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기일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3년 간 이어져 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분쟁이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관측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소송에서 패소한 SK이노베이션은 기사회생할 수 있게 된다. 반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의금 협상에서 상당히 불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현지시간으로 11일까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최종 판결에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내린 조치에 대해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소한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올해 2월 완승했다. 미국 ITC가 SK이노베이션에게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최종 판결을 내리면서다.

이 판결로 ITC는 SK이노베이션에게 향후 10년 간 배터리 부품·소재 등에 대해 미국 내 수입 금지 조치를 명령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ITC의 결정일로부터 60일 간 해당 조치가 미국 공익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과거 애플·삼성의 분쟁 사례처럼 백악관이 공식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현지시간으로 11일 밤 12시까지 별다른 발표나 언급 없이 거부권 행사 시한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앞둔 상황에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공장이 있는 미국 조지아주가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1·2공장 건설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한 상태다. SK이노베이션은 최소 2600여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조지아주와 미 정치권에 강조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미국 조지아주 공장을 그대로 두겠지만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ITC의 결정이 확정될 경우 조지아주 생산 설비를 헝가리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공개하면서 미 정치권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SK 입장에선 LG에 줘야 할 합의금이 그동안 공장 건설에 투자한 매몰 비용보다 크다면 차라리 미국 시장을 접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과 김종훈 이사회 의장 등 고위급 인사들이 미국을 방문해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ITC 결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미국에서 철수할 위기에 처했다”고 설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뿐만 아니라 SK는 미국 조지아주와 미 정치권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샐리 예이츠 전 미 법무부 차관을 미국 사업고문으로 영입했다. 예이츠 고문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적극 설득하기 위해서다.

SK이노베이션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자 LG에너지솔루션도 미 정치권을 공략하기 위해 5조원 규모의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나섰다.

또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철수한다면 해당 공장을 LG에너지솔루션이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LG·SK 모두 미국 조지아주와 미 정치권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놓고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LG에너지솔루션의 승리로 마무리 된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SK이노베이션은 극적으로 기사회생하게 된다. 미국 ITC가 SK에 명령한 배터리 부품·소재 등에 대한 10년 간 미국 수입 금지 결정이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ITC의 결정이 확정돼 그대로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에 지금보다 더 많은 합의금을 요구할 수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SK이노베이션에 3조원 가량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1조원 가량을 제시하고 있어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는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낮다고 보고 있다. 미국 ITC가 설립된 1916년 이래로 100년이 넘는 동안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 정부 입장에서 해외 기업 간 분쟁에 개입해 한쪽 편만 들어주기 어렵고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윤리적 잣대가 엄격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거부권을 행사하기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주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분쟁을 결론 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