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서초 예산 0.1% 돈욕심에 법정소송 혈투

[현장]빗물 처리비용 3억여원 놓고 배수진…시민들 “부자구들 왜 이러나”

안효준 기자(hja@skyedaily.com)

기사입력 2012-06-14 13:35:27

강남구와 서초구는 전국 지자체중 부자 1~2등을 다투는 곳이다. 전통적으로 강남이 아파트 시가총액은 물론 9억원 이상 고가아파트 총액에서 1위를 고수해 왔다. 하지만 올 들어 강남 재건축 시장이 얼어 붙는 등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서초가 1등을 보이며 아파트 부자순위가 역전됐다. 서초와 강남은 아파트 가구당 평균매매가가 10억원을 넘는다. 앞으로도 부자순위가 엎치락 뒤치락 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 두 지역은 또 대기업과 벤처기업 및 고급 식당과 유흥시설들이 대단히 많아 구청들은 세수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올해 세수 수입액만도 강남구청은 5600억여원, 서초구청은 3200억여원으로 계상됐다. 이들 부자구청들이 ‘빗물 처리비용’ 3억여원을 놓고 으르렁 거리며 진흙탕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비용은 강남구와 서초구 예산 대비 각각 0.053%와 0.093% 등으로 지극히 미미하다. 이웃사촌 지자체 간에 한 발짝씩 양보하면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양 구청은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며 소송에 항소로 맞서고 있다. 시민들은 부자구청들이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실소를 자아낼 리얼리티 쇼’라고 비아냥 거리고 있다. 실제로 빗물 문제는 양 구청이 합심하지 않으면 또다시 ‘강남 빗물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 상호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시설을 공동 관리하는 등의 긴밀한 협력이 없으면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지역에 진흙탕물이 넘치는 사태가 또 재연된다. 스카이데일리가 양 구청이 벌이고 있는 대립 상황과 문제점 등을 두루 현장 취재했다.

▲ 강남구와 서초구가 빗물 처리 비용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법정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서초구가 운영하는 잠원·사평 빗물펌프장의 지난해 처리량 중 대부분은 강남구에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잠원 빗물펌프장 ⓒ스카이데일리

강남구에서 서초구로 흘러 들어가는 빗물 처리 비용 부담과 관련해 두 자치구가 법정소송까지 진행하며 반목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강남구와 서초구는 서울에서도 부자 구청으로 손꼽힐 정도로 많은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 강남구의 올해 예산은 5629억9214만원이고 서초구는 3229억5109만원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문제의 빗물 처리 비용 3억원(연간) 정도로 강남구와 서초구 예산의 0.053%, 0.093%에 불과하다.

이웃해 있는 양 자치구가 전체 예산대비 지극히 소액의 비용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소송을 하고 있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서초구에 거주하는 정 모 씨는 “지역 주민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 빗물 처리에 양 구청이 협력해야 함에도 반목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소송 비용 또한 국민의 혈세로 충당될 것이기에 하루 속히 합의점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대 낮은 서초구로 강남구 빗물 유입

▲ 자료:서울시 ⓒ스카이데일리

빗물 처리 비용과 관련된 두 자치구의 다툼은 지리적인 이유에서 비롯됐다.

강남역 일대의 서초동 구역은 인근의 강남구 논현동과 역삼동에 비해 해발고도가 17m 이상 낮다. 또 서초구 반포동 고속터미널 일대도 인근 논현동과 역삼동에 비해 해발 고도가 16m 가까이 저지대다.

이 때문에 집중호우가 내릴 경우 강남구의 빗물이 서초구로 흘러 내려가고 이 빗물은 서초구에서 운영하는 잠원·사평 빗물펌프장을 통해 한강으로 방류된다.

▲ 자료:강남구청

문제는 2곳의 빗물펌프장이 처리하는 대부분의 빗물이 강남구에서 흘러내려 온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강남구에서 서초구로 유입된 빗물양은 총 107만8053t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서초구에서 유입된 빗물양인 20만2787t에 비해 5배가 넘는 수치이다.

강남구 압구정동 근방의 물이 밀려드는 잠원 빗물펌프장은 전체 처리량의 82%가 강남구에서 흘러온 물이며, 강남구 논현동과 역삼동의 물이 유입되는 사평 빗물펌프장에선 88.3%에 달한다.

잠원 빗물펌프장 김영승 담당자는 스카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관리를 서초구에서 하고 있지만 이 곳에서 처리하는 빗물의 대부분은 강남구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이다”고 밝혔다.

1심서 서초구청 승소…강남구청 항소장 제출

서초구는 강남구에 빗물 처리 비용 분담을 요구했고, 지난 2007년 1월 두 구청은 ‘빗물펌프장 유지관리비용 분담에 관한 협약서’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강남구는 유역면적 기준으로 인건비와 전기료, 제세공과금 및 시설물 보수비용 등에 대해 2007년 30%, 2008년 60% 등으로 비율을 높인 뒤 2009년부터는 100%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 2010년 강남구의회가 자신들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협약 무효를 주장했고 강남구도 이를 계기로 비용 지급을 거부하고 나섰다.

이에 서초구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까지 심리가 진행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24일 “서초구청의 분담금 청구는 이유가 있다”며 서초구청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2010년도 빗물 비용 3억4400만원과 지난해 비용 2억8500만원을 강남구가 서초구에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자 강남구는 이번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지난 8일 항소장을 제출한 상황이다.

▲ 자료:강남구청

이와 관련, 강남구청 치수방재과 이춘한 기전팀장은 “강남구가 수로를 따로 만드는 등 인위적으로 빗물이 흐르게 했다면 당연히 빗물 처리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맞지만 자연적인 흐름에 따라 서초구로 유입되는 것이다”며 “빗물펌프장의 위치도 서울시가 합리적인 결정에 따라 정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울시 111개소 빗물펌프장 중 18개소는 타구에서 빗물이 유입되고 있고 14개 구청은 배수유역을 공유하고 있다”며 “비용분담을 요구한 전례가 지금까지 서울시에서 없었기 때문에 서초구의 요구는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은상 서초구 재난치수과장은 “서초구가 강남구에 비해 저지대라는 이유로 강남구의 빗물을 모두 처리하면서 비용 한 푼 받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서초구 재난치수과 김재영 하수기전팀장은 “배수유역을 공유하고 있는 타 자치구들의 빗물 유입 비율은 많아야 60%정도이지만 잠원과 사평의 경우 90%에 육박한다”며 “재산세공동과세 등으로 인해 예산이 많이 줄어든 만큼 빗물 처리에 있어 강남구가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강남구와 서초구는 향후 2심 판결에서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다시 항소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두 구청간의 법정 공방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