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종합일간지

암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다

‘윤목’, ‘코리아판타지’ 등 연작으로 정체성 기반 창작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기사입력 2022-01-07 09:15:44

 
▲이재언 미술평론가
 1999년 사회면에 눈길을 끄는 비상한 뉴스가 하나 있었다. 성신여대 총장선거에서 조각가 정관모 교수(84)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지만, 재단에서 통상 1순위자를 임명하는 관례를 깨고 후순위자를 임명하자 학내외에서 많은 반발이 있었다는 뉴스였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길이 없고 개인적 친분도 없던 터이지만, 40대 약관의 나이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맡기도 했던 ‘정관모’, 조각가로서만이 아닌 여타의 활동에서도 세간의 주목을 받아온 그 인물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됐다.
 
필자는 일찍부터 우리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역량이 탁월한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한 분야의 달인은 많다. 하지만 작업도 널리 인정받고 리더십과 식견 등을 고루 갖춘 인물을 찾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가 누굴까 하는 세속적 관심을 줄곧 품어왔던 것이다.
 
그러다 지난 구랍 우리 미술계 원로인 정관모 교수를 만나러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을 찾았다. 어느 제자 작가의 전시장에서 한 차례 인사를 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었다. 육종암 투병중이면서도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접견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단숨에 달려갔다. 작가의 가족은 예술계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부인(김혜원), 딸(정진아), 사위(박발륜) 등도 모두가 유명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는 명문 조각패밀리다. 마침 평창동 자택에서 조각가 가족 모두를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작가는 다소 야윈 모습이긴 하나 젊은 시절의 형형한 눈빛이나 강직하면서도 온유한 성품과 카리스마, 논리정연하고 해박한 언변 등은 여전해 보였다.
 
▲ 모두가 조각가인 정관모 교수 가족 [사진=필자 제공]
 
필자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대뜸 미술관 이야기부터 꺼냈다. 작가 생애에 있어 가장 열정을 쏟았던 것은 아마도 작업, 교육, 신앙이 아니었나 생각되며, 그 세 가지가 삼위일체로 결집된 것이 바로 ‘C-아트뮤지엄’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작가는 2005년 경기 양평군 양동면에 사재를 털어 약 6만평 부지에 ‘C-아트뮤지엄’을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후원하지 않고 작가 개인이 설립한 미술관으로 최대 규모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예술작품을 통한 복음 사역 차원에서 설립, 방대한 양의 기독미술 컨텐츠를 갖추고 있어 복음테마파크 순례를 했던 많은 사람들은 SNS에 인상적인 후기들을 무수히 남기는 명소이다.
당연히 운영이 어떠한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대답은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꿈과 일종의 사명감으로 벌인 일이고 각오는 했던 일이지만 잘 되고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조그만 문화공간 하나 운영하는 데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데, 하물며 매머드 아트파크와 미술관을 유지, 관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기념비적인 작품 ‘윤목’
 
작가가 아트파크형 미술관을 설립했던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제주도에 3만평 규모의 대형 아트파크 미술관을 설립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특정 종교단체와 이름이 같아 오해를 사기도 하여 부르기를 꺼리는 것 같은데, 1987년에 ‘신천지미술관’을 설립해 2004년 폐관 후 양평에서 다시 부지를 매입해 C-아트뮤지엄을 설립한 것이다.
 
▲ 정관모 작가
  
그가 제주도에 아트파크 뮤지엄을 설립하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1970년대 처음 방문한 제주도의 자연환경에 반했으며, 양질의 예술 콘텐츠를 갖추게 될 때 자연과 예술의 시너지를 얻을 것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한다. 그리하여 제주의 자연과 함께 하는 조각공원 겸 미술관의 취지에 지역작가들과 몇몇 기업들이 호응을 했지만, 추진 과정 중 정작 기업의 참여는 무산되었다 한다. 하지만 작가의 성격상 자신이 처음 제안한 것이 말빚으로 여겨졌으며, 본인의 사재를 털어서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모양이다. 약 10여년 해외 유수의 조각공원들을 답사하여 장단점을 파악하고 구상을 하면서 불태워 온 열정과 꿈을 사장시킨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수만 평의 부지를 매입하고 건축과 컬렉션, 전문인력 투입 등의 문제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과제가 첩첩산중이었지만 작가는 묵묵히 수행을 해냈다.
 
필자는 1989년 미술관을 둘러본 이후 미술평론가협회 제주 세미나가 있을 때 투어 안내를 맡아 하는 등 몇 차례 더 들러볼 기회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버스로 방문을 하는 단체 입장객들이 많은 것을 보고서 미술관 경영이 성공적으로 잘 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는 관람자 입장 수익이라는 게 경영 차원에서 조금은 도움이 되지만 운영관리 비용을 감당하기가 벅찼다고 한다. 20년 후 매각할 때 조금 땅값이 올랐다지만, 그것은 다음의 후속을 위한 공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그 후 제주에는 다양한 문화명소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로써 제주시대를 마감하고 2005년부터 양평시대를 열게 된다.
 
▲Jesus Christ, 2005, 코르텐스틸, 22x5x15m
  
작가는 1970,80년대 우리 조형의 근간이 서구 미학에 매몰되고 있을 때, 홀로 정체성의 뿌리와 토대 위에서 ‘토속성’과 ‘현대성’을 융합한 작품 세계를 통해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윤목’, ‘코리아 판타지’ 연작으로 대표되는 작가의 양식은 절제된 구조 속에 우리다운 미적 요소들을 투영시키는 것으로서 전통의 현대적 구현으로 평가된다. 이후 양평시대의 2000년대부터는 복음적인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미술관에서는 순례자들에게 숭고적 신앙심을 환기하는 5층 건물 크기의 가시면류관 예수 각면상이 맞이하게 되는데, 국내 성상으로는 최대 규모의 랜드마크일 것이다. 
 
▲ THE WORDS, 2020, 캔버스에 아크릴, 70x90cm
 
작가는 심혈을 기울이는 복음적인 작품을 ‘새로운 성화’(New Icon)라 명명하고 있다. 종래의 재현적 도상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보다 풍부한 알레고리를 위해 절제된 실루엣 이미지와 상징 내지는 기호들을 조합하여 추상과 구상, 로고스와 파토스의 연동적 구조를 구현하고 있다. 특히 마치 이모티콘과 같은 도상에서 현대적 감성의 단면도 엿보인다. 작가는 십자가의 다양한 유형들 속에 담긴 서사들을 자신의 작업에 도입하고 있다. 구원과 대속의 상징인 십자가는 세계의 모든 해석과 담론들을 압축한 기호이면서도 그 응용은 참으로 다양하며, 모든 진리가 십자가로 수렴됨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신음하는 오늘의 인류에게 절실한 치유와 위로의 단서를 역시 십자가에서 도출해내는 그림 연작들이 인상적이다. 그가 오랜 세월 가꾸어온 ‘새로운 성화’ 패러다임 또한 우리 K-아트의 한 장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스카이데일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