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서당에서는 천자문이나 동몽선습 등을 뗄 때마다 뜻 있는 한문 한 글자를 써 봉투에 담아 학동에게 주었다. 평생 마음깊이 새기지 않으면 아니 될 가르침을 한 글자에 응집시킨 것이다.

예를 들어 재치가 넘치고 매사에 과민하면 ‘어리석을 우(愚)’를, 남에게 배려가 적고 독선적이면 ‘어질 인(仁)’을, 매사를 서둘러 일을 그르치면 천천히 걷는 ‘소 우(牛)’ 등등을 써서 봉투에 넣어 주었다. 이른바 ‘단자수신(單字修身)’이다.

또 학생이 책 한 권을 다 배우거나, 베껴 쓰는 일이 다 끝난 것을 기념하여 그 학생의 집에서 선생과 동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세책례(洗冊禮)’라는 풍습도 있었다.

 

요즘 말로 ‘책거리’, ‘책례’라고 풀면 이해가 쉽다. 어찌 보면 오늘날의 졸업식에 해당된다.

옛날의 서당에는 훈장과 생도로 구성되어 있고, 유명한 훈장님을 문중이나 마을에서 초대하여 서당을 세웠다. 훈장은 선생님, 접장은 학생의 대표 통솔자 그리고 생도는 일반 학생이었다.

이러하기에 이런 ‘세책례’에서는 훈장의 노고에 보답하고, 학동의 공부를 더욱 격려하기 위한 것으로 반드시 송편을 장만했다.

송편은 속이 비어 뚫려져 있질 않은가? 학동들의 ‘지혜 구멍’이 송편처럼 펑 뚫리라는 바람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요즘도 한 학기가 끝나면 방학이 되기 전에 학생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수박이나 떡을 준비해서 선생님께 감사하는 ‘책거리’를 한다. 바로 서당의 ‘세책례’에서 연유한 것이라 보면 된다. 

우리 농사일에서도 ‘책거리’와 비슷한 끝맺음을 하는 ‘호미씻이’라는 풍속이 있다.

‘호미씻이’는 여름 농사가 거의 끝나 밭이나 논을 매는 호미를 다 쓴 후 호미를 씻어 둔다는, 농사를 일단락 짓는다는 뜻에서 각 가정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흥겹게 하루를 즐기는 행사다.

사실 우리네 선조들은 우리 생활에서 ‘작심삼일’이니 ‘용두사미’니 하는 말들로 끝을 흐지부지하게 끝내는 것을 무척이나 경계했다. 해서 조상들은 ‘시작이 반이다’하여 시작을 중히 여겼지만 마무리도 진정 철저하게 매듭을 지었다.

그렇다.

졸업은 하나의 매듭이다. 하나의 매듭은 한 과정의 새로운 시작이다. 다른 매듭을 준비하는 행위다. 모든 새로운 시작은 하나의 매듭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학기의 시작은 매년 3월이다. 이제 곧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새내기들이 학교로 오고, 지난해 한 학년을 성공적으로 마친 학생들은 새로운 학년에 올라간다. 마침과 새로운 시작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를 영어로는 ‘커먼스먼트(commencement)’라고도 한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 생각해보니 이젠 졸업식 시즌을 맞아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졸업식을 치러야만 하는 우리를 되돌아볼 필요가 생긴다.

최근 수년 동안 각종 매스컴에 오르내린 ‘아름답지 못한 졸업 문화’를 함께 과감히 쳐부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