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독립해 금호석유화학을 ‘신생 대기업집단’으로 만든 박찬구(68) 회장의 후계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후계자로는 3명이 거론된다. 우선 박 회장의 장남 박준경(38)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있다. 또 박 회장의 조카이자 박인천 창업주의 차남 박정구 회장의 막내아들 박철완(38)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점쳐진다. 동갑내기인 이들 두 박 상무들은 각각 그룹 주요사업의 해외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두 사촌형제의 경쟁에 뛰어든 이가 박 회장의 장녀 박주형(36) 상무다.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7월 임원으로 입사한 그녀는 ‘여자는 지분상속 및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다’는 금호家 ‘금녀의 벽’을 뚫은 첫 번째 오너가 여성이다.

‘30대 트로이카’로 불리는 이들 세 상무의 미래와 발맞춰 그룹의 미래에 대한 우려도 솔솔 풍기는 분위기다. 최근 몇 년 새 매출감소를 피하지 못한 금호석유화학의 ‘미래먹거리’가 부재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위기론’도 새어 나왔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총 10개의 계열사로 이뤄져 있다. 그룹의 정점에 오른 금호석유화학을 필두로 금호미쓰이화학, 금호폴리켐, 금호티앤엘, 코리아에너지발전소, 철도솔라, 금호피앤비화학, 금호알에이시, 금호개발상사, 여수페트로 등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달 8일 기준 박찬구 회장 일가는 금호석유화학의 지분 24.60%를 확보해 그룹 전반의 지배력을 갖춘 상황이다. 가장 높은 지분율을 보이는 이는 304만6782주, 10.00%를 보유한 박철완 상무다. 이어 박준경 상무 7.17%, 박찬구 회장 6.69%, 박주형 상무 0.71% 순으로 지분율을 나타냈다.

박철완 상무는 2002년 부친 박정구 전 회장이 타계하자 부친의 주식 114만5763주, 3.36%를 상속받았고 주식 보유분을 꾸준히 늘려 10%에 이르렀다.

대주주 순위 1·2위를 다투는 두 박 상무 중 2006년에 입사한 박철완 상무가 이듬해 입사한 박준경 상무의 1년 선배다. 하지만 임원반열에 오른 것만 놓고 봤을 때는 박준경 상무의 승리라 볼 수 있다. 둘은 입사 8·9년차이던 지난해 상무 직함을 달았다.

두 박 상무 모두 해외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박준경 상무는 합성수지 수출을, 박철완 상무는 합성고무 수출을 도맡고 있다. 합성고무·수지 사업은 금호석유화학의 주요 매출원이다. 지난 1분기 기준 두 사업의 매출비중은 전체의 85.1%를 담당한다. 두 영역 모두 내수보다는 수출에서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두 오빠에게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다. 지난해 7월 임원으로 발탁되며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한 박주형 상무다. 박 상무는 박찬구 회장의 장녀이자 박준경 상무의 두 살 터울 동생이다. 박주형 상무는 앞서 5년간 대우인터내셔널 해외관리팀·화학본부 사업개발팀 등에서 근무한 바 있다.

그녀의 등장에 맞춰 금호석유화학 측은 ‘범금호그룹’ 최초의 여성경영진이라고 치켜세웠다. 금호가는 원만한 승계를 위해 ‘형제세습’과 ‘여성의 경영참여 및 지분상속 지양’을 가족 내부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박 회장은 ‘형제세습’을, 딸 박 상무는 ‘금녀의 벽’을 허문 셈이 됐다.

아직 두 오빠들에 비해 지분율은 모자라다는 평가지만 그룹의 ‘자금줄(구매·자금)’을 담당하는 만큼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박 회장이 평소 ‘여자도 능력이 있으면 경영에 나서야한다’는 지론이 있다고 알려진 만큼 이들 사촌 3남매를 향한 검증작업도 꾸준히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경영능력 검증 시험대 ‘사촌 3남매’…오빠들 ‘부진’ 동생은 ‘존재감 부족’

이들 사촌 3남매를 두고 ‘금호석유화학 트로이카’란 말이 속속 나온다. 아직 30대에 불과한 이들이 차후 금호석유화학의 대들보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금감원 공시 등에 따르면 이들이 맡은 분야의 성적은 그리 신통치 못하다. 최근 금호석유화학은 매년 조단위의 숫자가 바뀔 만큼 매출액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 2013년 5조원(5조1321억원)을 웃돌았던 매출액은 지난해 3조원대(3조9345억원)로 떨어졌다.

이 기간 동안 그룹의 주요 매출원인 합성고무·수지 사업이 동시에 하락했다. 내수보다 수출비중이 높은 만큼 지난해 두 사촌형제는 해외영업의 책임자로 자리했다. 하지만 실적하락을 막지는 못한 분위기다. 지난해 합성수지 수출액은 전년에 비해 1777억원 감소한 6866억원을 나타냈으며 합성고무 수출액 역시 전년 대비 2170억원 떨어진 1조1923억원을 나타냈다.

금호석유화학 후계구도의 ‘다크호스’로 평가받는 박주형 상무의 경우 아직 업무능력을 보여주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향후 후계구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사주 매입만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후계 물망에 오른 이들 사촌3남매는 공통적으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숙제’를 껴안고 있는 상황이다”면서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단일 사업부문을 영위하는 곳인 만큼 다른 그룹처럼 ‘나눠먹기’가 불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들 간 경쟁이 치열해 질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미래먹거리 부재가 약점으로 작용하는 만큼 무엇보다 성장동력 창출이 시급한 상황이다”며 “이들 3남매 간 경쟁이 판가름 나는 것도 결국 누가 어떤 미래 수익원을 마련하느냐가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현재 금호석유화학그룹은 ‘미래먹거리’ 창출에 혈안이 된 눈치다. 그룹 내부적으로는 오는 2020년까지 1등 제품 20개를 보유해 매출 20조원의 글로벌 리딩 화학그룹으로 도약한다는 내용의 ‘비전 2020’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업계와 투자은행 등의 반응은 신통치 못하다. 현재 고무 원가하락과 맞물려 금호석유화학의 최대 시장인 동남아·중국 시장이 유가하락과 경기둔화 등 세계경제의 악영향을 받아 ‘휘청’거릴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각이 우세하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 특성 상 그룹의 미래와 후계 물망에 오른 세 사람이 어떤 성과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달라 질 것이다”며 “다만, 금호석유화학이 석유화학이라는 하나의 사업부문만 있어 분리가 힘들고 또 이들 세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힐 수 있다는 전제하에 또 다른 ‘금호가 형제의 난’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