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절(낙태)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번복했다. 이에 따라 일부 주에서는 발빠르게 낙태금지법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전국적으로 낙태권을 주장하는 시위대의 거센 저항이 촉발됐다.

 

CNN·BBC·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여성의 임신중절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약 50년 만에 뒤집었다.

 

이날 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절을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6대 3으로 임신중절 금지에 합헌 판결을 내렸다.

 

연방대법원은 대법원장 포함 총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됐으며 현재의 조직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보수 우위로 재편됐다.

 

이번 판결로 미국 전역은 찬반양론으로 분열됐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마자 이에 항의하는 낙태권 옹호론자들의 시위가 벌어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찬반 양측의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BBC는 이번 판결로 미국 50개 주 중 약 절반 가량에서 임신중절 관련 새로운 규제나 금지 법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법적 효력이 발생하면 임신중절을 자동으로 불법화하는 ‘방아쇠 법(trigger law)’을 이미 통과시킨 주도 13개가 됐다.

 

이날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의견은 임신중절을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번복돼야 한다면서 “헌법은 임신중절을 언급하지 않고 헌법적으로 이런 권리를 암묵적으로나마 보장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설명했다. 이어 “로 대 웨이드 판례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으로 그 추론은 매우 약하고 결정은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반대 의견을 낸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기본적인 헌법적 보호를 잃게 된 수백만명의 미국 여성에 대한 비애와 함께, 우리는 (다수의견에)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 여성 권리 신장에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됐던 로 대 웨이드 판례는 이번 판결로 폐기된다.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례가 생기기 전에는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산모 생명이 위험한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임신중절이 금지됐다.

 

이날 판결에 앞서 지난달에는 로 대 웨이드 판례 번복 내용을 담은 의견서 초안이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를 통해 보도되면서 판례 전복 가능성과 함께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로 대 웨이드 판례가 49년 만에 폐기 결정이 내려지자 대 국민연설을 통해 “오늘은 우리 국가에 슬픈 날”이라면서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낙태권 보장을 위해 계속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 사회도 미국의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결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가디언·AP통신 등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번 미 대법원 판결을 “큰 퇴보”라고 평가했다. 그는 “나는 항상 여성의 선택을 믿어왔으며 그 관점을 고수한다”며 “영국은 그렇게 하는 법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위터에 프랑스어와 영어로 “낙태는 모든 여성들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이는 보호돼야 한다”고 썼다. 이어 “미국 대법원에 의해 자유가 침해된 여성들에게 나의 연대를 표하고 싶다”고 밝혔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성명에서 “자신의 신체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성의 기본권을 빼앗아 가는 것을 보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당혹스러웠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뉴질랜드가 “최근 낙태를 범죄로 간주하지 않고 건강 문제로 취급하는 법을 제정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