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안팎에선 민주당이 급작스럽게 입장을 선회한 데 대해 가상자산 투자자 비중이 많은 20·30세대의 표심을 의식한 결과로 보고 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30일부터 1일까지 사흘간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가상자산 관련 여론조사를 시행한 결과, 가상자산 과세를 1년 유예하자는 의견이 53.9%로 즉시 과세 의견 42%보다 12%p 높게 나타났다. 특히 가상자산 투자경험 비율이 높은 2030세대에서 과세유예 의견이 60%를 넘었다.

 

청와대·정부, 李 가상자산 과세 유예 공약에 “정책 일관성 중요” 반대 입장 표명

 

청와대·정부는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요 20개국(G20)을 보니 13개 국가는 과세하고 4곳은 준비 중이고 3곳은 과세를 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여·야가 합의한 취지나 과세의 필요성을 보면 예정대로 과세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이틀 뒤인 10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홍 부총리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자꾸만 정부한테 유예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며 “지난해 국회가 법으로 통과시키면서 합의한 것을 1년 뒤에 정부보고 하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앞서 기재부는 작년 7월 소득세법에 개인의 가상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방안을 신설했고 국회는 12월 가상자산을 기타소득 대상으로 분류해 내년부터 소득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과세대상은 특정금융정보법상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해서 발생하는 250만원을 초과하는 소득이다. 20%의 세율로 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해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 한다. 예컨대 과세기간 동안 가상자산 소득금액이 400만원이면 과세 최저한인 250만원을 제외한 150만원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다.

 

청와대도 과세 유예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2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가상자산 과제 유예 추진에 대해 “선거를 앞두고 여러 주장이 여야에서 나올 수는 있다고 본다”며 “다만 정부로서는 이미 법으로 정해진 정책을 일관되게 지켜나가야 하는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작년 말에 여야 모두 합의해서 과세하기로 법제화를 했다”며 “정부는 과세를 위해서 그동안 준비를 해왔고 주요 선진국 사례들도 살펴보면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 하에서 가산자산 과세를 이미 시행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상자산 과세에 대해서는 정부가 법적 안정성, 정책의 신뢰성 그다음에 과세 형평성 측면에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여당 줄다리기에 시장·투자자 혼란, 전문가들 “조세저항 빌미 제공”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이호연 기자] ⓒ스카이데일리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부와 여당이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면서 시장과 투자자들의 혼란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가상자산 과세를 두고서는 다른 입장을 보이면서도 이미 시행하기로 한 내용을 뒤집는 것은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 과세 정책을 뒤집는 행위가 반복될 경우 심각한 조세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 대해 대단히 부적절한 정책 변경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금융투자소득 비과세 기준을 200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올렸는데 대단히 부적절했다고 본다. 세금의 수평적 형평성 차원에서 1억원의 소득이면 같은 식으로 세금을 매겨야 하는데 근로소득 5000만원에 대한 세금은 엄정하게 매기고 금융투자소득은 봐주는 건 수평적 형평성에 매우 어긋난 것이다”며 “이게 결국 가상자산까지 왔다. 부득이하지 않은 사유로 과세 직전 단계에 유예를 하는 건 더 나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가상자산에 아무리 투자해봐야 그 돈은 생산부분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미 풍부한 유동성으로 단기간에 등락을 거듭하면서 매우 오른 상태이고 변동성도 높다”면서 “그런데 여기에 비과세 또는 과세 유예를 한다는 건 정책적으로 이걸 격려한다는 뜻이다. 세금을 깎아주면서까지 위험하고 변동성 높은 가상자산을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해선 안 된다. 이건 자본시장 활성화, 국민경제 활성화 등과 아무 관련이 없다. 젊은 세대를 위험한 투자로 모는 것이다”고 말했다.

 

고은경 한국세무사회 부회장은 “시행까지 두 달도 남지 않은 정책을 정치권 논리에 따라 바꾸는 선례를 만들면 암호화폐에 세금을 매기는 것 자체에 대한 신뢰성이 낮아질 수 있다”며 “암호화폐의 투기성을 염두에 두면서 부족한 부분은 시행 이후 보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금 제도는 여러 요인을 충분히 검토한 다음 타당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조세 제도의 안정성과 타당성이 떨어지면 국민의 조세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과 특임교수도 “진보·보수 정당이 각각 정치철학에 따른 세금 정책을 내놓고 경쟁하기보다는 진영 논리에 갇혀 표 계산만 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행태다”며 “임기응변식으로 표심을 건드리며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큰 틀의 조세제도 설계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