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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왕 즉위의 비밀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기사입력 2022-06-17 18:39:37

 
▲ 정재수 역사작가
신라 김씨왕조 정통인 실성왕(흉노계)은 서기 392년 내물왕(선비계)이 ‘고구려 복속’을 선택하면서 광개토왕에게 볼모로 보내진다. 그리고 10년간의 고구려 볼모생활을 청산하고 신라로 돌아와 402년 왕위를 잇는다. 삼국사기 실성왕 기록이다. ‘내물왕이 죽자 그의 아들들이 어려서 국인이 실성을 세워 왕위를 잇게 했다(奈勿薨 其子幼少 國人立實聖繼位).’ 실성왕은 내물왕이 사망하면서 즉위한다. 다만 삼국사기는 ‘내물왕의 아들들이 어리다’는 단서를 단다.
 
실성의 환국을 요청한 내물왕
 
신라사초’ <내물대성신제기>이다. ‘25년(401년) 백우 4월, 봄부터 큰 가뭄이 들고, 제(내물왕) 또한 몸이 편치 않은데 여러 아들이 모두 황음하는 것을 일로 삼았다. 이에 제가 일동과 구리내 등을 고구려에 보내 비단과 진주 등을 선사하고 마아(실성)의 귀환을 청했다(二十五年 白牛 四月 自春大旱 帝且不寧 諸王子皆以荒淫爲事 帝乃遣一同仇里迺等于麗 贈錦帛珍珠而請還馬兒).’
 
신라사초는 내물왕의 여러 아들이 황음을 일삼자, 내물왕이 직접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실성의 귀환을 요청한 것으로 기록한다. 신라 왕실의 족보인 상장돈장(남당필사본)에 열거된 내물왕의 직계자녀는 모두 25명이다. 이들은 내물왕을 옹립한 광명(光明)여왕, 뒤를 이은 보반(保反)여왕, 보반여왕의 딸 내류(內留), 그리고 옹판, 사씨, 난황 등 모두 내물왕 부인들이 낳은 자녀이다.
 
특히 실성왕이 고구려에서 돌아온 401년(실성왕 43세) 당시 20세 이상의 내물왕 아들은 장자 호동(好童·광명여왕 소생)을 비롯해 5명이나 된다. 따라서 ‘내물왕의 아들들이 어리다’는 삼국사기의 표현은 실성왕의 왕위승계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다.
 
광개토왕을 설득한 천성공주
 
그렇다면 실성왕은 어떻게 해서 즉위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의외의 여성이 등장한다. 신라사초’ <실성기>이다. ‘고구려왕 담덕(광개토왕)이 그 여동생 두씨로 처를 삼게 해 아들 셋을 낳았다. 두씨가 마침내 그를 위해 담덕을 설득하며 말하길 “현명한 왕은 신의를 숭상하니 볼모로 잡는 것과는 다릅니다. 지금 첩의 남편이 신라로 돌아가면 금지옥엽이지만 고구려에 머무르면 구우일모일 뿐입니다. 원컨대 첩은 신라로 함께 돌아가 대왕의 계책이 되고자 합니다”고 했다. 담덕이 이를 허락했다(麗主談德以其妹杜氏妻之生三子 杜乃爲之說談德曰 賢主尙信而不若質 今妾之夫歸彼則金枝玉葉留此則九牛一毛也 妾願同歸其國以爲大王計 談德許之).’
 
 
▲ 실성왕과 천성공주 계보도. [사진=필자 제공]
  
광개토왕을 설득한 사람은 실성왕의 부인 두씨(杜氏)이다. 이름은 두양(杜陽)이며, 고구려사략이 광개토왕의 이복 여동생(妹)으로 소개한 소수림왕의 딸 천성(天星)공주이다. 고구려사략’ <영락대제기>이다. ‘2년(392년) 임인 정월, 서구를 보내 내밀의 딸 운모와 하모를 맞아들여 좌·우 소비로 삼고, 보금(실성)을 비궁대부로 삼았다. 보금은 내밀의 유자(조카)로 키도 크고 유식했다. 홀로 된 공주 천성(天星)을 처로 주었다(二年 壬辰 正月 遣胥狗迎奈密女雲帽霞帽爲左右小妃 以宝金爲妃宮大夫 宝金奈密之猶子也 身長而有識 以寡公主天星妻之).’ 천성공주는 실성이 고구려에 볼모로 건너온 392년 실성의 부인이 된다. 그리고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는다. 아들은 격중(鬲中), 연중(兗中), 혼씨(渾氏)이며 딸은 효진(曉辰)이다.
 
천성공주는 내물왕이 실성의 환국을 요청하자 이복 오빠인 광개토왕을 적극 설득해 남편 실성의 환국을 성사시켰다. 특히 신라사초는 ‘담덕이 그럴듯하게 여겨 마침내 보화를 일곱 수레에 실어 마아(실성)와 두씨(천성공주)를 정예 기병 3백명으로 호송해 보냈다(談德然之 乃以宝貨七車載 馬兒杜氏 以精騎三百護送之)’고 적고 있다.
 
신라 왕후가 된 천성공주
 
천성공주는 실성왕이 즉위하면서 곧바로 왕후에 봉해졌다. 고구려사략’ <영락대제기>이다. ‘12년(402년) 임인 2월, 춘태자를 금성(신라)에 보내 내밀을 조상하고, 보금(실성)을 신라 임금으로 천성(天星)을 신라 비로 삼았다(十二年 壬寅 二月 遣春太子于金城吊奈密 冊宝金羅主 天星爲羅妃).’
 
실성왕은 왕후가 3명인 ‘삼궁(三宮)’을 두며 제1왕후는 상궁(上宮), 제2왕후는 하궁(下宮), 제3왕후는 난궁(暖宮)이었다. 이때 천성공주는 난궁에 봉해진다. 신라사초’ <실성기>이다. ‘수호 원년(402년) 2월, 보반(保反)을 상궁으로 삼고, 내류를 하궁(內留)으로 삼고, 두씨를 난궁으로 삼아 이를 삼궁으로 했다(水虎元年 二月 以保反爲上宮內留爲下宮杜氏爲暖宮 是爲三宮).’ 또한 실성왕은 416년(실성15) 3궁을 5궁으로 확대하면서 천성공주를 제5왕후 별신궁(別神宮)에 봉했다.
 
이후 천성공주의 삶은 실성왕의 뒤를 이은 눌지왕 때에도 계속 이어졌다. 눌지왕의 후궁(後宮)이 된 천성공주는 418년(눌지2) 눌지왕의 아들 승(僧)을 낳기도 한다. 그리고 60세 전후인 435년(눌지19)에 사망했다. <눌지천왕기>이다. ‘19년(435년) 목시 4월, 후궁 두씨가 난산으로 홍했다. 왕이 이를 애석히 여겨 후하게 장사지냈다(後宮杜氏難産而薨 帝惜之 厚葬之).’ 특히 눌지왕이 후하게 장사지낸 점으로 보아 아마도 그녀는 경주 대릉원 일대에 묻혔을 것이다. 천성공주 무덤은 황남대총(눌지왕+아로왕후)의 딸린무덤(배총)인 92호, 93호, 95호 무덤 중 하나로 추정된다.
 
▲ 경주 대릉원 천성공주 추정 무덤. [사진=필자 제공]
   
천성공주 두양은 실성왕의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성이다. 또한 고구려 출신 공주가 신라왕실과 인연을 맺어 왕후가 된 유일한 경우이며, 신라에서 사망해 신라 왕가 묘역에 묻힌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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