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鳶)을 통해 조상의 얼과 맥을 계승합니다”

“연(鳶)을 통해 조상의 얼 계승합니다”
3대째 전통연 제작 장인(丈人) 리기태 선생(한국연협회 회장)

진용준 기자(jyj@skyedaily.com)

기사입력 2013-10-06 15:35:13

북촌한옥마을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밀집지역이다. 이곳에 한국연협회 리기태 회장이 전통연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북촌전통공방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아버지 윗대부터 풀, 나무 등 자연재료로부터 기반한 전통연 제작기법을 보유하고 있는 장인(匠人)이다. 그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연을 접하고 만들 수 있도록 자신의 호인 ‘초양’을 따 이른바 ‘초양법’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있다. 현대인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각종 첨단문명에 빠져 설, 정월대보름 등 세시풍속을 잊을 수 있는 상황에서 리 회장은 전통문화를 살리기 위한 일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그는 전통연을 계승·발전하기 위해 전국 연날리기 대회 등 많은 행사를 하면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전통연은 액운을 날려 보내는 의미도 담겨 있어 시민들에게 보급하기 좋은 전통문화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리 회장은 전통연의 원형을 보존하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리 회장은 영국왕립식물원에 소장된 124년 된 조선시대 서울연을 발굴해 원형복원을 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서울연을 아예 국내로 환수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우리의 맥이 숨 쉬고 있는 전통연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 온 리기태 한국연협회 회장을 만났다.

▲ 전통문화단체 한국연협회 회장인 초양 리기태 선생은 북촌한옥마을의 ‘리기태 전통연 공방’에서 전통연기법을 전수하고 있다. 사진은 전통연기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리 회장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한국전쟁이 끝난 후 서울 종로구 인왕산 산자락에서 틈만 나면 하늘높이 연을 날리는 한 아이가 있었다.

전쟁난 속에 놀 것이 변변치 않았던 그 시절에 연과 함께 살아온 아이는 현재 전통문화단체 한국연협회 회장 초양 리기태 선생(64)이다.

인터뷰에 앞서 특이한 성에 대해 묻자 리 회장은 “고유성씨는 두음법칙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례에 의해 리씨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리 회장을 만난 곳은 북촌한옥마을의 ‘리기태 전통연 공방’이다. 안국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빨래터역에서 얼마안가 나오는 공방은 전통 한옥 모습 그대로 서울시 준 문화재로 지정돼 있었다. 서울시 소유인 북촌전통한옥의 위탁운영자로 지난 2008년부터 선정돼 왔다고 한다.

리 회장은 “옛날에는 실이 약해 연줄이 잘 끊어져 펄럭이는 연이 경복궁 경회루 안마당까지 떨어졌다. 난 경복궁에 들어가 그 연을 갖고 나온곤 했다”며 어릴적 적 연에 대한 즐거움을 회상했다.

할아버지·아버지 3대째 자연재료 연제작 보급

이곳에서 리 선생은 연을 만들고 5명의 제자에게 전통연기법을 전수하고 있다. 리 회장의 자녀 3명중 2명도 아버지로부터 전통연 만드는 기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 리 회장은 선조부터 내려오는 전통연 제작 기법을 원형 그대로 전수받아 시민들에게 우수한 전통 연 만드는 법을 전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제자 중 한명은 전주에서 새벽차를 타고 1주일에 한번씩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리 회장의 공방을 찾고 있었다.

집안대대로 내려 온 전통연 기법은 할아버지인 이천석 선생부터 아버지인 가산 이용안 선생, 그리고 리 회장으로 계보를 이어왔다.

리 회장은 “전통연 기법은 (자신의)할아버지 위에서부터 내려온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이어 “아버지는 산이나 들을 찾아 다니며 얻은 풀, 나무를 통해 한지위에 천연 채색을 하고 소가죽을 얻어와 끓여 기름을 걷어낸 아교와 생선부레를 끓여 얻어진 아교를 섞어 풀을 만드셨다. 이것을 이용해 면실과 뒷산 대나무를 구해 전통연을 만들었다”고 전통 연만들기 방법을 소개했다.

리 회장은 이 같은 전통기법에 누구나 쉽게 연을 만들어 날리 수 있도록 자신의 호를 딴 초양법 두가지 기술을 보유·전파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청 홈페이지의 ‘우리문화 원형 전통연 만들기’를 통해 시민들이 손쉽게 연을 만들고 날릴 수 있도록 동영상 강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리 회장은 6살때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만큼 연은 리 회장에게 평생 동반자가 돼 왔고 지금은 그렇게 한 몸처럼 됐다. 리 회장은 지난 1978년 전통문화단체인 한국연협회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취임한 후 남다른 연 사랑을 실천해 왔다.

리 회장은 연협회 창립 취지에 대해 “우리의 전통문화 전승을 누군가는 해야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연을 날려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리고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를 다시한번 되살리자는 뜻에서 창립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많은 외래문화가 들어오고 그것에 의해 전통문화가 배척되고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의 전통문화로 전해 내려오는 이 한가지 길을 계속해서 걷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연협회에는 전통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현재 온오프라인 약 2만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은 전통 연날리기 대회 등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우리의 세시풍속을 이어가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3~4명의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시작한 협회에는 현재 온오프라인 총 2만1000명이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방대해졌다.

전 세계에 한국의 전통연 알리고 ‘원형복원’

리 회장은 지난 1993년 그리스 아테네 국제연날리기대회에 한국대표로 나가 전통연을 전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리 회장은 “세계에서 없는 방구멍연과 줄연(가오리연을 수십게 이은 연), 스포츠카이트(꼬리에 50미터 길이의 꼬리가 달린 연)를 들고 그리스 국제 대회에 선보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리 회장은 “우리 고유의 연 70여개 가운데 방패연으로 불리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지만 중간에 구멍이 뚫려 방구멍 연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리 회장은 서울시 후원으로 서울특별시장 대상 서울시민 연날리기대회를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2차례 열었다. 또 민속연 전시회인 서울시전통문화대전을 서울역사박물관 등에서 3차례 개최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전통문화 전승 발전을 위한 행사를 열고 있다는 것이 리 선생의 설명이다.

특히 영국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 Kew)에 소장된 124년 된 조선시대 서울연을 발굴한 리 회장은 일부 훼손된 것을 자문해 원형복원에 성공시킨 바 있다.

서울연은 1886년 고종 때 대한민국 한성에 최초로 영국영사관이 개관됐을 당시 제2대 토마스 와턴(Tomas Watters, 1840~1901) 주한 영국영사가 1888년 고국으로 귀국 시 조선시대 한성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아 가져가 영국의 왕립식물원에 소장시킨 것이었다.

이에 리 회장은 지난해 문화재환수전문가국제회의에서 소피델레피에르 유네스코 문화유산보호협약 담당관과 힐러리바우어 전 영국문화미디어체육부 국제문화재과장 등을 만나는 등 영국왕립식물원에 소장된 조선시대 서울연 환수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리 회장은 “지금까지 전통원형을 확인할 수 없었던 조선시대 서울연의 문화재 발굴은 큰 쾌거가 아닐 수 없다”며 “영국으로부터 우리 전통연을 환수받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그는 서울시문화관광디자인본부와 조선시대 서울연 환수에 대해 긴밀히 협의를 진행 중에 있다.

리 회장은 전통연 계승발전의 중요성에 대해 “우리는 5천년의 역사라고 하지만 장인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며 지금까지 이어내려 오고 있다”며 “우리가 이 시대에서 알아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은 모든 사람에게서 이어져 내려가야 한다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