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 경제계에서는 성추문·불륜·외도 등 얼굴을 붉힐 만한 낮뜨겁고 민망한 사건들이 끊임 없이 불거져 나왔다. 흔한 비속어로 속칭 ‘아랫도리 사건’으로 불리는 이들 사건은 재계 전반에 걸쳐 발생했다. 일반 대기업은 물론 공기업과 금융기업 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계 및 증권가 등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경제의 뿌리 역할을 맡고 있는 대기업들의 ‘아랫도리 사건’ 빈도는 예년에 비해 그 정도가 특히 더했다. SK, 현대중공업 등 재계 10위권에 속한 굴지의 대기업들에서 성추문·외도 등의 사건들이 불거져 나와 국민들에게 인상을 찌뿌리게 했다.

지난 8월에는 재계 서열 3위에 올라 있는 SK그룹의 계열사인 SK하이닉스 내에서 벌어진 직원 내 불륜 행각이 공개돼 이목을 끌었다. 30대 유부남과 어린 신입 여직원 사이에 연애 행각이 사내 게시판을 통해 공공연하게 드러났다. 더욱이 게시판에 해당 사실을 공개한 사람이 다름 아닌 30대 유부남의 아내로 밝혀져 충격을 더했다.

게시판에는 두 남녀의 불륜행각은 물론 심지어 모텔 현장을 급습한 동영상도 함께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실은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확산됐고, 여전히 인터넷 상에는 사건의 전말이 공공연하게 드러나 있다. SK하이닉스도 일련의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소문은 사실로 밝혀진 셈이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소문의 주인공들 근황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소문이 사실임을 인정하면서도 불륜 남녀에 대해서는 “직원 개인적인 일이라 따로 할 말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여론은 “책임은 커녕 꼬리 자르기에 급급하다”며 회사측의 태도를 비난했다.

재계서열 7위의 현대중공업에서도 ‘아랫도리 사건’이 불거져 나왔다. 현대중공업의 사건은 지휘 체계를 악용한 한 임원의 성추문 사건이었다. 사건은 ‘갑의 횡포’ 문제까지 더해져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중공업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운영지원부 이모 총괄상무는 부임을 자축하기 위해 직원들과 가진 회식자리에서 계약직 여직원을 강제로 껴안고, 손을 잡는 등 성추행을 저질렀다. 큰 수치심을 느낀 여직원은 이 상무의 행위를 노조에 고발했다. 이후 노조 측의 반발로 이 상무의 성추행 사실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이 상무는 노조에서 성추행 사실여부 조사에 나서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전 직원들에게 사과를 하며 사건 무마에 나섰다. 또 노조 명예평등감독관으로부터 성희롱 예방교육까지 받았다. 그러나 노조 측은 추후 성추행 피해직원이 이 상무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계약직 신분이라는 점을 감안해 사태의 확실한 매듭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에 피해자들을 대신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상무의 성추행 사실은 노조 홈페이지에도 게재됐다. 이를 접한 노조원들은 격앙된 반응을 드러냈다. 실제로 당시 현대중공업 노조 홈페이지에는 “딸 뻘인 여직원들을 성추행하다니 해임시켜라”, “반드시 경찰에 넘겨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세계 1등 조선소에서 성추행이라니 해외토픽감이다”라는 등의 비난 글이 쇄도했다.

더욱이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올 3분기까지 무려 3조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이 최근 자구책 마련 차원에서 대대적인 임원 인사를 단행한 후 불거진 사건이라는 점을 이유로 이번 임원 인사 자체에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여론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련의 사안과 관련해 당시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모르는 사안이다. 확인 후 연락주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금융권 또한 ‘아랫도리 사건’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국내 5대 은행 중 무려 2곳에서나 관련 사건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이 그 주인공이었다.

지난 9월 기업은행은 ‘몰카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다. 기업은행 충주연수원장이었던 A씨가 여직원 숙소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촬영(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여직원의 외출여부와 몰래 카메라가 설치된 자리에 테이프를 붙였다 뗀 흔적을 수상히 여긴 여직원의 신고로 경찰에 입건됐다. 경찰은 사건의 심각성을 감안해 지방청에 정밀 카메라 분석을 의뢰했고, 피해여성이 더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경찰은 몰래 카메라에 찍힌 방 안 TV 화면을 분석한 결과 약 2년 동안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에 더해 몰래카메라가 기존에 밝혀진 화장실 뿐 아니라 방안과 복도에도 다수 설치돼 있는 정황도 포착됐다고 밝혔다. 사건이 불거지자 은행 측은 이 연수원장을 면직처리하며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은행도 ‘아랫도리 사건’의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은행은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피해자를 해고했다는 의혹을 받아 강한 질타를 받았다. 미국 뉴욕·뉴저지의 법무법인 김앤배는 “우리은행 뉴욕지점에서 근무했던 이모씨와 신모씨는 상사의 성추행 사건을 본사에 알렸다 해고를 당했다며 회사를 상대로 350만 달러의 배상소송을 뉴욕법원에 냈다”고 밝혔다.

이씨 등의 주장에 따르면 본사에서 온 한 주재원이 2012년 9월 전 직원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 2명을 추행했다. 11월에도 자신들에게 성적인 폭력을 가했다. 이씨 등은 이후 우리은행 본사에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 현재 감사가 진행 중이며 해당 주재원은 조기 소환돼 대기발령 상태다.

그런데 주재원이 서울로 돌아간 뒤 지점에서 자신들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기 시작했다. 주특기와 상관없는 부서에 배치시키기 까지 했다. 이 씨 등은 이런 노골적인 보복을 당한 끝에 결국 해고됐다. 이에 성추행과 회사 측의 지휘·감독 소홀에 대한 배상과 함께 별도의 징벌적 배상금과 이자, 소송비용 등을 회사에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우리은행 관계자는 “해외지점에서 자꾸 이런 일이 생겨 당혹스럽다”며 “이번 사건은 해고를 부당하게 했느냐의 문제인데, 근무 태도가 불량해 고용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성추행을 당했다는 직원들은 현재 정상근무 중”이라며 “해당 건에 대해서는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에 대응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공기업들 또한 성추행 등의 민망한 사건에 연루돼 국민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공기업이 국민의 혈세로 운영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언급하기 민망한 사건으로 주인과 다름 없는 국민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점은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 거세게 나왔다.

‘직원들의 성추행 문제’로 도마 위에 오른 공기업 중 대표적인 곳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발표한 ‘LH의 내부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 LH 강원지역본부 간부 A씨는 LH 주체로 열린 기업협의회 교육에서 ‘청소년 성상담사’란 주제로 발표를 하던 중 여강사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를 저질렀다.

A씨는 옆에 있던 외부 여강사의 엉덩이를 손으로 힘껏 내려쳤고, 이에 성적 수치심을 느낌 여강사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결국 LH는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A씨에게 ‘감봉’ 조치의 징계를 내렸다.

그런데 얼마 안가 LH 내에서 또 다른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LH 토지주택연구원 소속 B씨가 한국콘크리트학회 주최 봄 학술대회에 참가했다가 다른 기관 여직원의 몸을 건드리는 등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실이 알려졌다. LH는 해당 직원에 대해 직위 해제 처분을 내렸고, 재판 결과가 나오는 대로 후속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