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의 무모한 차관경제와 중화학공업화 정책으로 인해 1980년대 초반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하자 주택건설 경기도 함께 나빠지게 됐다. 정부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주택공급물량을 늘렸고, 이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주택건설물량 역시 증가했다. ‘LH 주택공사 40년’에 따르면 연간주택공급량은 1978년 30만107호, 1980년 21만1537호, 1981년 14만9837호로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주공의 아파트공급량은 1978년 2만2801호, 1981년 4만4600호로 급증했다. 1980년대 말 개발된 상계신시가지는 택지개발계획부터 개별 단지계획까지 LH의 주도로 이뤄졌다. 상계신시가지 중심에는 상계주공아파트가 있었다. LH는 동일로를 따라 상가를 조성하고 상가 뒤로 주공아파트 단지를 배치했다. 상계신시가지는 녹지 및 보행로도를 조성해 단지들이 서로 구분되는 것을 막고, 서로 생활권이 겹치도록 만들었다. 1988년 5월 입주를 시작한 상계주공아파트는 16개단지 4만223세대로 조성, 당시로는 파격적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였다. 아울러 천편일률적인 일자 형태의 아파트 형태에서 벗어나 Y, U, V, L 등의 다양한 형태로 지어졌다. 스카이데일리가 ‘아파트 대한민국 뿌리’ 시리즈 여덟 번째로 서울에 남아있는 대규모 신시가지 중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지어진 상계주공아파트 단지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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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주공아파트는 LH의 주도 아래 1985년부터 1989년까지 4년 동안 지어졌다. 새로운 신시가지를 건설한다는 명목 아래 16개 단지, 총 4만 세대가 넘는 대단지였다. 이 아파트 단지는 다양한 형태로 지어진 최초의 단지다. ⓒ스카이데일리
지하철 7호선 노원역 8번 출구를 나오면 동일로를 중심으로 양편으로 늘어선 상계주공아파트 단지를 만날 수 있다. 이 아파트 단지는 1985년부터 1989년까지 4년간에 걸쳐 조성됐다. 16개 단지에 걸쳐 총 4만여 세대가 넘는 가구로 이뤄진 이 아파트는 서울에 지어진 신시가지 중 최대 규모이다.
LH의 계획 아래 지어진 이곳의 상가들은 동일로를 따라 양편으로 늘어서 있다. 동일로를 걷다보면 아파트 숲 사이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5층부터 25층까지 다양한 높이의 주공아파트들을 만날 수 있다. 아파트의 층수만큼이나 공급면적도 다양하다. 제일 작은 규모는 45㎡(약 14평)이고, 가장 큰 규모는 80㎡(약 24평)이다.
주공아파트는 지어진 지 20년이 넘었지만 당시 워낙 튼튼하게 지었고, 외관상으로도 관리가 잘된 상태였다. 주공아파트답게 아파트주민 자치 활동이 활발하고, 자체적으로 관리·감독이 잘돼 있다. 일례로 주공 1단지에는 입주자대표회의에 의해 음식물쓰레기 자원화시설기기가 설치돼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아파트가 도심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서 가격은 상대적으로 타 지역에 비해 매우 낮다”며 “고층 23평의 경우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70만원이고, 저층 23평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80만원이다”고 전했다. 그는 “같은 평수라도 엘리베이터의 유·무에 따라 관리비 차이가 나서 시세가 다르다”고 말했다.
▲ 상계주공은 다른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물이 있다. 아파트의 가운데를 뻥 뚫어 공중정원을 만들었다. 또한 단지 내에 거대한 수조타워를 만들어 새로운 스타일의 아파트를 만들고자 시도했다. 현재는 둘 다 운영되고 있지 않다. ⓒ스카이데일리
공중정원과 고가수조타워가 있는 추억의 아파트
아파트에 20년 이상 산 주민은 “지나가다가 412동 아파트를 보면 아파트의 일부분이 뻥 뚫려 있어서 아찔했다”며 “당시에는 높은 아파트가 드물었는데, 저 아파트는 가운데가 비어있어 바람이 세게 불 때에는 아파트가 휘청거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상계주공 아파트는 스카이데일리 아파트 뿌리 시리즈 중 ‘아시아선수촌아파트’에서 소개한 조성룡 건축가가 설계했다. 당시 조씨는 “건물이 너무 높아 자칫 바깥과 단절될 수 있다”며 “아파트 중간에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네 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공간에다 공중정원을 만들려고 시도한 것은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도였다. 이 단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공중정원을 놀이터 삼아 뛰어 놀았다. 획기적인 시도였으나 소음 문제로 지금은 폐쇄됐다.
5단지 515동 옆에는 거대한 원반모양의 고가수조타워가 있다. 한 주민은 “어린아이들은 고가수조타워를 ‘팽이’라고도 부르고, ‘UFO’라고도 불렀다”고 전했다. 다른 주민은 “옛날에는 타워 밑에서부터 물이 올라가 거대한 분수가 나오는 게 장관이었다”고 했다. 현재는 현재 수조타워는 관리비 절약 차원에서 운영되지 않고 있어 비둘기 놀이터로 변한 모양새였다.
단지마다 높이 솟은 굴뚝을 볼 수 있었다. 아파트가 처음 지어질 때에는 중앙난방이라 굴뚝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모두 개별난방으로 바뀌어 이용하지 않고 있었다. 아파트관리사무소 측에서는 “철거비용이 많이 들어 방치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이 아파트 단지의 아파트들은 높이와 층수가 제각각이다.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 사이에 5층짜리 저층아파트가 있다. 아파트의 외관은 Y자, U자, V자, L자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인근부동산 관계자는 “빌라처럼 보이는 5층짜리 건물도 사실은 상계주공아파트다”며 “고층 아파트만 있으면 바람이 안 통해서 그렇게 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횡과 열에 맞춰 배치된 천편일률적인 형태는 이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었다. 아파트는 지형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지어졌다.
▲ 획일화된 성냥갑 모양의 형태를 탈피하기 위해 LH는 아파트의 형태에 많은 신경을 썼다. 아파트 형태는 Y자, U자, V자, L자 등 다양하고, 높이도 저층 5층부터 20층까지 있다. ⓒ스카이데일리
달동네 사람들 내몰고 만든 대단지 아파트
상계주공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상계동 일대는 가옥 500여 채, 공장 100여 곳, 비닐하우스 2000여 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60년 후반부터 도심지 재개발로 터전을 잃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88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온 나라는 들썩이고 있었다. 정부는 올림픽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서울시 달동네 재개발사업을 시행했다.
서울의 200여 곳의 달동네가 허물어지고 그 중 하나인 상계동 일대 주민들도 정부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내몰렸다. 대신 그 자리에는 4만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가 조성됐다. 서울시는 그렇게 서울시 도봉구 상계동·창동·월계동 일대를 재개발했다.
이렇게 개발된 상계주공아파트는 1986년 4월 첫 분양을 한다. 노원역 옆에 공개된 모델하우스 신청창구는 인산인해를 이루며 긴 줄을 서야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1차 분양 물량은 4046구였는데, 1만8758명이 신청해 평균 4.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분양 첫날 1순위 접수에서 모든 평형들이 마감됐다. 벽면구조를 선택할 수 있었던 저층 20평 융통형 주택은 72가구에 1519명이 신청 해, 21대 1의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전용면적이 많이 나오는 저층 아파트는 분양할 때부터 지금까지 수요자들이 선호하고 있는 아파트다.
이 아파트 단지는 지난 1992년 노원역 사거리에 미도파 백화점이 문을 열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미도파 백화점은 개장 첫날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몰려 줄을 서서 들어갈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2002년 미도파 백화점은 롯데쇼핑에 인수돼 현재는 롯데백화점 노원점으로 명칭을 바꿔 운영중이다.
학창시절을 상계주공아파트에서 보낸 한 주민은 “지금이야 백화점이 흔하지만, 당시 생긴 미도파 백화점은 동네의 자랑이었다”며 “노원역 근처에 아무것도 없던 시절 친구를 만날 적에는 당시 랜드마크였던 미도파 백화점 정문에서 자주 만나곤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