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해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경제적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헌법재판소(2001.8.30.선고 2000헌마668 결정)는 이를 “경제적인 약자에게도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며, 국가의 의무인 정당한 공공복리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헌법재판소(2003.10.30.선고 2000헌마801 결정)는 또 “건강보험 가입 강제와 보험료 차등부과로 인하여 달성되는 공익은 그로 인하여 침해되는 사익에 비하여 월등히 크다고 할 수 있으므로 헌법상 행복추구권, 단체에 강제 가입하지 아니할 자유, 또는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2000년 1월 1일 시행된 국민건강보험법은 다보험자 방식으로 운영되는 의료보험관계체계를 단일보험자로 통합 운영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보험료 부과체계는 11년이 지난 지금에도 통합이 이루지 못해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이원화돼 있다. 정부는 1998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아홉 번이나 보험료 부과체계 개선방안을 연구했지만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개선방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직장인은 근로소득을 기반으로, 지역은 종합소득, 재산, 자동차를 차등 점수화하여 부과하고 있다.

이 같은 부과체계 이원화에 따라 직장 가입자는 월급의 5.64%(2011년)에 해당하는 보험료를(사용자가 50%, 근로자가 50% 분담) 매달 납부하고 있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배우자, 직계존비속 및 그 배우자, 형제자매)는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다. 지역가입자는 자신이 속한 세대단위로 산정된 보험료를 납부한다. 보험료는 종합소득금액별 점수, 재산등급별 점수, 자동차등급별 부과점수에 점수 당 금액 165.4원(2011년)을 곱하여 산정된 금액을 납부한다. 이 같이 이원화된 보험료산정방식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2003.10.30.선고 2000헌마801 결정)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에 있어 본질적인 차이를 고려한 것으로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정부가 11월 15일 내년 건강보험료율 2.8% 인상안과 함께 발표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은 지금까지 문제로 지적돼온 직장·지역가입자 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해소하는 데 맞춰졌다. 우선 근로소득 외 자산소득 등이 많은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늘렸다. 현재 근로소득이 전부인 직장인 김 씨와 매월 4천4백만 원의 임대소득이 있는 직장인 박 씨는 각각 매월 월급으로 150만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똑같이 월 4만2천 원의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 결국 고소득자 박 씨가 총 소득의 0.09%를 부담했다면, 낮은 소득의 박 씨는 총소득의 2.82%를 부담한 것이다. 이는 경제적 능력이 아닌 근로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부담해 온 것이 된다. 정부의 개선안이 시행되면 박 씨는 기존 보험료 4만 2천원에 추가보험료 124만 원을 합쳐 매월 총 128만2천 원의 보험료를 내게 된다.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세 부담을 지게 되는 역진성을 해소한 것이다.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직장인 피부양자 제도 역시 고액소득자들의 보험료 회피 수단으로 흔히 악용돼왔다. 실제 매달 350만원의 연금을 수령하고 40평대 아파트와 자동차까지 소유하고 있는 이 씨는 보험료를 전혀 납부하지 않고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재됐기 때문이다. 반면 연간 580만 원 정도의 사업소득을 올리고 있는 강 씨는 직장에 다니는 자녀가 있지만 피부양자로 등재되지 못해 매달 20만 원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근로소득 외 연금을 포함한 종합소득이 4천만 원을 초과할 경우 피부양자에서 제외시켜 별도의 보험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경제능력에 따른 보험료 부담’ 원칙에 맞게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단계적으로 단일화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주 전격 취임한 김종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건보공단에 ‘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 TFT’를 꾸리는 것으로 정부에 화답했다. 그는 1999년 건강보험 통합 과정에서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그가 12년 동안 아홉 번의 시도에서 찾아내지 못한 현실적이고 수용 가능한 ‘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 방안을 과연 도출해 낼지 지켜볼 일이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급여율)은 현재 65% 수준으로 선진국의 80%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처럼 건강보험이 보호하지 못하는 의료서비스 영역에 의료민영화 이슈가 있다. 한미 FTA 비준과 관련한 보건의료계의 쟁점 역시 의료민영화다. 만약,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되면 이 법인은 우선 건강보험이 급여하지 못하는 의료시장에 진입하여 기존 요양기관과 경쟁할 것이다. 이점에서 건강보험의 운영 성과와 미래는 의료민영화 이슈의 전개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국민건강보험은 현재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통해 의료기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의료기관을 강제로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지정하고 있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대해 헌법재판소(2001.10.31. 99헌바76 결정)는 “사회적 연대성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보험에서 본질상 요구되는 강제성은 피보험자의 가입에 관한 것이지 요양기관의 지정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는 “우리나라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이 약 10여 %에 불과하기 때문에 민간의료기관을 의료보험체계에 강제로 동원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요양기관의 수를 확보하고 국민건강보험의 보험급여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로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보험료 부과체계 일원화’와 ‘한미 FTA와 의료민영화 이슈’라는 쉽지 않은 안팎의 과제를 떠안은 보건당국과 건강보험공단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