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한 서민부동산…“집값폭등 주범이 쥐꼬리 중개료 깎아 생색”

국민부담 경감 핑계로 요율 상한 일방적 인하 단행
희생양 된 공인중개사들, 대정부투쟁 집단휴업 돌입
“마녀사냥 식으로 집값폭등 책임 전가하려는 의도”

문용균 기자(ykmoon@skyedaily.com)

기사입력 2021-08-25 00:07:00

▲ 최근 정부의 부동산 중개보수 인하 조치를 두고 일선 부동산들 사이에선 이미 집값이 크게 올라 효과도 기대되지 않는 정책을 내세워 부동산 중개업자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키고 나아가 생계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일대 전경. ⓒ스카이데일리

그동안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규제와 무분별한 단속 등으로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던 공인중개사들이 결국 폭발했다. 마침내 정부가 직접적으로 ‘밥그릇’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국민 부담을 경감시켜준다는 명분을 앞세워 부동산 중개보수 인하를 결정했다.

일선 공인중개사들은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반응이다. 집값폭등 현상을 정부가 정책 실패가 아닌 마치 공인중개사들 때문인 것처럼 국민 눈을 속이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미 집값이 크게 올라 효과도 기대되지 않는 정책을 내세워 부동산 중개업자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켜 종국엔 생계유지마저 어렵게 만들려는 속셈이라는 성토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공인중개사들은 이번만큼은 말로 항의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대정부 투쟁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미 ‘공동휴업’이라는 집단행동에 돌입했으며 국민을 상대로 정부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공인중개사의 줄폐업이 현실화 될 경우 종국엔 최종 소비자인 무주택 서민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정책 보완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서울 아파트 4.1억 올랐는데 중개보수 400만원 인하…의미 없는 정책 앞세워 생색만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지난 20일 부동산 중개보수 및 중개서비스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거래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중개보수에 대한 부담이 증가했다며 개선 취지를 설명했다.

개선안은 매매 계약의 경우 0.5%였던 현행 6억~9억원의 요율 상한을 0.4%로 낮추고 9억원 이상부터 일률적으로 0.9%로 돼 있는 것을 △9억~12억원 0.5% △12억~15억원 0.6% △15억원 이상 0.7%의 요율 상한을 각각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임대차 거래의 경우 현행 3억~6억원의 요율 상한은 0.4%에서 0.3%로 낮추고 6억원 이상부터 0.8%였던 요율 상한을 △6억~12억원 0.4% △12억~15억원 0.5% △15억원 이상 0.6%로 구간을 나눠 요율 상한을 각각 적용다는 내용도 담겼다.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이호연] ⓒ스카이데일리

국토부 관계자는 “해당 방안을 적용해 6억원 아파트를 거래하면 중개보수 상한은 현행 300만원에서 240만원으로 줄어든다”면서 “10억원 아파트는 9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세보증금 9억원의 경우 중개수수료가 현행 720만원에서 360만원으로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국토부의 이번 조치에 일선 공인중개사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집값이 크게 올라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인중개사는 “정부가 집값을 실컷 올려놓고 요율을 깍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며 “서울 평균 아파트 값이 4억 넘게 올랐는데 중개수수료 몇백만원 깎아준다고 좋아할 국민은 없다고 본다”고 성토했다.

일반 시민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중개보수를 내린 것은 금전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이미 정책 실패로 집값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이종원 씨(남·32)는 “이미 정부의 정책 실패로 집값이 많이 올라서 살 엄두도 안 나는데 중개보수 몇백만원 내려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정부가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신혼 1년차 김주영 씨(남·34·익명)는 “10억 아파트를 살 때 400만원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마치 큰 이득처럼 보이긴 한다”면서도 “그러나 이미 집값이 오를대로 올라 중개수수료 낼 기회조차 없는 입장에선 크게 와닿지 않는 조치다”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4억원 이상 올랐다. 중위가격은 가격 순서대로 아파트를 정리했을 때 중간에 위치한 값을 의미한다. 2017년 5월 약 5억2996만3000원이던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달 9억4000만원까지 올랐다. 심지어 2017년 5월 서울 전체 자치구 중 중위매매가격이 가장 낮았던 노원구(2억9300만원)마저 지난달 기준 3억5700만원 오른 6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중개수수료 인하는 전형적인 마녀사냥식 책임회피…집값폭등 주범은 文정부”

공인중개사들은 이번만큼은 말로 항의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대정부 투쟁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번 조치로 정부의 정책 실패로 치솟은 집값이 마치 공인중개사들이 저지를 것처럼 비춰질 가능성이 다분해 결국엔 공인중개사들의 생계위기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공인중개들에 대한 인식이 악화되면 결국엔 영업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일부 공인중개사들은 자발적으로 휴업에 돌입한 상태다. 손웅섭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서울북부 지부장은 “서울 북부에서만 14개 지회가 한시적이지만 집단휴업에 참여했다”면서 “남부도 몇몇 곳이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손 지부장은 “정부는 정책 실패로 집값을 올려놓고 거래절벽 상태에서 협의를 없애지 않은 채로 중개보수를 인하했다”면서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상한요율이 0.9%였을 때도 0.4%~0.5%를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면서 “이젠 0.2~0.3%를 받아도 중개사들을 욕하는 손님이 나타날 것이다”고 성토했다.

▲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책 실패로 집값이 급등한 상황에서 중개보수 인하로 민심을 수습하려 하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라는 반응이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소재 한 공인중개사무소. ⓒ스카이데일리

그는 “우리는 집값을 올린 죄인이 아니다”면서 “대부분은 한 동네에서 오래 장사해서 중개보수와 관련해 손님에게 말도 꺼내지 못하고 주는 대로 받는 사람들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심지어 기를 쓰고 노력했는데 계약이 안 되면 수고비조차 받지 못한다”며 “이런 우리에게 ‘집값을 올린 주범’이라는 낙인을 새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윤성렬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강남구 지회장은 “9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중개보수를 줄였다고 발표해 공인중개사를 ‘도둑놈’으로 만든다고 국민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며 “이미 대다수 국민이 집값이 올랐기 때문에 중개수수료 인하가 크게 의미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 손님은 ‘정부가 국민의 분노 대상을 중개사로 돌리려고 하는 속셈’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이번 조치를 두고 정부의 책임회피 목적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집값 상승으로 인한 국민들의 중개보수 부담을 공인중개사에게 전가하는 측면이 분명 있다”면서 “발표가 중개사들의 수입과 지출 등 정확한 분석 없이 상한요율이 결정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동네 부동산들의 폐업이 속출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그게 정부의 목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동산 숫자가 줄면 경쟁 자체가 사라져 오히려 중개료 할인 등의 서비스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종국엔 무주택자, 세입자 등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언뜻 보면 국민 부담이 준 것처럼 보이지만 몇 년 새 급등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며 “집값을 잔뜩 올린 정부는 세금을 올려 세수를 두둑하게 가져가고 공인중개사는 거래가 줄어 수입이 줄었는데 그 마저도 못 벌게 생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거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인식까지 악화돼 결국엔 폐업을 선택하는 공인중개사들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면서 “중개사들에게 추가적인 수입루트를 만들어 줘야한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정기적으로 교육도 해주고 세금, 법적인 부분을 손님에게 컨설팅해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근본적으론 4년제 혹은 더 길게 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공인중개사 자격을 주는 방법도 고려해 봐야할 시점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