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공짜 같은 혈세지원금, 우리 아들·딸 피눈물로 대가 치른다

▲ 베네수엘라에선 무차별 포퓰리즘으로 살인적인 경제난을 몰고 온 좌파정부가 야당마저 탄압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반대한 국회의원 4명에 대해 ‘실패한 쿠데타 음모’에 가담했다며 반란죄, 폭동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베네수엘라의 오늘날이 대한민국의 내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진은 2019년 11월 한 시위장에서 한 손에 소뼈를 들고 “우리는 굶어 죽어간다”고 절규하는 베네수엘라 자영업자. [사진=AP/뉴시스]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선 코로나 피해회복을 명분으로 내건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무차별 퍼주기가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무분별한 퍼주기가 초인플레이션을 야기해 궁극적으론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생계위기를 부추기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근본적인 경제 회복을 위해선 국민 모두가 근시안적인 이익보다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포퓰리즘에 대한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특히 내년 대선에서 포퓰리즘에 ‘사형선고’를 내림으로써 정치권이 두 번 다시는 인기영합주의에 나서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유매장량 1위 자원부국의 비극…무분별한 퍼주기에 휴지조각 된 화폐가치

지난해 8월 베네수엘라에선 소상공인에 대한 긴급 코로나 재난지원금이 일괄 지급됐다.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가 금액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국제사회 시선은 지급 규모가 얼마인지에 집중됐다. 이후 마두로 정부가 공개를 꺼렸던 지원금액은 소상공인들에 의해 적나라하게 폭로됐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특별지원금 액수는 소상공인 1인당 130만 볼리바르였다. 적지 않은 액수였지만 문제는 베네수엘라 전역을 엄습한 초(超)인플레이션이었다. 130만 볼리바르는 당시 환율로 우리 돈 ‘5300원’이었지만 올해 7월 기준으로는 충격적이게도 ‘454원’에 불과하다.

과거였다면 130만 볼리바르는 임대료, 인건비 지급 등에 있어서 유용했겠지만 초인플레이션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고작 ‘계란 두 판’ 또는 ‘소시지 한 팩’이 전부였다. 수많은 소상공인들은 “정부가 준 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이호연] ⓒ스카이데일리

공교롭게도 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이션 발생 원인으론 무분별하게 남발된 퍼주기가 지목된다. 과거 베네수엘라는 아르헨티나와 함께 남미의 경제강국이었다. 지금도 원유매장량 세계 1위에 올라 있는 자원부국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원유 채굴량은 지난해 9월 기준으로 3008억 배럴로 전 세계 원유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그러나 ‘21세기형 사회주의’ 기치를 앞세운 좌파 성향의 우고 차베스가 1999년 국민 투표로 집권하고 민간 석유기업 국유화, 무상복지 정책 등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국가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차베스는 나라 곳간, 국제 원유가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정권유지를 위해 선심성 정책을 마구 쏟아냈다.

예고된 재앙은 2014년 국제 원유가가 절반 이하로 폭락하면서 현실화됐다. 2013년 차베스가 암으로 사망한 후 퍼주기 효과를 직접 목격한 다른 정치인들도 경쟁하듯 퍼주기 정책을 펼쳤고 심지어 국고가 바닥나자 화폐를 무한정으로 찍어냈다. 2016년 550％였던 베네수엘라 물가상승률은 2017년 2600％, 2018년 169만％ 등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결국 130만 볼리바르로 계란 두 판만을 살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세계 1위 매장량의 원유는 재투자할 돈조차 없어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대안인 해외 자본들은 좌파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가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포퓰리즘의 폐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며 “인기영합주의에 취한 무분별한 퍼주기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먹은 셈이다”고 지적했다.

매춘으로 먹고 사는 베네수엘라 여성들…“한국 현 상황, 베네수엘라 과거와 비슷”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마두로 정부는 이달 초 한 달 만에 최저임금을 300％ 인상해 700만 볼리바르로 책정했다. 그러나 화폐는 이미 휴지조각이 된 지 오래라 단순히 액수만 올라갔을 뿐 국민에겐 어떠한 보탬도 되지 않고 있다.

결국 끊임없는 포퓰리즘의 악순환 속에 많은 베네수엘라인들은 난민의 길을 택하고 있다. 전체 인구 2800만명 중 약 600만명이 고국을 등졌으며 수많은 여성이 돈을 벌기 위해 매춘에 나서고 있다. 콜롬비아 공공기관 ‘여성·양성평등 전망대’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으로 보고타의 외국인 성매매 여성 중 99.8％가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이 중 33.1％는 대졸자였다.

여전히 베네수엘라 국민의 비명은 끊이지 않고 있다. 북부 파라과나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조니 에레라(41)는 로이터통신에 “임금 상승 등으로 문을 닫고 이민 갈 생각을 늘 해왔다”며 “임금을 줄 여력이 없어 직원 두 명을 해고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의 가게는 10년 전에는 직원 10여명을 둘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퍼주기식 포퓰리즘 등 근본적 문제점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민생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소상공인들이 당장의 소액지원금만 바랄 게 아닌 장기적인 안목으로 포퓰리즘을 반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난 4월 서울시청 앞에서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며 집회를 가진 자영업자들. ⓒ스카이데일리

주목되는 사실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무분별한 포퓰리즘이 처음 등장했던 과거 베네수엘라와 비슷한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포퓰리즘 지속에 따른 인플레이션 발생 △최저임금 급등 △땜질식 처방 △소상공인 줄도산 △일자리 감소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다수의 전문가들은 작금의 현실을 자각하지 않는다면 베네수엘라의 현실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원목 교수는 정치권의 각성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는 “문재인정부는 우리나라의 일반 정부부채 비율(GDP 대비 48％)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0％)보다 크게 낮아 괜찮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부채 수준이 다른 게 기본이다”며 “미국, 일본 등 기축통화국은 정부부채 비율이 100~200％를 넘어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남미 국가들은 90％ 수준에서 국가부도가 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일반 정부부채 비율 수치에는 공기업 부채가 빠져 있고 정부가 매년 수조원씩 보조하는 공무원·군인 연금 충당부채도 누락됐다. 그런 모든 공공부채를 합산하면 현재 정부부채 비율은 2019년 기준 GDP 대비 108％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경제는 영국병을 넘어 베네수엘라 망국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황금알 거위의 목을 칼로 그어대는 단계임을 알아야 한다”며 “복지·재정 정책에 대해 하루속히 전면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말 이목을 끈 ‘경제민주화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 입장문을 주도한 김상철 한국질서경제학회장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우리나라는 이미 국가개입주의를 넘어 차베스 식의 포퓰리즘으로 향하고 있다”며 “독일의 경우 우리와 달리 개인에게 한 푼도 공짜로 주지 않는다. (코로나 확산에 따른 소비 진작을 이유로) 외식하라고 돈을 주는 일은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권의 각성도 각성이지만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국민 여론이 조성돼야 한다”며 “차기 대선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포퓰리즘 공약을 면밀히 살펴보고 우리 자녀세대에 이로운 내용인지를 철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