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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세상을 표현하죠”

오창영기자(cyoh@skyedaily.com)

기사입력 2021-11-02 00:05:05

 
▲ 예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작가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배현철 작가(사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배 작가는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그려낸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그림을 접했을 때 비로소 작품을 온전히 느끼고 마음껏, 부담 없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어서다. [사진=이종원 대기자] ⓒ스카이데일리
 
“세상은 참 빠르게 변화해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변화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죠. 이는 어떤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아요. 예술 분야 역시 마찬가지죠. 과거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했지만 이제는 사진, 영상 등 표현 매체가 훨씬 다양해졌어요. 컴퓨터로 디자인한 작품도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죠. 그런데 저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길을 가고 있어요. 붓도 아닌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거든요. 손가락으로 지우고 칠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미련하지만 묵묵하고, 아날로그를 추구하면서도 순수한 화가를 꿈꿔요.”
 
‘예술’이라고 하면 지레 겁부터 먹는 사람들이 있다. 작품에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해석한 작품의 의미와 자신이 느낀 점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불안을 느끼고 심히 두려워한다. 그러다보니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지 못하고 남의 생각과 같은 답 찾기에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악용해 작품에 대한 해석을 다른 사람에게 주입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마치 그것이 옳은 해석인 양 작품의 의미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그러다보면 작품을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특권을 빼앗기고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 예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작가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배현철 작가(69)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배 작가는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그려낸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그림을 접했을 때 비로소 작품을 온전히 느끼고 마음껏, 부담 없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어서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작가의 생각·감정 담을 수 있는 예술에 매료
 
“제가 그림을 그린 지도 언 40년이 넘었네요. 유화 물감이 가진 특유의 색과 질감으로 제가 바라 본 세상, 마음에 와 닿는 순간, 오래 간직하고픈 서정을 캔버스에 그려내는 데 평생을 바쳤어요.”
 
배 작가는 우리나라 미술사를 벗 삼아 살아온 인물이다. 동국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한 그는 40년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랜 시간 속에 작품이 겹겹이 쌓이면서 지금은 미술계의 거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살고 있는 곳이 경북 포항시다 보니 경북 지역에서 배 작가의 명성이 특히 높다. ‘경상북도 미술대전 초대 작가’, ‘신라 미술대전 초대 작가’를 지낸 그는 각 미술대전의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규모의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예술에 대한 한결 같은 열정으로 배 작가는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됐다. 오늘날 작가로서 멋진 삶을 살고 있지만 배 작가가 작가로서의 삶을 꿈꾸게 된 것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형이 사진을 전공했어요. 사진작가로 활약하는 형의 영향으로 저 역시 자연스럽게 사진을 접했죠.”
 
“사진은 참 매력적인 결과물이에요. 특정한 순간에 카메라 프레임으로 보는 세상을 고스란히 담아내요. 실재하는 모든 것들이 사진 속에 녹아드는 거죠. 그러나 딱 한 가지가 아쉬웠어요. 사진은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함께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사진에선 카메라의 시선만이 작가가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과 감정이죠.”
 
▲대학에서 배움을 얻는 과정이 힘들었다면 사회에 나와선 물리적인 제약이 생길 때가 힘들었다고 배 작가는 회상했다. 특히 작업실의 부재는 배 작가의 작품 활동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스카이데일리
 
“그림은 달라요. 사진이 담아내지 못하는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특정한 순간의 세상과 함께 그려낼 수 있죠. 새해 첫 일출을 보더라도 사진은 빨간 태양이 하늘로 떠오르는 모습을 담아내는 반면 그림의 경우엔 붉지만 샛노란 태양이 하늘을 주홍 빛으로 수놓으며 세차게 부는 바람을 따뜻하게 물들이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예술적인 감성에 눈을 뜬 배 작가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예술중학교,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해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자연스레 미대를 선택하게 됐다.
 
“대학 생활이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수많은 과제로 밤낮 없이 지샌 시절도 힘들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컸어요. 캔버스에 무언가를 그리려고 해도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 순간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그 순간은 정말 세상이 저를 져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진정 괴로운 시간이죠.”
 
“그러나 배움에는 당연히 희생이 따른다고 생각해요. 배움은 결코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노력 없이 날로 먹으려는 것은 배움이 아니라 요령만 터득하는 꼴이에요. 그림을 요령으로만 그릴 수 없듯 배움을 통해 다양한 기법을 익혀야만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믿어요.”
 
대학에서 배움을 얻는 과정이 힘들었다면 사회에 나와선 물리적인 제약이 생길 때가 힘들었다고 배 작가는 회상했다. 특히 작업실의 부재는 배 작가의 작품 활동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작가로서의 꿈을 펼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작업실이 중요했다. 집에서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지만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에다 작업실을 꾸리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작품 활동 의지를 꺾는 상황을 종종 만들곤 했다.
 
“결국 작업실을 갖고 있는 동료와 선·후배에게 부탁해 공간을 빌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비록 원하는 시간에 작업실을 쓸 수 없을 때도 있었지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이나 기뻤죠.”
 
“어떤 의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 바라볼 때 작품에도 고스란히 투영될 수 있어”
 
배 작가는 198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수산시장인 포항 죽도시장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골목 위로 쏟아지는 햇빛과 은은히 퍼지는 바다 내음, 그 속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담아낸 이른바 ‘골목’ 시리즈로 서민의 삶을 가감 없이, 또 정감 있게 표현했다.
 
그리고 이어진 첫 개인전에서 배 작가는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인정받았다고 뿌듯해 했다.
 
▲ 40년 넘게 활약해 온 배 작가가 최근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만이 가진 독특한 기법 덕분이다. 배 작가는 2007년 개인전 이후 ‘해무’라는 주제로 작품을 준비하던 중 ‘어떡하면 바다와 파도, 안개 등 찰나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붓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표현하기를 시도했다. ⓒ스카이데일리
 
“1988년 첫 개인전을 열었어요. ‘풍경’을 주제로 연 전시회였죠. 개인전을 찾아준 수많은 관객에게도 참 감사했지만 가족들의 방문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뻤어요. 당시만 해도 가족들의 눈에 비친 저는 예술을 한다고만 했지 제대로 된 작가로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요. 첫 개인전에서 제 작품을 본 가족들이 세상 누구보다도 축하해 주고 작가로 인정해 주는데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지금까지 280여회가 넘는 그룹 전시회에 참여한 것과 대조적으로 배 작가의 개인전은 단 11회에 그친다. 그래서일까. 오랜 경력에 비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다소 적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 작가는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꾸준히 관심 받고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이는 배 작가가 그린 그림의 작품성을 알아본 갤러리가 뒤에서 묵묵히 노력해 준 덕분이라고 했다.
 
“갤러리 아트비프로젝트의 노고가 참 커요. 경북 지역에서 활동 중인 제게 전국적으로 관심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지역 내에서만 활약하는 작가로 인생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는데 아트비프로젝트의 남다른 안목으로 제 작품이 많은 대중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할 때도 있어요.”
 
“아트비프로젝트는 개인전과 아트페어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해 주고 있어요. 특히 경북 지역에서 규모 있는 대구 아트페어에 4년째 참여를 지원해주고 있죠. 그 덕분인지 지난해 대구 아트페어에서 제 출품작 모두를 완판하는 등 대중의 큰 사랑을 받기도 했어요.”
 
배 작가는 올해도 대구 아트페어에 작품을 출품했다. 따끈따끈한 배 작가의 신작을 볼 수 있는 ‘2021 대구 아트페어’는 이달 4일부터 7일까지 나흘 간 열린다. 배 작가의 아트페어 참여 소식에 이미 경북 지역 콜렉터들의 예약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40년 넘게 활약해 온 배 작가가 최근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만이 가진 독특한 기법 덕분이다. 배 작가는 2007년 개인전 이후 ‘해무’라는 주제로 작품을 준비하던 중 ‘어떡하면 바다와 파도, 안개 등 찰나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붓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표현하기를 시도했다.
 
“지두화(Finger Printing)라고 해요. 손가락으로 제가 바라 본 세상을 표현하죠.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그려내다 보니 훨씬 빠르고 거칠어요. 질감도 두텁죠. 대신 순간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 제가 캔버스에 담고자 하는 지금 이 순간의 세상을 그려내는 데 제격인 기법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그려낸 작품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더욱 가감 없이 담겨지는 것에 희열을 느낀 배 작가는 지금까지도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이 마주한 세상을 손가락을 통해 온기를 넣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평생 하고 싶은 일이라며 밝게 웃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바라본 세상을 손가락으로 겹겹이 덧칠했지만 작품에 담긴 세상은 늘 밝고 따뜻해요. 어떠한 의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한 덕분에 이같은 모습이 작품에 표현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밝고 따듯한 세상을 그려내는 작가로 평생을 살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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