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팬들과의 만남을 위해 시작했던 일입니다. 저희들끼리 노는데 그 목적이 있었죠. 점차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져 이를 콘서트로 만들었어요.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다보니까 남다른 의미가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개그콘서트 ‘우격다짐’ 코너를 통해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고 외쳤던 개그맨 출신 배우 이정수(35) 씨는 인터뷰 내내 유쾌하고 솔직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무대를 통해 선보인 ‘NORI 콘서트’를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었다. 이 콘서트는 무대와 관객 간 경계를 허물고 함께 모여 놀 수 있는 색다른 콘서트다.

그는 약 1년여 간 이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고 했다. 외로운 사람들이 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유쾌하게 웃고 떠들며 자연스레 마음의 병까지 치유되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주목받는 것을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연극을 했을 만큼 남들에게 관심받는 것과 그런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무대를 좋아했습니다. 물론 남들 앞에 서서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자체도 좋아했어요”

“의경 생활을 하면서 ‘개그맨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어요. 당시 동대문경찰서에서 의경생활을 했었는데 저의 꿈을 아시던 서장님께서 대학로에 있는 ‘갈갈이패밀리’를 소개해 주셨어요. 이때부터 본격적인 개그맨의 길을 걷게 된 것이죠”

제대를 하자마자 그는 대학로로 향했다. 여기에서 그는 개그맨 지망생이었던 정형돈을 만나 함께 공채 개그맨시험을 준비했다. 그는 정형돈, 김다래, 권진영, 김병만, 김민정, 이경우 등과 함께 2001년 4월 KBS 공채 17기 개그맨으로 선발되는 쾌거를 이룬다. 제대한 지 불과 6개월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가 제대하고 개그맨이 되겠다며 대학로를 다니기 시작하자 가족들이 놀랬어요. 제가 남들 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것은 알았지만 개그맨까지 한다고 할 줄 가족들은 예상을 못했던 것이죠. 형이 단순한 객기일 것이라며 한번 지켜보자고 해서 가족들이 수긍을 했어요”

가족들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준비를 시작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개그콘서트로 유명한 KBS 공채개그맨에 덜컥 합격하고 만 것이다. 이후 개그콘서트에서 ‘잘생긴 개그맨’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됐다.

“사실 개그맨들 사이에서 제 입지는 다소 불안했어요. 생긴 것 자체가 재밌거나 재주가 많거나 타고난 끼를 가진 그들 사이에서 저는 평범한 캐릭터였던 것이죠. 물론 ‘잘생긴 개그맨’이라는 캐릭터가 도움이 될 때도 있었지만 힘들게 한 부분이 더 많았습니다. 외모 덕에 조금만 웃겨도 관객과 시청자가 크게 웃어주실 때야 좋았죠. 반대로 조금이라도 못 웃길 땐 얼굴 때문에 더 큰 비난을 받아야 했어요”

이정수는 개그콘서트의 일원으로 개그맨 생활을 할 때에는 비록 바쁘긴 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잘생긴 개그맨’이라는 굴레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었다고 토로했다. 당시 바쁜 일정 속에서 지쳐 있었던 그는 소속사와 갈등이 생기자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KBS를 떠났다. 그 당시에는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그가 개그콘서트를 뒤로 하고 찾은 곳은 대학로였다. 연극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스타가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오는 케이스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연극무대 행은 큰 화제를 모았다.

“처음 출연한 연극 무대에는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찾아왔어요. 소위 ‘인기빨’을 등에 업은 것이었죠. 고등학교 때 연극을 했지만 정식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 노력을 안 할 수가 없더군요. 정극에 맞는 연기와 발성을 새로 배워야 했어요”

이정수는 연극에 매진했다. 3~4년 동안 그가 출연한 작품은 9편에 이를 정도로 연극판에서 살았다. 물론 초반에는 연기력에 대한 질타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연극에만 몰두하고 연기 공부에 집중하다보니 불안했던 연기력도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가 연극에 매진할 수록 자연히 브라운관에서 그를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그는 그렇게 서서히 대중으로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

시청자들은 이정수를 뜻밖의 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시즌2를 통해 다시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OECD 이혼율 1·2위를 다투는 우리나라 부부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돼 높은 인기를 끈 이 드라마로 이정수는 연극을 통해 갈고 닦은 연기력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드라마인 ‘사랑과 전쟁’을 예능국에서 제작한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것 같아요. 예능국의 박기현PD가 이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저에게 함께 해보자고 제의를 했어요. 이 드라마에서 제가 주로 맡은 역은 주로 배신당하는 남편 역이었어요. 보통 이 드라마에서는 남성들이 나쁜 배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예외였던 것이죠. 아무래도 개그맨 출신이다 보니 거칠고 나쁜 역으로 나오기에 시청자들의 인식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란 제작진의 판단이었죠. 결국 저는 드라마를 하면서까지 개그맨 이미지를 벗지 못한 셈이죠”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오히려 이혼하지 않는 법에 대한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광고업에 종사중인 직장인과 결혼을 했다. 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웹드라마’라는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에 출연을 확정했다. 그는 웹드라마 ‘처음의 시작’에서 ‘사랑과 전쟁’과는 다른 캐릭터인 바람둥이 선배 종우 역을 맡았다.

“팬들과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는 모임이 있었어요. 처음엔 소규모였는데 점차 인원이 증가하면서 감당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소극장에서 저희끼리 놀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인원이 늘어나면서 이를 무대 위에 올려 관객과 함께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콘서트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팬들과 함께 하기위해 기획했던 놀이를 관객과 함께하며 콘서트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의 콘서트에서는 무대와 관객 간 장벽이 없다. 무대는 일종의 놀이터 역할을 한다.

“노래를 부르는 콘서트도, 웃음을 주는 개그콘서트도, 하다못해 토크콘서트도 모두 객석과 무대가 나뉜 구조잖아요. 하지만 놀이콘서트는 무대와 관객의 구분 없이 모두가 무대의 주인공이자 관객으로 한바탕 노는 형식입니다”

지난해 2월부터 이어져온 이 콘서트를 통해 그는 많은 관객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관객들 역시 서로 친구가 되는 등 콘서트가 사교의 장이 됐다고 설명했다.

“주로 외로운 사람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아요. 사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외로워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약자와 강자가 나타나고, 갑을관계가 나타나기도 하죠. 저희 공연장에 오신 관객들 중에는 의사도 있고 장애를 가지신 분도 있어요. 게임은 반드시 능력과 상관없는 종목으로 선정해요. 승리감과 쟁취감은 있되 패배감이 들어선 안 되기 때문이죠. 신체적 결함, 사회적 지위 이런 것 다 필요 없이 개인과 개인이 만나 함께 즐기며 어울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그는 이 콘서트가 지인이나 유명인이 콘서트에 참여를 해도 다른 관객과 똑같은 한명의 관객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설명했다. 놀이콘서트는 관객 중 단 30% 정도가 소문을 듣고 오는 신규 관객이고, 나머지 70%는 재관람객일 정도로 관객들의 공연 만족감이 높은 콘서트였다.

“어느 순간 제가 하고 있는 이 공연이 ‘굉장한 짓’이라고 느껴졌어요. 사회에 지치고, 대인관계 때문에 힘들고, 외로운 이 사회의 ‘약자’들에게 콘서트가 큰 도움이 된다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공연을 하면 할수록 이런 부분이 잘 느끼게 됐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지난 1월1일 그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이 공연을 실시했다. 한국의 진정한 놀이문화를 알려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아랍인들은 유독 알까기에서 특출한 재능을 선보였다. 이슬람계 외국인들은 종교적 신념 탓에 주체측이 준비한 떡만둣국을 먹지 못했다. 함께 먹고 놀면서 이들은 친구가 됐다. 이처럼 놀이콘서트는 인종, 종교,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큰 인기를 얻으며 제 멋대로만 살았던 그 시절 저는 스스로 대단하다고 자부했던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내 인기가 사라지자 저는 스스로가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알기는 알았지만 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남들 앞에서 내보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웃으며 말합니다. 저는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이정수는 인기가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적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자신이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암시하면서 그는 더욱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게 됐다. 그는 앞으로도 의미 있는 공연을 위해 더더욱 애쓸 것이며, 연기 활동도 꾸준히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