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어려울 땐 ‘우리 다 함께 같이’가 가능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사정이 좋아지면 ‘함께 가기’가 어려워진다.

고생은 함께 나누어도 성공은 함께 나누기가 어렵다. 성공하고 나면 저마다 원하는 성공의 몫이 다르고, 그를 다 합쳐보면 성공을 통해 얻은 전체의 소득보다 크기 마련이라서 으레 분란이 생긴다. 그렇기에 論功行賞(논공행상)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우리 대한민국은 2001년 국운의 秋分(추분)을 맞이하여 마침내 성공할 수 있었다.

추분이 되면 벼가 누렇게 익어가니 수확은 기정사실인 까닭이다. 이는 나라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운명 순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추분으로서 성공의 여부가 판가름 난다.

6.25 전쟁의 참화를 겪은 대한민국이었고, 1960년대엔 세계에서 가장 빈한한 대한민국이었다. 그러자 잘 살아보자는 굳은 각오로 모든 국민이 뭉쳐서 줄기찬 도전을 했고 그 결과 2001년 국운의 추분이 되자 마침내 성공이 눈앞의 일로 다가선 것이었다.

직전에 외환위기라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기초를 충실히 한 상태였던 것이다.

성공이 눈앞의 일로 다가서자 우리는 분열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내내 우리가 겉으론 이념갈등으로 시달렸지만, 사실 그건 핑계였고 허울이었고 명분에 불과했다. 그 갈등의 본질은 전 국민적 논공행상이었고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이제 더 이상의 새로운 기회가 많을 것 같지 않다는 조바심이 국민 모두의 마음속에 깔려있었으니 이로서 더욱 더 진흙탕 싸움에 말려 들어갔던 우리들이었다.

세상 싸움 중에 가장 치사하고 지저분한 싸움이 유산 상속을 놓고 벌어지는 형제간의 분쟁이듯이, 2000년대 우리 내부의 싸움은 그 치졸함에 있어 한계가 없었다.

쓰는 말이 거칠어졌고, 심지어는 섬뜩한 저주가 어지럽게 춤을 추기도 했다.

거친 풍조가 일반화되자 급기야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이른바 ‘쌩을 까기’ 시작했다. 언어가 타락한 터라 무슨 말을 해도 중요하지 않았고,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 말에 의미를 담을 수 없게 되자, 말한 이가 어느 진영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만 남았다. 우리 편이 무슨 말을 하면 무조건 옳다 하고 저편이 뭐라 하면 무조건 틀렸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는 한편에선 호화 럭셔리 풍조가 만연했고, 그 반대편에선 양극화로 인한 ‘루저’들의 신음소리가 점차 더 크게 들려왔지만 그 또한 일상사로 치부되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의 10년은 우리 대한민국의 엄연한 호시절이었다. 특히 2006년의 경우 우리의 모든 주력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전체 경기가 일대 호황을 구가했다. 국제무대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상 또한 과거와는 비할 바 없이 높아졌고 널리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내부에선 누리는 자와 누릴 수 없는 자간에 차이는 더욱 커져만 갔다.

그렇다면 누가 승자가 되어 그 10년을 누렸는가? 반대로 누가 패자가 되어 그 10년을 신음하며 지냈는가?

승자부터 얘기해보자.

전공노, 전교조가 소속된 민노총, 그리고 한노총 소속의 조합원들이 바로 2000년대의 승자였다. 달리 말하면 공무원과 생산직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일류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들도 나름 좋은 세월을 보내긴 했지만, 상시 해고와 구조 조정 체제가 가동되는 터라 마음 한편으론 늘 불안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또 하나의 승자가 있었으니 2000년대 이전에 이미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던 렌티어(rentier: 금리생활자)들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승자였다.

중산층의 아파트 투기 붐, 자영업자의 대폭적 증가, 우리 경제의 럭셔리, 이 세 가지 요인에 힘입어 재개발 아파트의 개발 차익은 물론이고 상가나 가게의 임대료는 오로지 오르기만 했으니 렌티어들이야말로 엄청난 재미를 보았다.

그렇다면 패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비정규직 노동자들, 일자리에서 내몰린 나머지 자영업자가 된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 청년 백수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들이었다.

2015년 현재 40대 이하의 젊은 층들의 직업을 보면 나이가 한 살 어려질수록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30대 이하의 청년들은 비정규직은 고사하고 아예 취업 자체가 어려워지고 말았다.

바로 그들이 2001-2011 년 사이의 敗者(패자)들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날의 기득권은 일부 재벌 오너들이 아니다. 그들이 기득권자들인 것은 맞지만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진정한 기득권이자 승자는 2000년대 이전에 부동산을 소유했던 렌티어들이고 다음으론 정규직 노동자들이며 그중에서도 전공노와 민노총, 한노총에 속한 노동자들이다.

공무원과 교사, 공기업 직원, 대기업 생산직 노조원들, 이른바 귀족 노조에 소속된 사람들인 것이다. (크게 보면 대부분의 은행원들 역시 공기업 직원이나 진배없다.)

2011년 중반으로서 우리 경제의 호시절은 끝이 났다. 2012년부터는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최근 나온 자료를 보니 제조업의 매출 증가율이 2012년부터 대폭 줄어들더니 이젠 마이너스를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정부의 돈 풀기를 통해 서비스업 분야에서 그 수치를 메우곤 있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이어질까?

그러니 호시절은 분명 끝이 난 것이다.

그렇다면 2001-2011년 사이에 승자로 올라선 사람들은 앞으로 계속 기득권을 유지해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나 호호당의 생각이다.

간격이 벌어졌으면 좁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따라서 좁혀질 것으로 본다.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출이 줄어들고, 정부의 돈 풀기와 대출 장려를 통해 유지되어 오던 부동산 가격이 어느 때가 되어 하락하면 그간의 승자는 한 순간에 사라질 것이라 본다.

상향평준화가 아니라 하향평준화 또한 벌어진 간격을 좁히는 방법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년 2016년부터 우리가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게 될 일이라 본다. 렌티어가 많아지고, 기득권이 많아지면 그 밑의 사람들이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가 없는 법이니 이 또한 세상의 자연한 이치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