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에서 국혼(國魂)을 상징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과 독립운동가 분들의 정신에서 답을 찾았죠. 두 가지 키워드를 오늘날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 고심하다가 문화 시대라는 점에 주목했어요. 문화를 통해 역사를 교육하고 보급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독립운동가를 연구하고 관련 콘텐츠를 제작해 민족정기를 살리고 나라사랑 마음을 이끄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위인전을 읽고 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우지만 독립운동가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정도를 거론할 뿐이다. 영화와 TV에서도 유명한 위인들의 이야기만 반복한다. 영웅주의 사관 탓이다. 나라를 되찾고자 목숨을 바친 이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크게 관심 받지 못한 채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K문화독립군은 이러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문화콘텐츠로 제작하는 단체다. 대표적으로 뮤지컬 ‘페치카’를 제작했다. 이는 러시아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한 최재형 선생(1860~1920년)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오늘날 독립운동가 최재형이라는 이름은 다소 생소하지만 그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등 수많은 항일투쟁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의 대부다. 이처럼 K문화독립군은 문화콘텐츠를 바탕으로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K문화독립군 사무실을 찾았다. 김동규 회장(56), 구미꼬 김 이사(53·김구미) 등이 반갑게 맞아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앞서 김 회장과 김 이사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두 사람은 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며 노래하는 팝페라 부부다. 1998년 ‘듀오아임’이라는 팝페파그룹을 결성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 회장은 주세페김이라는 예명으로 팝페라 테너 겸 지휘자 겸 작곡가 등으로 활동한다. 김구미 이사는 구미꼬김(일본 나고야 출생)이라는 예명을 갖고 있으며 팝레라 소프라노이자 경기도전문예술단체 ‘랑코리아’의 대표로서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K문화독립군을 결성하기 전부터 역사 관련 음악을 만들어 함께 불렀다.

 

K문화독립군의 시초가 되는 역사 공연은 2014년부터 시작했다. ‘랑코리아’에서 창작공연을 펼칠 때였다. 주로 인문학 공연이었다. 이들은 시, 문학 등을 소재로 공연하다가 좀 더 교육적인 게 없을까 고민에 빠졌다.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안중근 의사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의 옥중편지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무대 위에서 연기도 했다. 독립운동 정신을 문화예술로 녹일 수 있는 활동들을 처음 시작한 순간이었다.

 

“역사 관련 창작공연을 해보니까 너무 좋았어요. 이후 공연의 4분의 1을 역사에 관한 작품으로 채웠죠. 그렇게 쭉 진행하다가 2017년에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님에 주목했어요. 러시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이끌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재무초장으로 선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반 시민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너무 속상하고 답답했죠. 음악을 통해 그분을 알리자는 생각을 가지고 관련 뮤지컬을 기획·제작하기 시작했죠.”

 

김 회장은 최재형기념사업회 채양묵 대표와 함께 2017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로 떠났다. 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지 97주기되던 해였다. 매년 연해주에 사는 고려인들과 러시아 사람들은 거기서 최재형 선생과 러시아 장교 세르게이 라조(Sergey Lazo)를 기리는 추모식을 성대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우리나라와 달랐다. 다소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그때 김 회장은 안중근 의사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분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며 뮤지컬을 만들기로 다짐했다.

 

“뮤지컬 ‘페치카’는 최재형 선생과 안중근 의사, 조마리아 여사, 그 시대를 살았던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에요. 이게 중요한 이유는 독립운동가 관련 뮤지컬이면 보통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다루잖아요? ‘페치카’는 약간 달라요. 대한제국이 왜 망했는지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어떻게 항거했는지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어떻게 의거를 했는지 돌아가신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등 추이를 서사적으로 대하드라마처럼 엮었어요.”

 

“최재형 선생은 3·1운동 다음해에 돌아가셨어요.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일어난 1909년부터 1920년까지의 시기를 조명했죠. 그리고 러시아혁명으로 소련이 탄생하면서 연해주에 살던 독립운동가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제로 이주하게 됐죠. 뿔뿔이 흩어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애환까지 파노라마식으로 담았어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세종문화회관에서 이 뮤지컬을 선보였죠.”

 

비영리사단법인으로는 2018년 인가됐다. 두 사람은 2017년 뮤지컬 ‘페치카’ 초안을 잡고 공연을 준비하던 중 사비와 후원으로 제작비용을 모두 충당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가보훈처의 후원을 받고자 했다. 당시 보훈처는 이들의 역사 공연을 알지 못했고 조그마한 단체가 2014년부터 열약한 환경 속에서 이러한 공연을 해왔다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보훈처 관계자들이 조언하더라고요. 특정 단체에 돈을 많이 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사단법인을 만들라고요. 보훈처 산하 사단법인으로 정식 인가되면 후원·협찬을 끌어오기 쉽다고 조언해 주더군요. 다행히 뮤지컬을 만들고 있을 때 사단법인으로 인가됐어요. 공신력 있게 일을 하게 된 것이죠. 사단법인 이름을 정해야 하잖아요. 기존 인문학공연에서 추구하던 ‘K문화 독립운동’이라는 말을 따서 K문화독립군이라고 법인명을 정했어요.”

 

보훈처 산하 비영리사단법 K문화독립군의 활동은 다양하다. 주요사업으로 △독립운동 및 호국보훈 관련 문화콘텐츠 개발 및 보급 △독립운동 및 호국보훈 관련 단체 문화콘텐츠 지원 △공모전 △K-Value 인문길라토크콘서트 △해외동포·다문화·외국인 대상 K-Value프로젝트 등을 전개하고 있다. 핵심은 뮤지컬 등 문화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다.

 

문화콘텐츠를 제작할 때 어떤 부분에 신경 쓰는지 궁금했다. 두 사람은 고증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고 전했다. 역사를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흥행을 위해 작품의 내용을 지나치게 각색할 경우 역사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 문제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선에서 정리해야 될지는 이들이 가장 민감하게 고민하는 부분이다. 각색과 왜곡 문제 외에도 적대감만 강조하는 반일정서에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 독립운동 콘텐츠를 보면 일본인들을 나쁘게만 묘사하고 있잖아요? 이걸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면 이데올로기에 휘말려 정치적 도구로 쓰일 수 있죠. 그것도 적절하지 않아요. 항일투쟁의 핵심은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권과 생명의 문제죠. 증오, 복수심 같은 것보다는 큰 틀에서 휴머니즘으로 귀결시키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요. 작품 안에 보기 힘든 장면들이 나와도 휴머니즘을 넣으면 교육적이고 감동을 줄 수 있죠.”

 

  

두 사람은 지금까지 제작한 콘텐츠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뮤지컬 ‘페치카’를 꼽았다. 뮤지컬 ‘페치카’는 2017년 용산아트홀, 2018년 KBS홀을 거쳐 2019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했다. 검증이 안 되면 쉽게 대관할 수 없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다는 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국내 창작 뮤지컬 중 성공한 게 별로 없다는 점에서 뮤지컬 ‘페치카’는 놀라운 성과였다. 이들은 당시 관객과 배우, 악단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함께 눈물을 흘렸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일단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주제가 아니잖아요?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재미없으면 다들 외면하는데 당시 관객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죠. 공연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하고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부탁한 것도 아닌데 관객 3000여명이 다 기립하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관객뿐만 아니라 배우, 악단들도 마찬가지였죠. 오보에를 불던 분은 목이 메어서 잠깐 연주를 못한 적도 있고요. 팀파니를 치던 선생님도 눈물을 흘리며 연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음악의 힘이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힘든 점도 적지 않았다. 바로 재정문제와 관심이다. 현재 사비나 후원을 통해 운영비를 마련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라도 많이 보여주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주위에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관객뿐 아니라 공익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지자체나 정치권에서도 역사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역사 뮤지컬을 앞장서서 만들지도 비영리단체의 문화콘텐츠 활동을 돕지도 않았다.

 

“시의회에서 관련 예산을 잡아도 정당 간 ‘반대를 위한 반대’로 갈등하며 흐지부지 돼요. 다른 당에서 발의했더라도 좋은 일이면 같이 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죠. 역사에 대한 정치인들의 아쉬운 모습이에요. 가장 아쉬운 것은 정치인들이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있고 흥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교육이죠. 다각적인 사고와 이해를 바탕으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수정된 역사 교육을 전달하고 기성세대한테는 새로운 역사를 재교육해야 한다고 봐요.”

 

향후 계획을 물었다. 우선 뮤지컬 ‘페치카’를 영화화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로 재탄생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고 전했다. 영화 ‘엽문’, ‘의천도룡기’처럼 똑같은 소재로 여러 편의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말이다. 이는 역사 콘텐츠를 계속 반복하며 우리 생활에 흡수하기 위한 목적이다. 교육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뮤지컬 ‘페치카’ 대사를 학교 학생들에게 보급해 극을 만들고 발표하도록 돕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독립운동가의 삶을 다룬 뮤지컬을 제작하고 있다.

 

“얼마 전에 의열단 뮤지컬을 관람했는데 단재 신채호, 이육사, 김상옥 그리고 운암 김성숙 등 의열단 출신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어요. 운암 김성숙 선생님은 승려로서 안주하지 않고 의열단 소속으로 독립운동 활동을 하시고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분이었는데요. 지성인의 표상이었지만 그분의 말년은 너무나도 힘들게 끝났죠. 이 시대를 어떻게 하면 진정성 있게 뮤지컬로 묘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독립운동 이후 정치적 변화와 지성인의 흐름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를 담으려 해요.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근현대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죠. 현재 이육사의 시 ‘절정’과 ‘광야’를 토대로 이미 음악을 만들어놓은 상태에요.”

 

보훈처 산하 비영리사단법인인 만큼 독립운동뿐 아니라 한국전쟁과 민주화운동에 관한 문화콘텐츠도 제작할 계획이다. 서로 반감이 공존하는 가운데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를 예술로 풀어내고자 한다.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전쟁 속에서 어떤 휴머니즘이 있었고 우리가 그걸 어떻게 극복해왔는지를 보여줄 생각이다.

 

“한국전쟁 관련 콘텐츠는 구상 시인 위주로 전개할 생각이에요. ‘적군 묘지 앞에서’라는 시를 쓰셨는데 관련 노래들 몇 곡을 이미 만들었어요. 뮤지컬에 이 노래들을 넣어서 제작할 계획이죠. 민주화운동 콘텐츠도 제작하고 있어요.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에 관한 이야기로 민주, 생명 협동의 길을 제시하는 실화 뮤지컬 ”빛이 된 사람들“을 이미 만들고 있죠. 작년에 초등학교 학생들과 2탄까지 작품을 만들었는데 올해는 학교 어린이 버전과 시민참여 극단형 어른 버전 두 개를 같이할 계획이에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기대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