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바야흐로 ‘점술의 시대’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주풀이 등 운세를 본 것으로 집계된 설문조사까지 있는 등 점술은 더 이상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삶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자리 잡고 있다.

 

남녀노소‧직업 등을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단순한 재미 또는 팍팍한 인생의 전환점 모색 등을 위해 점술을 찾지만 유독 정치인들에게만은 ‘주홍글씨’가 찍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앞에서는 부인해도 뒤로는 점술가를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역술인의 국정개입 등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정치인과 그 일가족의 점술 행위도 하나의 일상으로 봐야 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점술, 요즘엔 그저 맛집 탐방 같은 취미생활”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2018년 12월 21~29일 전국 10~30대 회원 16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전 국민 시선이 쏠렸다. 해당 연령층의 90％ 가량이 “운세를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25.5％는 “일 년에 한 번은 본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반 년에 한 번(25.1％) △한 달에 한 번(13.3％) △한 달에 2~3번(12％)이 뒤를 이었으며 “일주일에 한 번”도 13.3％에 달했다. 청년 10명 중 한 명 꼴로 매주 운세를 보는 셈이다.

 

선호 점술은 △사주풀이(35.2％) △타로점(24.7％) △별자리 운세(14.1％) △띠별 운세(12.6％) △궁합(4.3％) △토정비결(4.1％) △손금(2.8％) △관상(2.2％) 순이었다. 특히 10대는 타로점(31.5％), 2030은 사주풀이(20대 36.1％‧30대 49.2％)를 선호했다. 10~30대는 운세 중에서도 연애운(38.5％)에 관심이 가장 컸으며 △재물운(33.6％) △취업운(12.2％) △학업운(10.0％) 등도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술을 찾는 이유는 단순했다. 응답자의 42.7％가 “막연한 호기심에”라고 밝혔으며 △미래가 불안해 위안을 얻으려고(22.9％) △스트레스와 고민을 덜기 위해(13.2％) △시간을 때우기 위해(6.1％) △지인의 권유로(1.2％) 등이 뒤를 이었다. 비교적 진지한 답변은 타인의 마음이나 미래를 알아보기 위해(8.3％) 등에 그쳤다. 운세 결과를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묻는 질문에서도 “80％ 신뢰한다”는 6.7％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한 재미로 점술을 접하는 셈이다.

 

점술이 음지가 아닌 하나의 여가생활로서 우리 삶에 깊이 자리 잡으면서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9년 ‘점술 및 유사 서비스업’ 사업체 수는 9244개로 종사자 수도 1만745명에 달한다. 매출액은 1749억원으로 집계됐으며 업종 특성상 공식집계되지 않는 곳까지 감안하면 매출액은 더 클 것으로 추측됐다.

 

점술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에는 제주항공이 서울 강서구 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에 ‘여행의 행복을 맛보다’는 기내식 카페를 열고 타로운세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달 7일 서울 동대문구는 서울청년센터 동대문 오랑에서 청년들을 위한 ‘플렉스 데이’ 행사를 열고 타로상담 등 부스를 개설했다. 온라인에서도 AI(인공지능)가 봐주는 운세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하는 등 점술은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준희 씨(여‧22)는 “옛날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점술도 그저 맛집탐방 등과 같은 취미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이를 문제 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직장인 최수혁 씨(37)도 “아내와 재미 삼아 한 달에 한 번은 타로점집을 찾곤 한다. 이게 문제라면 대한민국 국민 중 문제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회 지도층 사례 많지만 유독 정치권만 문제시

 

과거 사회 지도층들도 점술과 관련해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된 바 있지만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크게 문제시된 적은 없다. 탤런트로 한 때 명성을 떨치다 무속인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정호근 씨가 경기 의정부시에서 운영 중인 대명원에는 내로라하는 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잇따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점집은 100％ 예약제로 운영되며 예약 후에도 2개월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2009년 9월에는 국내 역술계의 전설로 일컬어진 ‘부산 박도사’ 고(故) 박재현 씨가 생전에 자신을 찾아왔던 정‧재계 유력인사 등의 운세를 기록한 간명집이 ‘명리연구’ 등의 이름으로 세간에 풀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0년 타계한 박 씨는 자강 이석영, 도계 박재완과 함께 역술계의 ‘빅3’로 꼽혀온 인물이다.

 

고인은 A회장에 대해서는 “어두운 세상을 명명히 밝혀주는 등불 역할을 한다. 51~55세까지는 사업이 분망(奔忙)하고 (중략) 60세부터는 30대 재벌그룹에 등명(登名)된다”고 했다. 국내 굴지의 제철사를 이끌었던 B회장은 친히 헬리콥터를 타고 박 씨가 살던 충남 서산까지 찾아가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한 대기업집단 회장의 배우자도 서울 강남구의 한 점집을 수시로 찾는 것으로 전해진다.

 

모 금융그룹 창업주 C씨도 풍수지리에 매우 민감해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2000년 해당 그룹이 서울 강남 사옥을 마련할 때 C씨는 직접 지관(地官)을 대동한 채 땅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본사가 서울 여의도로 이전할 때 C씨는 강바람이 가장 덜 들 만한 으슥한 땅을 골랐다는 후문이다.

 

과거에는 음지의 문화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대중적 여가행위로 자리 잡은 게 점술이다. 그러나 유독 무속인과 얽힌 정치인들에게는 가혹한 잣대가 가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근래에는 ‘건진법사’ 등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점술을 엮어 부정적 이미지를 심으려는 시도가 정치권에서 이뤄지고 있다. 건진법사 전모 씨가 과거 국사(國師)를 자처했으며 윤 후보에게 접근해 선거 일정에 관여했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주장이다.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공보단은 17일 “전 씨는 선대본 전국네트워크위원회 고문으로 임명된 바가 전혀 없다. 무속인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여당과의 형평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역술인협회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주요 의사결정을 무당과 무속에 의존하는 국가 결정권자가 있다면 대단히 위험하다”며 윤 후보를 겨냥했던 송영길 대표가 역술인협회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모습을 찍었다는 사진이 강용석 변호사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역술인과 건진법사는 다르다”며 역술은 일종의 ‘과학’이고 관상은 ‘확률게임’이라고 해명해 야당으로부터 궤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오늘날 점술의 사회적 역할을 감안할 때 정치권도 더 이상 이를 터부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오늘의 운세 보면 무속에 빠진 거냐”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하도 그 얘기만 해서 사람들이 피로감이 있는 상황”이라며 정치권의 각성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