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은 어린 시절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하루 왕복 세 시간씩 걸어 학교를 오갈 정도로 힘든 생활을 했다. 재수 끝에 입학한 서울대학교에서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 대학원 석사, 프랑스 응용과학원(INSA)에서 전산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5년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로 임용돼 정문술정보전자연구센터장, 국제협력처장, 미래전략연구센터장, 과학영재교육연구원장, 교무처장, 교학부총장 등을 역임하며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이 과정에서 테뉴어 시스템(대학에서 교수의 종신재직권을 보장해주는 제도)과 영어강의 제도 등 새로운 학사 시스템을 도입해 정착시키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광형 총장은 교수 시절 연구실에 TV를 거꾸로 설치하고 짝짝이 신발끈을 매고 다니는 등 고정관념을 벗어난 행동을 해서 ‘괴짜 교수’로 불렸다. 1999년 그를 모델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는데 이 드라마는 바로 SBS ‘카이스트’다.

 

극 중 배우 안정훈이 맡은 박기훈 역의 실제 모델이 이광형 총장이었다. ‘카이스트’를 집필한 송지나 작가는 “평소 보고 듣고 염탐한 이광형 교수의 어투·어록·에피소드를 드라마에 아낌없이 사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괴짜’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2001년 일찍이 융합 학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바이오와 ICT 융합을 주장하며 ‘바이오뇌공학과’를 만들었다. 이후 2009년 설립된 지식재산대학원, 과학저널리즘 대학원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또 2013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미래학 연구기관인 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해 대한민국의 미래 대비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 같은 연구 활동과 다양한 공적을 인정받아 백암학술상, 정보문화진흥상 국무총리상, 프랑스 정부 훈장,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녹조근정훈장, 국회의장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카이스트 벤처 창업 대부’로 불리기도 하는데 1990년대 전산학과 교수 시절 넥슨 창업주 김정주 대표를 비롯해 김영달 아이디스 대표, 신승우 네오위즈 대표, 김준환 올라웍스 대표 등 벤처 1세대 창업가들의 스승으로 많은 후배들을 배출했다.

 

이광형 총장은 올해 3월 카이스트 신임 총장으로 선임된 뒤에도 여전히 괴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의 연구실에는 교수 시절과 마찬가지로 TV, 달력, 세계지도, 조직도 등을 거꾸로 걸어놓았다. 이 이유에 대해 그는 “익숙함을 버리고 세상에 없던 생각을 해보자는 신념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올해 3월 카이스트 제17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광형 총장은 카이스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총장은 “지나친 성적 경쟁 중심 연구 환경과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벤처 창립을 유도하는 기술의 사업화, 다양성 증대를 통한 국제화도 중점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카이스트의 미래 50년은 인류가 당면한 과제를 찾아 정의하고,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인류의 지속가능과 대한민국 번영을 위한 글로벌 가치창출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를 기반으로 카이스트가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진입해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 배출, 연구주제를 선도하는 대학, 국가 산업을 선도하는 대표기업 배출 등 국민 기대에 보답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괴짜’ 이광형 총장이 카이스트 총장으로 취임한지 8개월 정도가 되어간다. 그동안 교수를 지내며 여러 족적을 남겨온 그가 총장으로서 어떤 족적을 남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