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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안에 ‘바보’가 있었더라면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기사입력 2021-04-28 09:59:53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이 정부의 고질병 ‘집단 사고’ 보여준 기모란 기용
/‘백신확보 실패’ 등 코로나 3대 패착도 여기서 비롯
/같은 편마저도 ‘싫은 소리’ 하면 적대시하는 단계
/‘리어왕’의 ‘현명한 바보’는 이들에 꼭 필요한 존재
/아직도 ‘검찰개혁’ ‘언론개혁’ 되뇌는데 절망감 느껴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대통령이 코로나 전권(全權)을 맡겼다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불철주야 뛰고 있는데도 청와대 안에 굳이 새 의자를 만들어 그를 모셔온 이유가 아리송하다. 기 씨는 ‘코로나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정권 편을 들었다. 그의 판단은 번번이 빗나갔다. 일단 전문성에서 낙제다. “백신 수급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그의 한마디가 모든 걸 말해준다.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로 코로나 대응의 고삐를 바짝 조이기는커녕 어설픈 인사의 끼어들기로 혼란만 가중되지 않을까 의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의 임명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 것은 솔직히 그 발상이 놀라울 정도다. 김어준 방송의 단골 출연자, 더불어민주당 총선 후보로 뛰었던 남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신영복과 같이 활동한 부친 등 그의 배경이 속속 드러났다. 역시 ‘같은 편’ 의식이 작동한 결과다.
 
이 정부는 듣고 싶은 말만 귀에 들어오는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져 있다. 기 씨는 그들에게 고맙고 미더운 존재다. 방역처럼 냉정한 과학적 접근이 요구되는 분야까지 우리 편을 고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자신들과 반대되는 의견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을 넘어 적대시한다.
 
최근 보도된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인터뷰를 보면 문희상 같은 친문(親文) 조차도 정권이 싫어하는 말을 하면 철저히 아웃을 당한다. 그가 2018년 12월 문 대통령에게 “혼밥 하시느냐”고 물었더니 그 이후로 2년 3개월이 넘도록 청와대에서 그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이 사람을 잘 안 만나는 걸 아프게 지적한 것에 대한 뒤끝일 공산이 크다. 그래도 문 전 의장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니 이 정도에 그쳤지, 반대 세력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징적인 케이스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김영배 전 부회장이다.
 
최근 김 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수사의 발단은 김 전 부회장이 이 정권 초기에 경제 문제와 관련해 ‘쓴 소리’를 한 것에서 비롯됐다. 문 대통령이 “반성하라”고 질타하자 고용노동부 경찰 검찰 국세청 등 정부 기관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이른바 ‘영털’을 했다.
 
그래서 나온 혐의가 경총이 수십억원 대 비자금을 만들었고 김영배 부회장이 거액의 업무추진비를 유용했다는 것이다. 한때 언론에서 떠들썩했던 사건이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혐의 없음’이었고 자녀 학자금을 규정보다 더 받은 것만 인정돼 벌금 500만원의 약식 기소에 그쳤다. 그에 대한 ‘집단 린치’는 정권이 한 개인을 상대로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됐던 김영배 전 부회장의 ‘쓴 소리’를 다시 살펴보자. 그는 2017년 5월 경총포럼에서 “근본적인 해결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넘쳐나면 산업 현장의 갈등이 더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같은 해 11월에는 “16.4%의 최저임금 인상은 산업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보면 그렇게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다. 지나친 최저임금 인상과 무리한 정규직 전환은 이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 실패로 판명됐다. 20대 유권자를 등 돌리게 만든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도 떠오른다. 싫은 소리여도 겸허하게 받아들였으면 득이 되었을 ‘약’을 스스로 막아버린 꼴이다.
 
요즘 청와대 분위기는 안 보아도 뻔하다. 생각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니 늘 비슷한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것이다. 매사를 아무리 따져 봐도 우리가 옳기 때문에 결국 틀린 것은 다른 사람들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가짜 뉴스’ 타령이 그래서 나온다. 더구나 경직되고 편향적인 인상의 대통령 앞에서 참모들은 다른 의견이 있어도 감히 내놓지 못한다.
 
이런 악순환 구조는 이 정권에서 유독 심하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통치자들이 극히 경계해온 바이기도 하다. 조금만 생각이 있는 통치자라면 이래서는 일을 크게 그르칠 수 있다는 판단에 도달할 것이다. 이를 보완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문학 작품에 종종 나타나는 캐릭터들이 있다. ‘현명한 바보광대’들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아예 ‘바보(fool)’라는 이름의 조연을 등장시킨다. 왕 옆에 머물면서 익살과 해학으로 웃음을 선사하는 광대의 역할이다. 이 ‘바보’가 갖고 있는 특권이 있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리어왕’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다룬 비극이다. 왕은 세 딸 가운데 진실한 코델리아는 내쫓고, 위선적인 다른 딸 거너릴과 리건에게 자신의 왕국을 물려준다. 결과는 배신과 파멸이었다. ‘바보’는 이 과정에서 비판의식을 갖고 돌아가는 상황을 직설적으로 왕에게 전달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견하기도 한다. 비록 우스꽝스러운 얼굴임에도 통치자를 깨어 있게 만드는 존재다.
 
권력 측근의 ‘현명한 바보’들은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있었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에서 왕과 귀족들은 난쟁이 등 장애가 있는 사람을 고용하는 관습이 있었다. 왕은 이들이 악령을 쫓을 수 있다고 믿거나 궁정 엔터테이너로서 즐거움을 얻고자 했다. 이 관습은 르네상스 시대에도 이어졌다. 이들 중에는 뛰어난 분별력을 발휘한 자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통치자들이 바보광대가 어떤 말을 해도 허용한 것은 다른 신하들이 차마 말 못하는 ‘또 다른 진실’을 구하려는 뜻이었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고전(古典) 속의 ‘현명한 바보’는 그런 역사의 반영이다.
 
이번 코로나 문제에서 정부는 세 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못한 것, 백신 확보 실패, K방역 과신(過信)이 그것이다. 기모란 방역기획관은 그때마다 정부 편에 서서 맞장구를 친 사람이다. 지금은 청와대 내에 같은 의견을 추가할 게 아니라, 다른 시각과 바른 말을 해줄 사람이 필요할 때 아닌가.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에도 정권은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검찰 개혁’ ‘언론 개혁’ ‘친일 청산’을 외치고 있다. 이런 사태를 ‘구제불능’이라고 하는가. 청와대 내부에도 ‘현명한 바보’를 일부러라도 두었더라면 여러모로 달라지지 않았겠느냐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싶어도 이들이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는 걸 보면 다 부질없는 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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