집단에 고르게 분배되고, 교육 보건의 수준이 균질적이어서 비물질적 불평등을 줄이는 정치형태를 뜻한다.
21세기 들어 다시 강조되는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에서 방어해야할 민주주의란 선거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원리까지 포함한 의미로 보인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최근 민족민주당 해산 심판 사건(2003)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을 결정문에 명기하였다. 재판부는 ‘인간의 존엄성, 공동체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구성원들의 참여 가능성,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도출된다는 점, 공권력의 법적 구속성, 공권력에 대한 사법부의 통제’ 등을 거론하였다. 구성원들의 참여는 선거민주주의를, 나머지는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설시한 것이다 (김종현, <방어적 민주주의> 제3장).
한편 우리 헌법재판소는 통진당 해산심판 사건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민주적 기본질서란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모든 폭력적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자유평등을 기본원리로 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정치적 질서”라고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주권 원리,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제도, 복수정당제도 등이 민주적 기본질서의 주요한 요소라고 설시했다 (헌재 2014.12.19. 2013헌다1).
독일 헌재와 달리 우리 헌재는 ‘민주적 기본질서’ 개념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핵심으로 하되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로 보완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민주주의의 실제
선거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된 나라도 드물다. 우리 현실은 어떨까? 경기의 심판으로서 공정한 선거관리를 집행해야할 중앙선관위원장에 집권세력 캠프 출신 인사를 기어코 보임한다. 야당이 공정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언론이 비판해도, 모두 대통령의 인사권이라고 강변하며 무시한다. 이처럼 국가기관의 모든 영역을 대통령의 인사권으로 장악 가능하다는 발상 자체가 독재이다.
많은 국민들이 투개표 감시가 불가능하여 선거 부정이 의심되므로 사전투표제와 재외국민 투표제도의 폐지를 요구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강행하려 한다. 전자개표 시스템은 개표수 뿐 아니라 투표수까지 조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이 시스템을 수입한 이라크 등에서 이미 드러났다. 그래서 이라크와 아프리카 몇몇 나라에서는 한국의 전자개표 시스템을 이미 폐기하였는데도, 막무가내로 그 시스템을 고수한다. 문 캠프 출신 선관위원장은 전자개표 프로그램의 소스코드 공개나, 투표용지 인쇄 관련 QR코드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고집한다.
이 밖에 청와대의 울산 시장 선거 개입에 대해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도 제대로 집행 할 수 없으며, 관련 피의자들은 여전히 공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에도 경찰 등 국가권력을 이용한 관권선거를 하겠다는 성명으로 읽힌다.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선거민주주의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자녀 입시비리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당시 조국은 공직자임에도 국가기관인 검찰의 수사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회피하려 했다. 권력 외곽 조직을 동원하여 조국을 지켜야 한다고 선동하며, 조국 일족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도 특별대접 받고, 비판을 힘으로 억눌렀다. 결국 특권계급이 창설됐고, ‘법 앞의 평등과 개인의 자유’가 노골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또 국회법에 정한 교섭단체도 아닌 4+1이라는 해괴한 단체 주도로 위헌인 공수처법과 선거법 등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의회 의원은 당의 포로가 되어 있고, 당은 청와대의 하수인으로 기능한다. 집권당 의원이라도 말 안 듣는 의원은 권력 외곽 조직을 동원하여 문자폭탄을 날려 활동을 위축시키고, 공천 탈락을 기획한다. 대통령 권력으로 의회를 사실상 접수한다. ‘행정권력에 대한 입법적 통제’가 노골적으로 부정된다.
법무부를 이용해 청와대 비서들은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사실상 면탈하려 한다. 청와대와 그 비서들에게는 법원이 발부한 영장도 집행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정권에 장악당한 방송신문들과 권력 외곽 단체 성원들은 ‘이니(즉 대통령) 맘대로 해’를 주술하고 있다. 이처럼 ‘행정권력에 대한 사법적 통제’ 역시 노골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원리들도 전면 부정되고 있는 현실이다.
표리부동(表裏不同)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속으로 가지는 생각이 다를 때 사자성어로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 한다. 자신의 본심의 숨기고 상대를 속이려 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킬 의지도 없으며, 실질적으로는 그것을 파괴하려는 자들이, 자신들은 자유민주주의보다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한다고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마치 사칙연산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가 미적분학 같은 고급 수학을 한다고 내세우는 것과 같은 꼴이다.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은 참여민주주의 한다면서 자기들을 참여정부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숙의민주주의를 내세우며 ‘경청투어’한다고 별별 쇼를 다 선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인사권을 핑계로 공공의 모든 영역에 걸쳐 ‘견제와 균형’도 없이 권력을 휘두른다. 나라와 서울시 곳곳을 자기 패거리로 채워 국민의 세금을 털어먹지만,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선거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도 제대로 수호할 의지가 없는 자들이므로, 그들의 고상한 민주주의 주장은 선동구호일 뿐이다. 모두 거짓말이다.
일상의 생활 과정에서부터 진실과 양심이 존중되는 공공사회(civil society)를 국민 모두 만들어내야 한다. 선동의 이면을 잘 살펴 정직한 자들이 국가 공직을 담임케 해야 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할 자를 잘 선별해야, 국민 몫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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