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사재기, 그리고 종교에 갇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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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업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2-27 00:02:17

마스크는 마치 선글라스와 같은 효과가 있다. 자외선을 막아 눈을 보호하는 그런 효과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로부터 내 눈을 보여주지 않거나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나타나는 효과다. 일종의 관음 효과다. 나는 상대편을 볼 수 있지만 상대편은 나를 볼 수 없다. 나는 다른 누군가를 힐끔거리며 엿볼 수 있지만 다른 이는 나의 그런 행동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짐캐리 주연의 1994년도 영화가 그랬다. 영화제목이 ‘마스크’였다. 여기서의 마스크는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것이었다. ‘찌질남’ 짐캐리는 어느 날 신비한 마스크를 주워들고는 ‘자신남’으로 변모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자신을 억누르던 외부 세계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영화의 원제가 ‘The Mask from zero to hero’라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에서 영웅이 되도록 하는 마스크인 것이다.

이보다 앞서 미국의 희곡작가 유진 오닐의 1926년 작품 ‘The Great God Brown’(1926년)에서도 마스크가 등장한다. 마스크는 맨 얼굴로는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의 또 다른 면을 표출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이렇듯 마스크는 영화나 문학작품에서 원래 가진 의미를 뛰어넘어 형상화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떤가. 마스크를 영화적, 문학적 의미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출근하는 직장인들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은 마크스를 쓴다. 검은색, 흰색, KF80. KF94, 천으로 된 방한대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것들은 나를 가리고 상대방을 살펴볼 수 있는 관음적 즐거움을 선사하지 않는다. 생존과 관련돼 있다. 타인이 지닌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1m이내 비말감염’으로 옮겨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 말이다. 감염병 전문가들도 “마스크 착용은 쌍방향 백신역할을 한다”며 이의 착용을 강권하고 있다.

코로나19이든 미세먼지이든 이제 마스크 착용은 필수인 시대가 됐다. 개인적으로도 여러 장을 갖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는 어린이용 마스크까지 더하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달 들어 정부는 마크스 사재기와 관련 집중 단속을 실시했다. 수백만 개의 마스크를 매점매석해 시세차액을 노리는 업자들이 식약처와 특사경의 단속에 덜미가 잡혔다.

정부는 26일부터 해외수출을 규제하고 공적판매처 출하를 의무화했다. 마스크 판매업자의 수출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생산업자도 당일 생산량의 10% 이내로 수출이 제한된다. 또 마스크 생산업자는 당일 생산량의 50% 이상을 공적판매처로 신속하게 출고하도록 했다. 공적판매처는 우정사업본부, 농협중앙회 및 하나로마트, 공영홈쇼핑 등이다. 국민이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구매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같은 조치는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된 대구·경북을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 ‘마스크 구하기 전쟁’이 벌어진 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모두가 고생하는 시점에서 매점매석과 같은 행태는 용인될 수 없다. 국민 건강을 담보로 이윤을 챙기겠다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이다. 비윤리적인 것은 그들만의 진리 안에 갇힌 특정 종교 신도들도 마찬가지다.

신천지대구교회 관련자들이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국 확산에 한몫을 담당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신천지교회 신도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던 한 간호사(확진자)는 병원 내 다른 의료인을 감염시켰고 또 다른 신도는 가족을 전염시켰다. 자신이 누구인지 숨김으로써 초기 역학조사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결국 코로나19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런 행태의 근저에는 선민의식이 있다. 선택된 자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논리다. 종교라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항해 ‘선택받지 못한 자’라며 내심 우월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를 희생시켜 남을 구원하려 했던 성인들의 말씀이 무색하다.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제 얼굴을 드러내는 날이 빨리 왔으면 싶다.

홍대업 dbho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