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 시절부터 농악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전통의상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사업으로 승부를 걸 수 있었습니다.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 과정까지 오는데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인생사를 겪었네요”

신 의상실의 신근철 대표(46)는 충청도 서산에서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공부보다 친구들과 함께 놀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목수였습니다. 목공 기술이 좋아서 서울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서울에서 한옥 집을 지으셨고 자주 집에 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1년에 몇 번만 볼 수 있었죠”

아버지는 목수, 어머니는 농사일을 하면서 생업을 이어갔다. 신 대표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농사일을 도왔다고 한다.

“아버지가 한번은 집에서 장구를 치셨는데 그 소리에 매료돼 학교에서 장구를 치곤 했습니다. 공부보다 농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신 대표는 장구 실력이 나날이 향상됐고 대회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1986년 아시안 게임에 초청이 돼 공연을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했더니 말로 표현하는 것이 벅찰 정도로 감격스러웠습니다. 그 설렘과 떨림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농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동아리 ‘태고 놀이패’를 만들었다. 태고 놀이패는 농악을 비롯해,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다. 충북 예산의 한 극장에서 첫 공연을 했다.

“동아리의 첫 음악회였습니다.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많은 관객들이 찾아와 공연은 성황리에 마치게 됐습니다. 공연을 통해 기획사 관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저희 팀은 이후 지방 순회공연도 다니며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앞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죠. 당시 저희 놀이패가 많이 알려졌었지요. 어린 나이였고 세상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농악으로 잘 나가던 그 시절에 아버지가 운명하셨습니다. 또 형님의 사업이 부도가 났고요. 슬픔이 컸던 탓에 놀이패를 더 이상 이끌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탈퇴하고 말았지요”

부친을 여윈 슬픔에 빠진 신 대표는 사람들에게 흥을 주어야하는 농악을 포기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서울에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농악은 포기했고 ‘무조건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서울에 와보니 사람과 건물, 자동차가 상상을 초월하게 많더군요. 그 많은 집들 중에 제가 기거할 곳이 없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들이 뛰어다니며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걸음만큼은 빨리 걷고, 빨리 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습관이 들어서 약속시간 만큼은 지금도 늦지 않게 지키고 있습니다”

서울에 연고가 없었던 신 대표는 숙식이 제공되는 일용직 자리를 전전했다.

“한번은 친구들과 당구를 치는데 한 친구가 ‘돈 없는 사람은 빠져라’는 말을 했었죠. 저를 두고 한 얘기였습니다. 당시 제 주머니에는 3000원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술집에 갔는데 이 친구가 또 ‘돈 없는 사람은 빠져라’란 말을 하더군요. 서러움이 몸속 깊이 차 올랐고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는 서러움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 이후 ‘절대 돈 없이 친구는 안 만나다’고 다짐했다.  

그는 일용직 일자리를 그만두고 전통의상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어려서부터 농악을 해서 전통의상을 자주 입었습니다. 누나는 한복 기술자이기도 하고요.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자 이 일을 하게 됐죠”

서울 종로의 작은 의상실에 취업한 그는 바느질부터 배워 나갔다. 일은 고되지 않았지만 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기술을 꼭 익혀 ‘사업으로 성공을 해야 겠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실력을 쌓기 위해 누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하고자 했다. 낮에는 죽기살기로 일을 하고 밤에는 샘플 의상을 뜯고 다시 바느질을 해서 본 모습으로 해 놓는 작업을 반복했다.

불철주야 옷과 씨름하는 사이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는 가르쳐 주는 사람 없이 독학으로 의상 옷 만드는 법을 익히게 됐다고 한다. 농악의상 뿐만 아니라 갖가지 무용복도 독학으로 익혔다. 전통의상인 승무복, 살풀이 복, 왕·왕비 의상 등 약 700여 가지의 전통 의상 제작법을 익히게 됐다.

“3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습니다. 한번은 밖에서 전통한복을 입고 가는 여러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한 눈에 옷마다 바느질이 돼 있는 곳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신기한 현상이었죠”

자신감이 붙은 그는 28살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사업에 나서게 됐다.

“작은 방에서 맞은 첫 손님의 이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석태정이란 분인데 인천 시립단 소속의 무용수였습니다. 그 분이 다른 사람들을 소개시켜 줬고 고객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정성들여 만든 옷을 알아보는 고객들이 늘면서 주문량이 확 올랐다.

“살풀이 춤에 정평이 자자자한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의 소개로 의상실이 더 확대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 가게를 찾았습니다. 인간문화재 정재만 선생님과 이매방 선생님이 제 고객입니다. 사물놀이로 유명한 김덕수씨의 아내 분도 저희 가게에 오십니다. 연예계에서는 김보성, 장나라씨가 저희 집을 찾아 의상을 맞췄습니다”

대학 무용과의 교수들과 학생들이 그를 찾아왔고 관련 협회·기관 등에서 의상 제작을 의뢰 받았다. 하루에 1000만원을 벌만큼 손님이 많았다. 한 벌에 15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옷도 제작했다. 그는 삽십대 초반에 고급자동차를 살 수 있었고 종로, 보라매, 평창동 등에 땅을 매입할 수 있었다.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슬픔에 빠진 그는 술에 취한 채 살았다. 화목했던 가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고 한다. 이혼으로 재산의 80%를 위자료로 지급했다. 신 대표는 1년 동안 모든 일을 접고 전화도 받지 않으며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좋은 배필을 만나 다시 가정을 꾸렸습니다.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아내는 제게 많은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악착같은 생활을 하게 된 동기는 젊은 시절에 제게 ‘돈 없으면 안 논다’는 친구의 말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친구와도 잘 지냅니다. 그 친구와 당시 상황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정도가 됐습니다”

“전통의상에 관심 있는 젊은 친구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전통 의류 제작 방법을 오랜 시간 동안 두고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내와 정성이 가득한 영혼의 옷을 앞으로 계속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