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을 먹는 ‘플라스틱 인간’

박선옥 기자(sobahk@skyedaily.com)

기사입력 2021-10-01 03:02:43

세계자연기금(WWF: World Wide Fund for Nature)이 지난달 6일 ‘플라스틱: 사회, 환경 및 경제에 대한 비용 (Plastics: The costs to society, the environment and the economy)’ 보고서를 발표했다. 플라스틱과 관련해 잘못된 규제, 기술자원, 재정지원, 데이터 부족 등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WWF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부 자연보전 기구로 전 세계 약 100개국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주로 멸종 위기종과 서식지 보호, 기후 변화 대응 등에 관심을 갖고 사안의 긴급함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한다.

WWF에 따르면 2019년 생산된 플라스틱의 사회적 비용은 3조7000억달러(약 4388조2000억원)에 달한다. 그리고 2040년에는 전 세계의 플라스틱의 사회적 비용이 2019년의 거의 2배에 해당하는 7조1000억달러로 훌쩍 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이 천문학적 비용은 2019년 독일, 캐나다, 호주의 국내총생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2040년에 플라스틱의 사회적 비용이 거의 2배가 되는 것은 현재와 같은 플라스틱 생산량과 쓰레기가 지속될 경우 앞으로 20년도 채 남지 않은 2040년에는 플라스틱 생산량이 2배 증가하고 이에 따라 쓰레기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WWF는 2040년에 바다로 흘러가는 플라스틱은 3배 증가하여 2900만톤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럴 경우 이미 해양에 쌓여있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더하여 그 총량은 6억톤이 될 것으로 추산한다. 미국 인구가 약 3억이므로 그 많은 인구가 1인당 2톤씩 쓰레기를 바다에 쏟아부은 셈이 된다고 생각하니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의 끔찍함이 피부에 와닿는 듯 하다.

더욱 끔찍한 것은 바다에 쓸려들어간 플라스틱이 해양생태계를 훼손할 뿐 아니라 생태계의 순환을 따라 미세플라스틱의 형태로 인간의 몸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미세플라스틱은 대체로 5mm 미만의 플라스틱 알갱이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크기나 모양, 화학적 성분 등에 따라 분류가 가능하지만, 그것의 생성원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그 하나는 1차 미세플라스틱으로 화장품 스크럽제로 사용되는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나 산업 연마제, 미세 섬유 등 매우 작은 재료 형태로 제조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식품 포장재 등과 같은 큰 플라스틱 폐기물이 마모되거나 태양광 분해, 자연적 풍화 등에 의해 잘게 부서지면서 만들어진다.

잘게 부숴진 플라스틱은 주로 바다에 떠다니다가 갑각류의 몸으로 들어가거나 소금에 섞여 우리 몸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세플라스틱이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가장 큰 경로는 매일 마시는 물로 알려져 있다.

WWF에 따르면 한 사람이 우리 식탁에 오른 식품이나 물을 통해 일주일간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 알갱이는 약 2000개이며 무게로는 5g이다. 신용카드 한 장이 5g 정도라고 하니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 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을 씹어먹는 셈이 된다! 더 무서운 것은 미세플라스틱이 체내에 꾸준히 축적되고 있을 텐데 이것이 인체에 미치는 해악이 어떤 것이지 아직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따라서 그 위험성을 실감하지 못한 채 인간은 지금까지의 플라스틱 소비 습관을 일시에 버릴 긴급한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노벨 평화상은 역대 처음으로 국제분쟁이나 인권 문제에 공헌한 인물이 아닌 환경운동가에게 주어졌다. 바로 미국 클린턴 행정부(1993-2000) 시절 8년간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와 유엔 기구인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인류 평화를 위해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이 긴급하다고 본 것이다.

엘 고어는 2000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패배한 후 본격적으로 환경운동가로 활동했다. 그가 2006년에 펴낸 환경문제를 다룬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은 12개국 언어로 번역 출판됐다. 이 책은 또 고어가 직접 출연하고 감독을 맡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어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현재 기후변화의 위기에 직면한 인류의 상황을 ‘서서히 뜨거워 지는 물 속에 있는 개구리’에 비유했다. 몸에 닥쳐오는 위험이 서서히 오고 있다는 이유로 위기감을 헤아리지 못하는 개구리와 인류의 어리석음을 말한 것이다.

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달 23일 스카이데일리 사진팀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 산더미처럼 쌓인 스티로폼 상자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도했다. 불과 연휴 며칠 사이에 쌓인 스티로폼 상자가 마치 흰 눈에 덮인 설산처럼 거대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우리가 몸담고 있는 물의 온도가 돌연 뜨겁게 느껴졌다. 이제 더 늦게 전에 뜨거운 물에서 뛰쳐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