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순간 만들어지는 재즈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18년째 재즈 음악계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실력파 재즈 보컬리스트

정동현 기자(dhjeong@skyedaily.com)

기사입력 2021-03-18 00:05:16

▲재즈가수 남예지 씨는 2003년에 데뷔해 지금까지 18년째 활동하고 있는 실력파 재즈보컬리스트이다. 현재는 가수활동도 하면서 대학 강의와 재즈잡지 칼럼 연재 등을 통해 자신의 음악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사진=황정아 기자] ⓒ스카이데일리

“재즈의 매력은 즉흥성이라고 봐요. 음악의 내용이 지금 연주되는 순간에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음악 장르가 음악적으로 정해진 내용을 재현한다면 재즈는 즉흥적인 양식이 포함돼 있어서 결정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요. 연주자들의 다양한 고민이 이 순간에 재조합돼 만들어지는 것이라 연주할 때마다 그 내용이 항상 달라진다는 점이 재즈의 매력이죠. 재즈의 매력에 빠져 활동 초기인 20대 때는 저만의 음악 색깔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은 더 자유로운 표현에 관심사가 옮겨졌죠.”

3월 따뜻한 봄날에 대학로에 위치한 오래된 카페에서 만난 재즈가수 남예지 씨(40)는 기자일행에게 상냥한 미소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기자일행을 맞아줬다. 18년간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남 씨는 이웃집 누나 같은 친근함과 함께 박사출신 가수로서 전문적인 실력파 뮤지션의 면모를 드러냈다. 남 씨는 가수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을 너무 좋아했어요. 학창 시절에 김건모 씨의 음악들을 많이 듣기도 했었죠. 제가 사실 수줍음이 많아서 남들 앞에서 나서는 것을 어려워하긴 하지만, 밤을 새면서까지 노래를 부를 정도로 이미 음악을 사랑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대학교 때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공연도 하고 무대에 많이 서게 됐고 동아리의 과 선배인 AG성은 언니와 함께 음악대회에 참가해서 대상을 받기도 했죠. 재즈 음악은 처음에는 잘 몰랐었지만 2003년에 소속사에서 우연한 기회로 재즈를 접하게 되면서 재즈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그러면서 20년 가까이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네요.”

2003년 데뷔… 작사‧작곡, 공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과 대학 강의로 바쁜 시간 보내

▲남 씨는 발표한 곡 중에서 자신있게 추천하고 싶은 곡으로 1집 앨범에 수록된 곡인 ‘춘천가는 기차’, 키네틱 플로우의 ‘Sugar rain’, 3집 앨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수록곡인 ‘Anna(안나)’, 작곡가 겸 가수 래피와 함께 작업한 ‘너만 없어 고양이’, 곧 발표할 신곡 ‘오늘 하루’를 꼽았다. ⓒ스카이데일리

남 씨는 중앙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고, 대학교 재학시절에 참여한 Mnet의 ‘Idream 가요제’에서 R&B 부문 대상을 받으며 가수로서의 꿈을 꾸게 된다. 이후 2003년부터 재즈 음악계로 데뷔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프로젝트 앨범 ‘누보송(Nouveau Son)’에 참여했다. 남 씨는 김현철의 노래인 ‘춘천가는 기차’를 재즈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곡을 선보이며 이름이 알려졌고, 재즈 음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4년에 본인의 1집 앨범 ‘Am I Blue’를 발매하면서 솔로가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저는 이탈리아 출신의 재즈 아티스트인 로베르타 감바리니의 공연을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본 적이 있어요. 재즈 보컬들 사이에서 엄청난 존재로 평가받는 사람이었는데 그분의 공연을 가까이 보는데 앨범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새롭고 좋았어요. 공연이 끝나고 사인을 받기도 했죠. 저는 재즈 클럽에서 공연을 많이 하는데, 저도 공연 때마다 같은 느낌을 내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남 씨는 재즈를 하는 데 있어 자신의 강점은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하려는 호기심이 강하다는 것과 맘에 드는 곡은 다 불러보려는 욕심이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경험상 도전 뒤에는 늘 뭔가 남는 것이 있음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새로운 실험을 하는 모든 선배 및 동료 재즈 뮤지션들을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남 씨는 자신의 발표곡 중에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곡으로는 1집 앨범에 수록된 ‘춘천가는 기차’를 언급하며 3집 앨범 수록곡인 ‘Anna’에 특히 마음이 간다고 밝혔다. 이 곡은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목소리가 어우러진 발라드 곡으로 피아노의 절제된 연주 위에 서정적인 멜로디를 가만히 읊조리듯 하는 음악이다. ‘Anna’는 누군가의 친구이고 누군가의 가족이고 어린 시절 누군가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는 2016년에 3집 앨범을 내놓은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제가 2016년에 발표했던 3집 앨범인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는 정말 시행착오가 많았던 앨범이기도 하죠. 앨범 수록곡 전곡을 작사‧작곡하고 프로듀싱과 앨범 홍보도 제가 직접 나서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런 만큼 특별한 애정이 있는 앨범이에요. 이 앨범에는 저만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Anna’는 그냥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노래로 쭉 써내려간 곡이라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남씨는 MC스나이퍼, 키네틱 플로우, 랍티미스트 등 힙합 뮤지션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어쩌다 어른’, 2019년 ‘나만의 속도와 나만의 방향으로’, 2020년 ‘너만 없어 고양이’까지 매년 함께 곡 작업을 하면서 지금까지 소중한 인연을 맺고 있는 작곡가 겸 가수, DJ로 활동 중인 래피 씨에 대해 설명했다.

“2018년부터 (해마다) 한 곡씩 같이 작업하고 있는 래피 씨는 저에게 고마운 분이에요. 대학생 시절, 대학힙합연합 활동을 통해 알게 됐어요. 졸업하고 한참 후에 우연히 저에게 연락을 주셨는데, 그때부터 제가 글 쓰는 일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셨고, 매년 음반 작업도 함께 하고 있어요. ‘너만 없어 고양이’는 지난해 3월에 발매된 곡인데, 함께 신나고 즐겁게 녹음했던 거 같아요. 게다가 래피 씨도 저도 고양이를 정말 사랑하거든요. 올해에는 ‘오늘 하루’라는 신곡을 함께 작업 할 예정인데 많이 기대되고 설레죠. 지금까지 발표됐던 곡들과는 다른 느낌의 곡이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2019년 12월27일 ‘CGV청담씨네시티’에서 진행했던 ‘재즈와 사랑에 빠지는 다섯까지 질문’에 참여한 재즈가수 남예지 씨. [사진=남예지 씨 제공]

남 씨는 신인 때 영화음악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4년에 개봉한 영화 ‘효자동 이발사’ O.S.T로 알려진 곡 ‘사랑합니다’가 그의 작품이다. 그 다음 해에는 영화 ‘무영검’의 ‘Shadowless Sword’를 발표하기도 했다. 남씨는 그 당시 영화 음악에 참여했던 이야기와 평소에 좋아하는 영화음악에 대해서 말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우연한 기회로 작업했던 곡이에요. 영화의 타이틀곡인 ‘사랑합니다’였어요. 20대 신인 시절에 했었는데 좋은 경험을 했죠. 기억에 남는 영화음악은 최근에 재밌게 봤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 나온 마일스 데이비스의 곡 ‘Generique’이에요. 여주인공 해미(전종서)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 이 곡이 나왔는데 원래 알고 있던 곡이었지만 그 장면에 삽입돼 나오니 마치 이 영화를 위해 만든 음악인 듯한 느낌이었죠.”

남 씨는 20대 때는 목소리 톤을 다듬기 위해 음역대마다 고운 소리를 낸다거나 롤 모델로 생각하는 보컬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신만의 가창 스타일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30대 이후에는 악기로서의 보컬이 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특히 Mnet의 ‘Idream 가요제’를 떠올리면, 지금은 보컬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AG성은과 대회를 위해 피나는 연습을 했던 추억이 있다고 밝혔다.

2009년부터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있는 남 씨는 모교인 중앙대학교의 초빙교수로 후배들에게 음악 수업을 진행하면서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의 추억이 가득 담긴 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있어 새로운 경험이죠. 대학교 때는 학과 활동이며 동아리 활동으로 흑석동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학교에 대한 애정이 특별한 편이에요. 지금 강의하고 있는 곳은 중앙대 안성 캠퍼스라서 캠퍼스는 다르지만 그래도 모교에서의 강의라 애정이 가죠. ‘기초 앙상블’과 ‘음반 제작 실습’이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어요. 대학원에서도 강의한 적은 있었지만 학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라 새로운 기분으로 즐겁게 강의하고 있어요.”

지금은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남 씨는 처음 가수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는 2003년에 ‘수요예술무대’로 데뷔했는데, 당시 무대 공포증이 심해 온몸에 식은 땀이 나고 떨려서 그때는 어떻게 공연을 했는지도 몰랐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당시엔 힘들었던 순간들이 지금은 경험으로 쌓여 학생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가 서른살 무렵 무대 공포증이 극도로 심해졌던 시기가 있었어요. 1년 정도는 공연을 다 피해다닐 정도였죠. 더불어 사람들도 피하게 되더라구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아직도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늘 노력하고 있어요. 저처럼 무대공포증이 있는 학생들과 상담을 할 때 저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해요.”

남 씨는 재즈뮤지션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재즈의 요소들을 가져와서 재즈적인 음악을 하는 것과 본격적인 재즈를 하는 것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본격적인 재즈를 하기 위해서는 악기로서의 보컬훈련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그에 비해 재즈 시장은 크지 않아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기 힘든 구조라 직업으로서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남 씨는 전문적인 재즈 연구자로서 자신의 연구를 공유하기 위해 전문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저서를 준비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면서 또한 재즈가수로서의 활동 계획도 밝혔다.

“석사과정을 거치며 우리나라에서 재즈 음악에 대한 연구는 음악 분석이나 음악사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었죠. 박사 과정에서는 인문학과 재즈의 융합연구를 해보고자 ‘재즈의 미학적 연구’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썼어요. 이와 관련해서 재즈전문잡지인 ‘재즈 피플’에 21회 분량의 연재를 했어요. 올해는 박사논문과 연재 글을 합해서 재즈에 대한 책을 발간할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래피 씨와 함께 이번 달 안에 녹음할 신곡 ‘오늘 하루’도 곧 발매될 예정이에요.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재즈도 많이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