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20년 이상 ‘잃어버린 세월’을 살아오면서 30년을 넘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4년 중국 경제 상황을 ‘신창타이(新常態)’로 진단하면서 개혁의 불길을 당기고 있다. 부패와의 전쟁을 시작으로 공격적인 공급 개혁으로 위기 돌파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고도성장의 시기는 이미 물 건너갔고, 새로운 패러다임만이 중국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어떤가? 위기가 이미 산 중턱에 걸쳐 있는데도 이를 감지하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다고 하면 좀 지나친 표현일까.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을 두고 어느 외국 경제 전문가는 ‘뜨거워지는 냄비 속의 개구리’라는 말로 압축했다.

이 냄비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결국 개구리는 처절하게 죽고 만다. 최근 세계 각국은 글로벌 디플레라는 위기 앞에서 제 살길 찾기에 바쁜, 이른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점입가경의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위기 탈출을 위해 남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 처절한 경쟁에서 강하게 살아남은 자만이 기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남의 위기는 잘 보는 반면 정작 우리의 위기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게 허점이다. 오히려 애써 외면하고 태연한 척 하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디플레는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이 글로벌 공급 라인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생겨났다. 수년 전부터 예고되어 있는 시나리오다. 결국 올 것이 온 셈이다.

우리가 이제 겨우 서두르고 있는 조선 산업의 구조 조정만 해도 일본은 10년, 중국은 5년 전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지난 2008년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구조적 후퇴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경쟁국들은 구조 개혁이라는 칼날을 거침없이 빼들었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서바이벌 경쟁’에 돌입했다.

예고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를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인재(人災)로 볼 수밖에 없다. 막연히 잘 될 것이라는 요행수만 믿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더 큰 재앙이 다가온다. 재앙의 확대재생산 이치는 냉혹한 현실이다.

과거에는 일본만 부지런히 따라가면 되었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군함이 턱밑까지 추격해 오고 있다. 이런 마당에 더 이상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만 고집한다면, 우리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주소이다.

1960년대 스웨덴은 조선 강국이었다. 수도인 스톡홀름으로부터 500Km 떨어진 해안 도시 말뫼(Malmö)는 당시 세계 최강 조선업체인 ‘코쿰스(Kockums)'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말뫼는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로 풍요가 넘쳤다. 하지만 1980년대에서 한국이 신흥 조선 강국으로 한국이 부상하면서 이 도시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선박 수주 물량이 전무해지면서 1986년 코쿰스도 결국 폐업을 하고 말았다.

그 후 2003년 말뫼 조선소의 상징물인 ‘코쿰스 크레인’이 대한민국의 울산으로 옮겨질 때 스웨덴 국영방송은 말뫼 현장에서 생중계를 하며 장송곡을 흘려보내기까지 했다. 그 비장함과 숙연함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코쿰스 크레인’은 한국에서는 ‘골리앗 크레인'이라 불리며 울산이라는 도시의 상징물이 되었다. 그리고 울산을 가장 풍족하고 윤택한 도시로 변신시켰다. 그러나 2016년 지금, 울산이 스웨덴의 말뫼와 같은 비슷한 도시로 처지로 전락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곰곰이 따지고 보면 이미 예고된 시나리오다. 말뫼는 현재 저탄소 녹색도시로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유럽에서 가장 친환경적이면서 살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했다. 이제 울산이 변화의 출발선상에 서 있다.

가계나 기업, 심지어 국가도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오늘의 성공은 영원할 수 없으며, 그래서 늘 변신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변신의 타이밍이다.

소위 말하는 골든 타임을 놓친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구조 조정을 통한 위기 극복은, 다소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마지막 기회이다. 이 마저 놓친다면 대한민국호(號)의 미래는 없다.

이런 시기가 닥칠 때마다 늘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건 잘 나가던 시절에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고 흥청망청했다는 점이다.

임직원은 물론이고 전직 관료 등이 돈 잔치를 하고, 국책은행은 배당수익을 챙기는 등 방만한 경영을 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국민의 세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후안무치한 도덕적 해이와 무사안일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한심하다. 냉정한 잣대로 신속, 과감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고 좀더 정교하면서 긴 호흡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를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무소불위, 파죽지세로 계속 우리를 위협할 터이다. 이런 중국과 규모의 경쟁을 벌리는 건 절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특화하면서, 중국에게 우리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무모하지 않고 영리해야 구조조정 이후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만들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