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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담쌓은 록커, 랩 가르치는 강사될지 몰랐죠”

“공부 담쌓은 록커, 랩 가르치는 강사될지 몰랐죠”
DJ 래피…트로트·랩 접목한 장르 개척, 성장통 앓는 학생 마음 이해

정성문 기자(mooni@skyedaily.com)

기사입력 2015-08-04 00:03:29

▲ DJ 래피(본명 김동효)는 고등학교 밴드결성을 계기로 음악과 첫 인연을 맺었다. 지방출신인 그는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위해 상경했다. 한 음악방송 랩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메이저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요즘은 힙합음악이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지만, 제가 힙합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힙합은 마니아층의 음악이었습니다. 2000년 한 음악방송사에서 개최한 프리스타일 랩 대회 전까지 한국 방속에서 힙합 관련 프로그램은 거의 찾기 힘들었죠.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방송 데뷔와 함께 메이저로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DJ 래피(본명 김동효·40)는 프리스타일 랩 대회에 출전해 우승한 힙합 뮤지션이다. 그는 9년 째 매주 금·토·일요일 ‘김창렬의 올드 스쿨’에서 ‘래피의 드라이브 뮤직’ 코너를 진행하는 DJ이자, 후배들이 가수로 데뷔할 수 있도록 곡을 써주는 작곡가이다. 그에게는 서울종합예술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타이틀도 있다.
 
그러나 힙합뮤지션 래피가 처음부터 힙합음악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들과 록밴드를 결성했다.
 
“저는 학창 시절 공부와는 담을 쌓은 학생이었습니다. 무의미하게 놀다 보니 심심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친구 5명을 모아 록밴드를 만들었습니다. 밴드를 만들면서 음악과 친해졌습니다”
 
공부와 담을 쌓은 친구들이 만든 밴드였기에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고, 학교에서는 밴드를 정식 동호회 활동으로 인정해주지도 않았다. 마땅한 연습실을 찾지 못했던 멤버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비닐하우스를 빌려 음악을 했다.
 
“공부를 싫어했던 저는 밴드 활동을 하며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밴드 생활은 재미있고,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다 제대로 된 음악을 공부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음악을 도저히 그만 둘 수 없었다. 일단 음악을 반대하는 부모님의 손에서 자유로워지는 게 필수였다. 그래서 택한 것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공부를 했던 적이 없었지만 목표를 정했더니 무엇을 할지 알겠더군요. 그 길로 바로 책을 펴고 펜을 잡았습니다. 워낙 기초가 없다보니, 무조건 교과 내용을 암기했습니다. 하루 2~3시간밖에 못 잤지만 서울에서 음악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어서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하기 위해 그는 공부에 매진했다. 타 학생보다는 늦은 출발이었지만, 다른 학생들보나 열심히 공부했다. 노력한 래피에게는 좋은 결실이 따라왔다.
 
▲ 현역 DJ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동시에 강사라는 직함도 가지고 있다. 20년 가까이 되는 음악활동 노하우를 현재는 후배에게 전수하는 데 여념이 없다. 또한, 개인 작업실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한 수업도 진행 중이다. ⓒ스카이데일리

“서울권에 있는 대학에 가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수능 시험의 결과가 나오자 담임선생님은 부산 지역의 대학에 가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공부를 시작한 목적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였던 것만큼 서울을 고집했습니다. 결국 경희대학교 섬유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대학교 입학 후, 제대로 된 음악을 하기 위해 학교 내 록밴드 동아리를 찾았다. 학교에는 가수 권인하, 변진섭을 배출한 ‘탈무드’라는 락밴드가 있었다. 즉시 오디션을 봤지만, 상황은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부푼 맘을 가지고 오디션을 봤지만, 처참하게 떨어졌습니다. 친구로부터 제가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신입생이고 또 다른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길로 술독에 빠져 1년간 방황을 했습니다”
 
경상남도 진주 출생인 그에게 사투리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록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가 모토였던 20세 래피에게 오디션 탈락은 큰 상처가 됐다. 방황 끝에 군대를 가기로 결심한 어느 날 그는 고향 지인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것은 래피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운명 바꾼 한 통의 전화…호프집 아르바이트 DJ 활동으로 음악적 역량 키워
 
“고향 지인으로부터 진주에 새로 문을 여는 호프집에서 일한 DJ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록밴드를 한 사람으로서 DJ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지인의 부탁인 데다가 군대 가기 전 용돈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고향으로 내려가 DJ를 시작했습니다”
 
‘용돈벌이’로 시작한 DJ였지만, DJ는 그의 음악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록음악에서 잠시 눈을 돌리자 새로운 음악의 그의 눈에 들어왔다. DJ를 하면서 팝·가요·힙합 등 많은 노래를 들었고, 음악적 영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 군 복무 기간에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음악방송을 꼬박꼬박 챙겨 들었다.
 
“DJ 생활을 하면서 록 이외의 음악에 눈을 떴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잠시 고향에서 DJ 일을 조금 더 한 후 학교로 복학했지요. 평소 관심 있던 힙합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 록밴드 보컬로 음악을 처음 시작한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으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향 지인으로부터 술집에서 음악을 틀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록 음악이 아닌 것은 전혀 생각지 않았던 그의 인생에 일대 변화가 찾아오는 계기였다. ⓒ스카이데일리

그는 힙합동아리를 결성하고 서울에 있는 다른 대학과 연합하며 음악활동을 지속했다. 우연히 참가한 2000년 ‘m.net 프리스타일 랩배틀’ 대회에서 초대 우승을 차지하며 메이저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우승자 출신인 그에게 음반 발매라는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그는 ‘세익스피어’라는 힙합그룹으로 데뷔했지만, 매니저에게 사기를 당하고 돈만 떼였다. 그룹 역시 변변한 활동 한 번 못한 채 끝이 났다.
 
가슴에 큰 응어리를 갖고 묵묵히 음악생활을 하던 중 대한민국 대표 DJ 신철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철이와 미애’로 유명했던 DJ 신철은 래피에게 트로트와 힙합을 접목한 새로운 장르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2004년이었습니다. DJ 신철로부터 제안을 받고 라디오 방송 게스트로 출연하게 됐습니다. 힙합과 트로트라는 쉽게 연결되지 않을 것 같았던 두 개의 장르를 묶어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청취자들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그 길로 3년간 신철 형이랑 함께 라디오를 했습니다”
 
락밴드에서 래퍼로 DJ로 끊임없이 변신에 성공한 그는 3년 전부터 서울종합예술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공부와 담을 쌓았던 그는 최근 강의하는 재미에 눈을 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공부에 담을 쌓은 제가 대학생을 가르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몇 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숨어있는 또 다른 재능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최근 한 중학교에서 강연을 하며 저와 비슷한 성장통을 겪은 아이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학생들과 눈높이에서 소통할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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