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로나 백신 접종 차질로 물의를 빚고 있는 정부가 돌연 ‘백신여권(전자예방접종증명서)’ 도입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백신 접종자를 대상으로 ‘백신여권’을 발급해 과거처럼 세계 각 국을 제재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당초 정부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 계획과 달리 현재로서는 국가 간 통용 기준도 없고 국내에서 종이증명서를 대체하는 수준에 불과해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백신 안전성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일종의 미끼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나온다.

 

 

앞서 백신여권 도입을 추진하던 정부는 16일부터 코로나19 백신 전자예방접증명서를 발급한다고 밝혔다. 그간 예방접종도우미나 정부24 누리집에서 출력하는 종이형식의 ‘예방접종 증명서’ 서비스만 제공했으나 종이증명서 단점을 보완한 전자 증명서를 발급한다는 것이 골자다. 당초 정책의 최종 목표인 여권 역할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코로나 전자 예방접종증명서를 통해 증명서의 위·변조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최소 개인정보를 활용해 코로나19 접종사실을 인증하는 종이증명서 단점을 보완했다. 위·변조 방지 등을 위해 블록체인과 분산신원인증(DID)기술도 적용됐다. 그 일환으로 질병관리청은 블록체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블록체인랩스’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블록체인’이란 네트워크에 분사된 개체들의 합의 프로토콜을 통해 합의된 블록을 암호학적 해시 함수를 이용해 덧붙이기만 가능토록 연결된 분산 원장을 말한다. 중개자 없이도 데이터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이다.

블록체인에는 전자 예방접종증명서 진위여부 확인을 위한 ‘공개키’ 정보만 기록되고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는 보관되지 않는다. 가상화폐를 활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보저장소(노드)간 합의 알고리즘을 구현해 블록체인 사용 시 수수료도 발생하지 않는다.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질병청과 복지부, 행안부와 보건의료정보원 등 4개 기관에 저장소 5식을 분산·설치했다.

 

전자 예방접종증명서에 개인키로 서명·암호화해 접종자에게 발급하고 공개키만을 불록체인 정보저장소에 보관한다. 전자 증명서를 QR코드로 제시한 경우 검증자의 스마트폰과 통신해 접종관련 최소정보만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며 검증내역은 제3자가 확인할 수 없도록 개발됐다.

 

 

정부가 첨단 기술까지 도입해 야심찬 계획을 밝혔지만 정작 여론의 반응은 냉담하기만하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백신여권 도입을 강행했다는 반발의 목소리와 함께 실질적인 효과는 전무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현 상황에서 백신여권 자체가 백신접종을 증명하는 수단에 불과하고 백신접종을 증명한다 해도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다는 이유에서다.

 

보건당국은 일단 ‘백신여권’이라는 표현을 사용치 않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국제적 활용은 정책적 결정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인정받고 여행 시 규제 면제 부분이 ‘여권’의 메인 기능인데 증명서 해외국가 통합 과정과 수칙 면제조항들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두고 여론 안팎에선 정부 스스로가 ‘백신여권’이 현재는 백신을 맞았다는 증명서 외에 어떠한 기능도 없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직장인 김호겸(30세)씨는 “정부가 목표로 하는 집단면역이 형성된 것도 아닌데 백신여권 보급화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백신여권을 밀어붙이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백신여권을 앞세워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백신 접종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와 주목된다. 안전성 논란 속에서도 백신을 어떻게든 맞혀 접종률을 높이려는 일종의 미끼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밖에도 기록의 공유로 인한 사생활 침해와 정보 악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국민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을 통해 “대한민국 행정부가 백신 여권의 도입을 독단적으로 결정해 발표했다”며 “국민 의견과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고 국민 삶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불법적이고 월권적인 행정이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백신여권’을 통해 기존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사회적·국제적 합의가 되기 이전에 섣불리 도입하는 것은 결국 국민 혼란만 부추기는 행태라고 지적한다.

 

최재욱 고려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백신을 접종을 증명하는 것이 보편화될 경우 여행제한이 풀리고 국민의 정상적인 경제활동도 가능해지는 것은 맞다”며 “그러나 현 상황에서 백신여권은 의미가 없다. 때문에 집단면역형성이 먼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백신접종이 활성화돼 코로나 팬데믹이 완화될 경우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며 “정부는 K방역 같은 슬로건에 집착하지 않고 하루 빨리 국민이 마스크를 벗고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한솔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