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없이 간첩으로 지목돼 보위부에 끌려간 뒤 75㎏이던 몸무게가 10개월 만에 35㎏으로 줄었어요. 벽도 못 짚고 다닐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죠. 이럴 바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끝내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간첩이 맞았다고 거짓 자백을 하고 말았죠. 하루하루가 고통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함경남도 요덕군 일대에는 ‘요덕정치범수용소’로 일컬어지는 ‘15호관리소’가 있다. 이곳에는 국가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체사상에 어긋나거나 김일성 가문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말하는 등의 ‘국가원수 모독죄’를 저지른 이들도 수용된다. 수감자들은 하루 16시간 노역을 하고 사상교육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정광일 노체인(No Chain) 대표(58)도 무고하게 간첩 혐의로 붙잡혀 15호관리소에서 2000년부터 3년간 복역했다. 억울한 옥살이를 끝낸 뒤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2004년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북한 정치범수용소 피해자 가족협회 노체인을 운영하며 정치범수용소 해체 운동과 북한에 외부 정보를 들여보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 모처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나눴다.

 

 

정 대표는 1962년 중국 연길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이 발생한 시기였다. 지식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조선 특무(간첩)’라는 누명을 쓰고 홍위병에 의해 감옥에 끌려갔다. 가족들은 온갖 박해를 받았다. 1969년 12월, 그의 어머니는 정 대표를 포함한 4남매를 데리고 북한으로 야반도주했다. 이후 그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군에 입대해 당시 조선인민군 5군단 74여단에서 군사복무를 했다.

 

“10년간 군사분계선인 강원도 철원군 마장리 일대에서 포병으로 복무했어요. 1989년에 제대하고 나선 회령전동기공장에 배치됐죠. 회령에서는 비교적 간부가 많이 배출되는 유명한 공장이었어요. 이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1992년 조선노동당 824연락소 지도원으로 임명돼 무역회사에서 근무했죠. 일명 ‘외화벌이’였어요. 중국에 자주 드나들었죠.”

 

그는 공적인 무역업무로 수년간 중국을 드나들던 중 1999년 7월 간첩 혐의로 보위부에 체포됐다. 중국에서 남한 사람들과 접촉했다는 이유였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남한 사람이었다. 당시 무역 흑자를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국가적인 계획 이양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중국 사람들한테 물건을 팔아선 남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일하는 과정에서 어떤 소개받았어요. 당시 그 사람이 안기부(현 국정원) 사람인 줄 모르고 자주 술을 마시며 친분을 쌓았어요. 그러다가 1999년 7월 북한으로 들어가는데 체포됐어요. 간첩이라는 것이었죠. ‘네가 상대하는 사람이 바로 안기부 사람이다’고 하더라고요. ‘난 간첩이 아니다. 난 안기부가 뭔지도 모른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어요.”

 

간첩죄로 회령보위부에서 4개월, 이후 청진보위부에서 10개월간 구금됐다. 진술을 거부한 채 별의별 고문을 받았다. 특히 두 손을 뒤로 묶고 쇠창살에 수갑 채운 상태에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잠도 못 자게 하는 일명 ‘비둘기고문’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구류장에서 체중이 75kg에서 35kg으로 줄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간첩이라고 거짓 자백을 했죠. 간첩 의무를 받았는데 수행은 하지 않았다는 허위 진술이었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대놓고 ‘네가 여기서 버티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냥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하루하루가 고통이라 그냥 인정해버렸죠. 이후 어디론가 끌고 갔어요. 도착하니 요덕정치범수용소라 하더라고요.”

 

정치범수용소 생활 역시 참혹했다. 새벽 4시에 기상해 저녁 8시까지 고강도의 노동을 시켰다. 혼자서 하루에 350평(약 1157m²)씩 김을 매야 했다. 저녁 9시부터 밤 11시까진 사상교육을 들어야 했다. 식사라고 해봐야 옥수수에 두부콩을 섞은 것 정도였다. 하루 과제를 끝내지 못하면 밥도 주지 않았다. 대부분의 수감자는 영양실조로 죽었다.

 

“우리 가족들, 특히 두 딸의 장래를 위해 반드시 살아서 나가야 한다고 다짐했죠. 여기서 나가려면 뭔가 해야만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6개월 만에 반장을 하게 됐죠. 1년 반 동안 반장을 하다가 중간에 잠시 그만뒀어요. 다시 6개월간 반장을 하다가 석방됐어요. 반장을 하다 보니까 수감된 개개인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죠. 나중에 남한으로 와서 수감자 180명의 명단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게 된 배경이었어요. 거기서 죽은 사람들의 사망 원인 등 이런 걸 제가 잘 알고 있죠.”

 

그는 2003년 4월 석방됐다. 딸들 역시 정치범 자식으로 낙인 찍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등 참혹한 생활을 했다. 너무 분하고 억울했던 그는 석방 12일 만에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떠났다.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그는 남한으로 바로 이동하지 않고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남한에 보내는 일종의 브로커 생활을 했다. 2004년 탈북자 470명을 캄보디아로 보냈다.

 

“탈북자들을 남한으로 보내는 일을 하던 중 2003년 10월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북한 납치조가 중국 연변에 들어왔다는 얘기였죠. 저보고 빨리 도망가라고 하더라고요. 중국을 떠난 뒤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 동남아 3국을 돌아서 2004년 남한에 들어왔죠.”

 

 

남한에 들어온 뒤 그는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라는 단체에 들어가 15호관리소 명단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7년부터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10여년간 북한인권과 관련한 각종 기자회견, 세미나, 국제행사 등에 참여했다. 하태경 당시 열린북한방송 대표(현 국민의힘 의원)와 함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가서 김정일을 고소하기도 했다.

 

“2008년부터 하 의원하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많은 나라를 다녔어요. 최종 목적은 김정일을 국제형사재판소 제소하는 것이었죠.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C까지 찾아갔지만 잘 안 됐어요. 유엔 안보리 이사국에서 결의안이 나와야만 김정일을 ICC가 체포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러다가 2013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냈어요. 이듬해인 2014년에 ‘반인도 범죄를 저지른 국가 책임자를 처벌한다’는 유엔 결의안이 나왔어요.”

 

2015년 설립된 노체인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목적으로 하는 인권운동단체다. 정 대표는 2012년 남한에 오려다가 북송돼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피해자들을 위한 ‘북한정치범수용소피해자가족협회’를 만들었다. 노체인은 그 연장선이다.

 

“노체인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알리고 해체를 위한 캠페인을 해요. 수감자들의 신상을 공식적으로 북한당국에 제출해서 이 사람들의 생사여부를 촉구하는 활동도 하죠. 우리가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할 순 없지만 언제가 통일이 되면 그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어야 하잖아요. 국제사회에 알려 이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도록 보호하는 게 최선의 목적이에요.”

 

그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일과 함께 정보유입 활동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로 헐벗고 굶주리는 나라가 아니라 경제대국이라는 내용의 영상이 담긴 USB를 페트병에 넣은 뒤 물때에 맞춰 바다에 띄워 보내는 작업이다. 대략 빠르면 2시간, 늦어도 5~6시간 뒤면 황해도 지역 앞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2017년부터는 마이크로SD카드를 보내고 있다.

 

“북한에서 살다 보면 바깥 세상에 대해 무지해요.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노예 같은 삶, 강요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도 몰라요. 북한주민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드라마, 영화 등을 많이 보냈어요. 이러한 콘텐츠엔 인간의 일상이 묻어 있어 거부감이 없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죠. 북으로 보낸 것 중 하나가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예요. 북한 노인들에겐 여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죠. ‘꽃보다 할배’를 통해 노인들도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국 예일대,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컬럼비아대 등을 돌아다니면서 기부활동을 했어요. 콘텐츠 기부였죠. 어떤 콘텐츠냐면 미국 대학생들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이었어요. 그들이 동영상을 찍어 보내주면 자막을 입혀 북한으로 보내요. 북한 청년들이 그걸 보면 미국 청년들과 자신들을 비교할 거 아니에요. 소위 ‘김정은을 때려잡아 죽여라’ 같은 영상보다 효과적이죠.”

정 대표는 2016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오슬로자유포럼’ 마지막 날 행사에서 북한에 대한 정보 유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2017년 스페인 발렌시아의 인터넷자유축제에서도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인 정보 접근권 자체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했다.

 

“해마다 열리는 국제행사에 참가할 때마다 듣는 얘기가 있어요. ‘아프리카, 중동 등 극단주의 나라들에서도 민주화혁명이 일어났는데 북한에서는 왜 안 일어나느냐’는 말이죠. 북한 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차단이 큰 원인이에요. 중동 지역 사람들은 인터넷을 다 이용해요. 근데 북한은 안 되잖아요. 완전히 거대한 감옥이에요.”

 

“그러니까 정보 유입으로 북한 주민들을 깨우쳐서 반항심을 키워주는 것이죠. 민주화를 실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요. 민주화가 북한에서 실현되면 정치범수용소도 깨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외부 정보 유입이 더 많이 되도록 하는 게 목적이죠.”

 

정 대표는 전 세계 독재자들처럼 똑같은 심판을 받도록 김정은을 ICC에 제소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를 제거하면 북한의 민주화도 차츰차츰 실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 대표는 앞으로도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는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현 정권에서 외부정보 유입을 계속 막는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 대표의 모습에서 북한 민주화에 대한 희망이 느껴졌다.

 

[윤승준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