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21)는 포털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다가 한 대부업체로 위장한 보이스피싱 일당과 접촉했다. 메신저를 통해 상담을 받은 뒤 현금을 전달받아 송금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두 번째 피해자로부터 900여만원을 넘겨받은 뒤 스스로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껴 피해자에게 현금을 돌려주고 경찰에 자수했다.

 

최근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고액알바’, ‘단순알바’ 등의 구인광고에 속아 보이스피싱 수거책(또는 인출책)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은 평범한 회사로 위장한 뒤 청년들에게 채무자(피해자)로부터 회수금(피해금)을 받아 돈을 입금하는 업무를 시켰다. 단순 심부름에 불과한 일이지만 만약 적발될 경우 해당 청년 역시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되는 건 물론이고 피해액을 돌려줘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등 금전적 피해도 입게 된다.

 

 

올해 들어 전화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액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5006억원으로 전년 동기(3955억원) 대비 1051억원(26.6%)이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발생 건수도 1만8726건에서 2만402건으로 1676건(8.9%) 증가했다.

 

양적으로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범죄 유형도 다양화됐다. 은행계좌로 돈을 보내는 ‘계좌이체형’에서 인출책이 직접 돈을 받아가는 ‘대면편취형’으로 진화했다. 돈을 받았다는 증거를 없애 처벌을 피하려는 의도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계좌이체형 피해 발생 건수는 3078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69.0% 줄었지만 같은 기간 대면편취형은 1만9630건으로 무려 77.7%나 늘어났다.

 

보이스피싱 피의자의 연령대도 낮아졌다. 특히 한창 취업에 나서야 할 20대 이하가 피의자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해 충격을 주고 있다. 오영훈 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4~8월 전체 보이스피싱 피의자 중 20대 이하는 40.2%로 피의자 연령별 분류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밖에 30대와 40대, 50대, 60대 이상 등은 각각 20.3%, 17.8%, 15.8%, 5.7% 등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경찰에 적발된 피의자 대부분이 흔히 ‘꼬리’라 불리는 대면편취·인출책 등 하부조직원이라는 사실이다. 올 8월까지 검거된 보이스피싱 피의자 1만6940명 중 하부조직원은 61.0%(1만431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10·20대의 비중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보이스피싱 피의자 연령별 비중과 검거인원 역할 등을 감안하면 10·20대 보이스피싱 피의자 대부분이 하부조직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이호연 기자] ⓒ스카이데일리

 

더욱이 이러한 하부조직원들 중 상당수가 자신들도 모르게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실제로 보이스피싱 피의자 관련 사이트에선 억울하게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해당 사이트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B씨는 보이스피싱 현금운반책에 따른 사기 공범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6월 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 마지막 날 한 신용정보회사 직원으로부터 서류전달 및 의뢰금을 회수하는 업무 제의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보수가 건당 20만원 정도의 고수익이어서 의아했지만 해당 직원은 그냥 단순한 일이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B씨는 “어차피 내일이면 백수라서 알바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시작했다. 그쪽에서 신원정보를 적는 링크를 보내주고 주민등록증을 요구해 사진을 찍어 보낸 후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했다”면서 “7월 1일 택시비와 식대 명목으로 10만원을 미리 입금 받아 현금을 인출해 택시비로 쓰고 영수증을 찍어서 보냈다. 해당 직원이 고객의 인상착의를 말해주며 어디 인근 카페에서 만나 의뢰금을 회수하고 오라고 지시해 해당 고객을 만나 1000만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에 회수하 현금을 주기 위해 택시를 타고 동대문역으로 향하던 중 해당 직원이 돌연 스케줄이 안 될 것 같다며 인근 은행 ATM기에 가서 입금을 하라며 10명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줬다”며 “1000만원 중 25만원은 알바비로 받고 나머지 975만원은 9명에게 100만원, 1명에겐 75만원을 송금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법적인 건가 의심했지만 설마하면서 일을 마무리했다. 해당 건을 하고 집에 오고 나서 SNS에서 비슷한 사례를 발견한 뒤 확신이 들어 다음날 오전 경찰에 자수했다”며 “사건에 관해 간단히 조사하고 핸드폰도 반납했고 최근 경찰서를 다시 찾아가 약 3시간정도 자세하게 진술했다. 범죄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면서도 실행한 점 등 범행사실을 인정하며 조사에 임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그는 실형을 면하기 위해 피해자와 합의를 진행 중이다.

 

최근 군복무를 마친 대학생이라고 밝힌 F씨도 보이스피싱 조직에 현금을 전달한 혐의로 최근 경찰에서 1차 조사를 받았다. 그는 6월 말 금전적 여유를 위해 단기알바를 찾던 중 구인구직사이트에서 단순 서류 업무 전달 공고를 보고 혹해 전화를 걸었다. 당시 업체와 통화하며 ‘무통장입금 업무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 업무를 보기에 대기시간이 길고 교통·식사비는 업체에서 제공한다’는 내용을 전달 받았다. 의심이 들긴 했지만 해당 업무를 시작했다.

 

F씨는 “업체는 텔레그램을 이용한적 있냐면서 텔레그램 앱을 다운하라고 얘기해 다운받았다. 텔레그램에서 근로계약서를 전달받고 작성한 후 사진을 텔레그램으로 보냈다”면서 “첫날에는 업체에서 어떠한 업무도 요청하지 않고 일급을 보냈다. 소위 말하는 ‘꿀알바’라고 생각해 다음날도 대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튿날 업체로부터 용산전자상가에서 500만원의 금액을 받아 무통장입금을 하라는 업무를 받았다. 돈을 받고 ATM기에서 무통장입금으로 100만원을 총 4번씩 각각 다른 명의의 계좌로 입금하고 마지막엔 85만원을 입금한 후 15만원을 가져가라고 업체에서 얘기했다”며 “또 용산의 한 피씨방에서 대기하다가 일산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곳에서도 대기를 했었는데 업체에선 일정이 취소됐다며 그대로 퇴근해도 된다고 해 귀가했다”고 설명했다. 

 

 

사법당국, 보이스피싱 범죄 연루 시 단순 수거책도 징역형

 

법조계 등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수거책(또는 인출책)에 가담할 경우 적용되는 법률은 크게 네 가지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본인 통장이 보이스피싱 사기범죄의 대포통장으로 쓰인 경우) △사기방조죄(본인 통장으로 입금된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인출해서 전달하는 경우) △사기죄(피해자들로부터 돈봉투를 받아 현금을 전달한 경우) △금융실명법 위반죄 또는 금융실명법 위반 방조죄(대출이나 아르바이트 목적에서 자기 통장으로 입금된 돈을 재이체 하거나 송금한 경우) 등이다.

 

현재 사법기관은 보이스피싱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을 들어 단순 수거책에게도 징역형을 선고하는 등 엄벌에 처하고 있다. 올해 6월 대구지법은 보이스피싱으로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힌 혐의(사기) 등으로 기소된 수거책에게 징역 1년, 추징금 165만원을 선고했다. 앞선 5월에도 서울남부지법은 현금 500만원 편취한 수거책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며 엄벌했다.

 

허윤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휘 대표변호사)는 “보이스피싱은 엄벌주의를 취하고 있어 공범으로 체포되면 바로 구속될 수 있다”며 “비록 세부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인출책이라는 역할로서 본 업무를 대행했다면 역할분담이 인정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보기 때문에 공범으로 인정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실제로 보이스피싱의 인출책으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 억울한 마음에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심되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무죄 선고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된다면 최대한 선처를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명하기에 신속하게 변호사를 선임하고 사건의 진행 방향을 잡는 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대검찰청과 은행연합회는 최근 구직자 등의 보이스피싱 범죄 유입을 막기 위해 은행 자동화기기에 범죄 가담 경고 메시지를 표출하는 등 합동으로 대책을 강구중이다. 은행 ATM이 피해자 시각을 중심으로 보이스피싱 예방을 홍보·안내하고 있어 현금수거책 등 범행 가담자의 경각심을 높이는 데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또 수사·재판 과정에서 경고 메시지 열람 사실을 범행 가담자의 고의 입증이나 양형 자료로 활용해 허위 변명과 처벌 회피 행위도 막을 방침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개선안은 모든 은행의 적극적인 동참 아래 조속히 시행될 예정이고 보이스피싱 근절과 피해 감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앞으로도 ‘보이스피싱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유관기관과 협력을 지속하며 범죄를 근절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