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서촌에 위치한 ‘살롱 두 파퓨메’는 조향사들의 작업실 겸 향수 쇼룸이다. 이름은 ‘남성조향사의 살롱’이란 뜻이다. 일반인들이 직접 나만의 향수를 제작하거나 조향사들의 브랜드 향수를 구매·시향할 수 있는 공간으로 3명의 조향사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조향사는 여러 가지 향료를 섞어 새로운 향을 만들거나 제품에 향을 덧입히는 등의 일을 하는 전문인 또는 직종을 의미한다.

3명이서 향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협업을 통해 이룬 ‘퍼퓨머리’가 방문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점점 알려지면서 이들 조향사는 외부 강연이나 멘토링 등의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퍼퓨머리’란 후각이 어떻게 작용하고 향이 무엇이고 향이 우리 삶에 있어서 주는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구하는 집단이라 살롱 두 파퓨메는 정의한다.

“향수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에서 개인이 브랜드를 론칭해 판매하는 것은 조향에 대한 열정과 사랑 없인 불가능했을 겁니다. 향수가 없었다면 저도 없을 정도로 향수에 대한 애착이 깊죠”

‘살롱 두 파퓨메’에서 맏형이자 조향사 꿈나무들의 든든한 멘토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이성민(38) 조향사는 2008년 우리나라 최초로 ‘퍼퓨머리’를 설립한 1세대이다. 첫사랑에 대한 추억과 설렘으로 인해 향수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 이후엔 환경이 허락지 못해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8년 전부터 조향사의 꿈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해 지금은 2명의 동생들과 함께 협업을 통해 ‘살롱 두 파퓨메’를 운영하고 있다.

“향수를 만들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고3때 지금 아내와 한 첫 데이트에서 시작된 향수에 대한 관심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던 20대 시절 저희 부부가 함께 이겨나갈 수 있도록 위안이 되고 힘을 줬던 것이 바로 ‘향수’였어요”

“기념일을 챙길 수 없는 형편이라 그때마다 작은 향수를 사서 대신 기념하던 것을 모으다보니 10년 뒤에는 300개의 컬렉션이 됐더라구요. 때마침 제가 30살 때 빚도 완전히 청산해 그동안 저희 부부가 체험했던 향을 통한 감정의 치유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마음에 본격적으로 조향사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윤재도(30) 조향사는 군 입대 전까지는 확실한 꿈을 갖지 못한 채 방황 하다 우연히 조향사가 주인공인 TV드라마를 보고 조향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제대 후 조향사 관련 수업을 듣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막일을 했을 정도로 조향사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달랐다.

“조향 관련 직업을 알아보다 한 향료회사에 면접을 보러갔지만 학력을 이유로 회사에선 채용을 거부하며 그냥 왜 이 길로 왔는지 궁금해서 불러봤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제 스펙으론 공장에서 향수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좌절하지 않고 면접장에서 ‘사장님께서 지금 저를 뽑지 않으셔도 내일 가방을 싸들고 이 자리에 또 나올겁니다’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그러자 패기가 좋다며 저를 뽑아주셨죠. 후각 테스트도 높은 점수로 통과해 결국 향료회사 연구원으로 재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향료회사 연구원으로 들어가서 막상 일하다보니 제가 만들고 싶은 향을 만들 수도 없었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다짐도 잊고 살게 되더라구요. 향료회사에서 향기 마케팅 회사로 이직한 후에도 조향사의 꿈을 놓진 않았어요. 그래서 향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예산이나 비품 구입처 등 사업의 틀이 잡히게 되자마자 과감하게 회사를 바로 관뒀습니다”

윤 조향사는 회사를 관둔 뒤 유통 시장의 차가운 반응에 판매할 곳이 없어 몇 달은 매출이 전혀 없는 좌절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블로그마케팅을 펼쳐 점차 매출을 늘려나갔고 그 덕에 지금의 ‘살롱 두 파퓨메’를 세울 수 있는 기반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

막내인 김용진(27) 조향사는 고등학교 때 첫사랑에게서 나는 샴푸향기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향에 대한 관심을 갖던 차 우연히 본 잡지에서 소개되는 조향사라는 직업에 매료됐다.

“조향사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이것이 내 꿈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그래서 대학도 조향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화학공학과로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공부하다보니 조향에 대한 배움이 전혀 없고 학문적이고 실용적인 화학 수업뿐이어서 실망했죠”

“군대에 가서도 조향사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어 학교 교수님들께 전부 메일로 상담을 요청해 휴가 때마다 찾아가 조언을 구해봤지만 조향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 모르는 분이 대다수셨어요. 외국 유학도 알아봤으나 언어적·비용적 문제도 걸렸지만 프랑스·미국 등 조향학교는 동양인 대상으로 가르쳐 주지도 않더라구요. 폐쇄적인 길임을 깨닫고 결국 조향사가 되는 꿈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로 현실과 타협해 화학회사로 취직했지만 여전히 조향사에 대한 미련은 계속 남았었죠”

김 조향사는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계속 조향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한 끝에 지금의 이성민 조향사의 만나 본격적으로 조향사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윤 조향사와 마찬가지로 조향사의 꿈을 위해 잘 다니던 회사를 관뒀다.

3명의 조향사는 각자의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서도 향수를 판매하고 있다.

“조향사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은 바로 향수를 만들어놔서 정작 팔 곳이 없는 것입니다. 노출시킬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어요. 막상 향수 샵에 가면 반기지도 않을 뿐더러 ‘한국에서 니가 뭘’ 이런 반응이 대다수입니다”

윤 조향사는 처음에 자신이 만든 브랜드를 판매할 때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살롱 두 파퓨메’를 오픈한 이후 전세는 역전됐다.

“지금은 오히려 업체 측에서 저희에게 입점하지 않겠냐는 연락이 오고 있어요. 입장이 바뀐거죠. 손님들도 그냥 향수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시향과 함께 향수에 담긴 이야기도 함께 설명해드리면 전시회를 보러 온 것 같다고 많이들 말씀하세요”

실제로 살롱 두 파퓨메는 3명의 조향사가 자신의 향에 담긴 사연을 직접 소개하며 시향도 해주고 있다. 김용진 조향사는 덕분에 재방문율이 매우 높고 주변의 소개로 오는 방문자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찾아오시는 분은 대부분 여성들이긴 하지만 연령층은 매우 다양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오는 유치원생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직접 나만의 향을 만드는 체험을 하시는 걸 매우 신기해하고 좋아하세요. 그리고 향을 통해 문화적 경험을 함께 곁들이는 것은 저희만의 특색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조향사의 문은 좁고도 좁다. 배울 수 있는 길 자체가 폐쇄적이고 잘 알려지질 않았을 뿐더러 국내에서 조향사를 필요로 하는 업체수도 그다지 많지 않다고 이 조향사는 전했다.

“솔직히 수익성을 바라보면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살롱 두 파퓨메’도 조향에 대한 관심과 저희의 향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열정으로 의기투합해 열게 됐지 시장성을 바라본 것은 아니었어요. 조향사가 되고 싶지만 환경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들을 도와 국내에도 더 많은 ‘퍼퓨머리’가 만들어 지게 하는 것도 저희 목표 중에 하나입니다”

이들은 내년부터 창업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 제대로 조향교육을 할 수 있는 아카데미를 만들고 자기 향수 브랜드를 만드는 창작자에 가까운 조향사들의 제품을 함께 판매할 수 있는 유통법인 또한 기획중이다. 국내 향수들이 다양한 유통망으로 해외로까지 나갈 수 있는 기반을 잡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