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로 피 흘리는 동물들을 아시나요”

덫·올무에 의한 포획·모피 농장으로 매년 1억 마리 야생동물이 모피로
유럽연합 등 모피농장 폐쇄·판매 금지…“우리나라, 모피 여전히 인기”

허경진 기자(kjheo@skyedaily.com)

기사입력 2021-11-24 00:05:01

▲모피코트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마리의 야생동물들이 희생되고 있다. 사진은 모피코트.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추운 겨울이 찾아오면서 모피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모피 제품의 진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1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들이 모피 때문에 죽어간다. 그 중의 80% 가량은 비좁은 모피 농장에서 온갖 동물학대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고 나머지는 자연 상태에서 덫이나 올무에 갇혀 상처를 입은 채 잔인한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나라, 모피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 부족…매년 모피 제품 수입 큰 폭으로 증가”

모피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마리의 야생동물들이 희생되고 있다. 모피는 자연 상태에서 동물을 덫 등을 이용해 포획하거나 모피농장을 통해서 얻어진다. 덫과 올무에 갇힌 동물들은 죽을 힘을 다해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그럴수록 쇠꼬챙이와 쇠창살은 더욱 더 그들의 몸을 옥죈다. 온 몸이 만신창이로 찢겨진 동물들은 탈수와 탈진, 과다출혈 등으로 죽어간다.

모피농장의 야생동물들은 철창에 감금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일부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반복적 이상행동, 즉 ‘정형행동’(定型行動)을 보이거나 자기 자신을 자해하거나 혹은 동족을 잡아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피의 80~90%는 중국산이다. 중국에서는 반려동물인 개, 고양이들까지 모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모피 농가에서는 따로 도축 시설이나 장비가 없기 때문에 살아있는 너구리를 산채로 껍질을 벗기고 있다. 동물이 죽으면 사체가 굳기 때문에 껍질을 벗기기 힘들고 모피의 품질이 훼손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 전 세계적으로 매년 1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모피 때문에 죽어간다. 사진은 9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 동물착취 모피 반대 기자회견 현장. [사진=한국동물보호연합]

모피 사용 줄여나가는 전 세계 유명 브랜드 및 국가들

이러한 모피 제품의 동물학대가 알려지면서 많은 브랜드와 국가에서는 모피 사용을 줄여나가고 있다. △휴고 보스 △아르마니 △구찌 △생로랑 △캘빈 클라인 △랄프 로렌 △타미힐피거 △비비안 웨스트우드 △베르사체 △코치 △톰포드 △버버리 △프라다 등이 비윤리적이란 이유로 동물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세계 4대 패션쇼로 꼽히는 런던 패션위크는 동물 모피로 만든 옷을 퇴출했다.

2019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웨스트 할리우드 등을 포함한 캘리포니아주 전체가 모피 제조 및 판매를 금지했다. 브라질의 상파울루는 2015년 모피 수입과 판매를 금지했으며 오스트리아는 2004년 전국적으로 모피 동물 사육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고 이탈리아는 모든 밍크농장을 폐쇄했다.

네덜란드는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정책을 펼쳐 1995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여우사육을 금지했으며 친칠라 사육은 1997년 금지됐다. 스웨덴은 2000년부터 전국의 모든 여우농장을 폐쇄했고 스위스는 모피 농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영국은 2000년의 모피동물사육 금지 법령에 의해 모피 동물사육이 완전히 금지됐다.

▲ 제품에 사용하는 소재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구찌는 2017년 10월 모피를 쓰지 않는다며 ‘모피 프리(fur-free)’를 선언했다. 사진은 구찌에서 출시한 지속 가능 컬렉션 상품. [사진=구찌]

약 2만개 모피 농장이 성업하면서 세계 2위 모피 생산국이었던 노르웨이도 모피 산업을 전면 중단하면서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덴마크, 네덜란드,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영국 등과 함께 유럽에서 14번째로 모피 생산을 금지하는 국가가 됐다.

올해 6월 이스라엘은 패션용 모피 판매를 금지하는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됐다. 브라질 상파울루 등 일부 도시가 모피 판매를 금지하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이런 조치를 내린 건 처음이다.

길라 감리엘(Gila Gamliel) 이스라엘 환경보호장관은 “모피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수억 마리의 동물을 죽이고 형언할 수 없는 잔인함과 고통을 초래한다”며 “패션을 위해 동물의 가죽과 털을 사용하는 것은 부도덕하며 불필요하다. 이스라엘 패션 시장을 더욱 친환경적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제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Animals)는 이스라엘의 모피 판매금지 조치를 두고 “이 역사적인 일은 모피를 위해 도살당하던 동물들을 보호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해 환영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매년 모피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모피 소비국 중 하나로 불리고 있는 실정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모피 수입량은 2001년 148억달러(약 17조원)에서 2011년 423억달러(약 50조원)로 급증했다. 과거에는 중장년층에서 모피를 선호했지만 근래는 젊은 층도 모피 주요 소비층으로 부각되고 있다. 모피 뿐 아니라 ‘퍼 트림’(Fur Trim)으로 코트의 옷깃이나 점퍼의 모자 둘레에 모피를 붙이는 등 모피 장식 제품 소비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동물보호단체들은 모피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동물 학대와 고통이 수반되고 있다는 점을 일반에 홍보해 모피 사용을 자제하자는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이달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은 모피 퇴출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매년 1억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모피 때문에 죽어간다”며 모피 사용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모피를 얻기 위해 자연 상태에선 덫, 올무 등을 이용해 야생동물들을 죽이며 모피 농장은 야생동물의 습성과 본능을 철저하게 파괴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 동물실험하지 않는 화장품 등 윤리적 소비가 주목받고 있지만 모피 등 동물학대 제품에 대한 사회적 문제 인식은 낮다”며 “미국과 유럽연합 등에서는 모피농장을 폐쇄하고 모피 판매를 금지하는 나라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모피 제품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의식 부족으로 매년 모피 제품의 수입,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단체의 꾸준한 홍보 덕분에 최근엔 일반인 사이에서도 모피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모피를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피 채취 과정에서 동물에게 극도의 잔인한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정은 씨(50대)는 “예전엔 모피 제품을 가끔 애용했는데 몇 년전 TV에서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을 산 채로 가죽 벗기는 모습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 후론 모피 제품을 사는 것이 꺼려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