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문정동 로데오거리는 국내 최초 의류 상설 할인 매장들이 들어선 곳으로 알려졌다. 문정동에는 1980년대부터 아파트 단지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현대아파트와 주공아파트가 들어왔고, 1988년 4500여 세대가 훼미리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규모있는 상권이 생길만한 충분한 배후 세대를 갖게 됐다.

1990년대 초반 일부 브랜드 의류 매장이 문정동 동남로 일대에 입점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우후죽순 브랜드 의류 매장이 들어왔다. 특히 이월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리며 이곳은 대한민국 최대의 의류 전문 거리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전국 각지에 아울렛 매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문정동 로데오거리의 매출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2010년 6월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거대복합단지인 ‘가든파이브’가 개장하면서 로데오거리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특히 가든파이브의 라이프관에 입점한 이랜드의 NC백화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문정동 로데오거리에 있는 다수의 브랜드들이 NC백화점에도 입점한 까닭이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제2롯데월드몰이 개장하면서 문정동 로데오거리에는 외부에서 유입되던 고객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됐다. 주변으로 거대 유통 단지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문정동 로데오거리는 활력을 잃게 된다. 이에 문정동로데오상점가 진흥사업협동조합은 상가활성화를 위해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이들은 2011년부터 ‘문정로데오 패션거리축제’를 열어 합동세일행사, 거리패션쇼, 문화공연, 사은행사를 했다. 주말에는 최대 80%까지 세일해 상설할인매장으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이와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좀처럼 회복세로 돌아서지 못했다.

문정동에 위치한 표광정 원부동산중개사무소 대표는 “상권이 죽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임대료는 과거 높은 임대료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며 “최근에는 가게를 내놓는 상인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동남로4길’ 대로변 30평 규모 상가는 월세 400~500만원대, 보증금 5000만원 수준에 권리금은 2억원을 웃돌았다. 인근 상인의 말에 따르면 최근 로데오거리가 침체에 빠지면서 권리금은 대부분 사라진 상태지만 한번 올라간 임대료는 여전히 내려올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표 대표는 “건물주가 임대료를 내리지 않아 자연스럽게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다”며 “공실기간이 길어지면 임대료가 내려갈 수도 있지만 이미 인내심이 바닥까지 내려온 입주자들은 점포 운영을 포기하고 있는 상태다”고 설명했다.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내리지 않는 것은 인근 문정동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과 법조단지 사업이라는 호재가 있기 때문이다. 향후 이곳 상권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하고 있는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인근 상인들의 설명이었다.

원부동산중개사무소 대표는 “‘동남로’를 따라서는 대형 브랜드의 직영점이 들어와 있는데, 이곳은 30평 상가 월세가 10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며 “대부분은 직영 매장으로 판매이익보다는 기업이미지 때문에 입점해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실제 점포 중에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가까운 이면도로로 이전한 점포도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상인은 “최근까지 대로변에 있던 남성복매장 ‘Luomo’는 임대료 때문에 불과 몇 m 떨어진 곳으로 점포를 이전했다”며 “매출은 내려가는데 임대료는 떨어지지 않아 다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6개월 전 ‘동남도4길’에 입점한 ‘서광모드’ 대표는 “이곳에는 젊은 층을 위한 양복매장은 많은데, 중년층을 위한 전문매장이 없어 입점하게 됐다”면서 “현재 상황은 입점 전 기대수익의 70% 수준에 머무른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해 온 ‘지이크 피렌하이트’ 대표는 “과거에 비해 매장의 수가 많이 줄었다. 경기가 침체되며 소비가 감소한 탓도 있지만 인근 백화점 오픈 영향이 크다”며 “4년 전부터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들 역시 이 거리에 사람이 없다는 말을 종종 한다”며 “장사는 안 되는데 임대료는 내리질 않으니, 돈을 벌면 절반 이상을 임대료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답답한 심경을 표현했다.

법조단지 완공되면 먹거리·문화의 거리로 변화 기대

최근 들어 업종 변경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의류 중심이었던 이 거리에 커피숍, 네일숍 등이 늘고 있는 추세였다. 인근 부동산중개사무소 대표는 “이곳 의류 매장은 더 이상 탈출구가 없다”며 “최근 홈쇼핑, 인터넷 구매, 해외 직구 등으로 쇼핑방법이 다양해졌기 때문에 업종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며 의류업종에서 외식업종으로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5년 안에 로데오거리 인근으로 법조단지가 들어서면 그들의 외식 수요를 끌어올릴 만한 상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법조단지 내에도 식·음시설이 들어오겠지만, 향후 로데오거리가 그들의 유흥과 외식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인근의 한 상인은 “차라리 의류매장이 전부 사라지고, 먹자거리나 유흥거리로 바뀌면 더 이곳 상가가 더 활기 있을 것이다”고 말해, 향후 이곳이 지속적인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전혀 다른 상권으로 바뀔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