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평 옷가게 박성수 신화 ‘불도저식 자충수’ 촉각

유동성 위기 원인에 ‘총수 책임론’…SPA브랜드 집착 ‘시장선 싸늘한 반응’

유은주 기자(dwdwdw0720@skyedaily.com)

기사입력 2016-09-07 00:07:23

패션, 유통업계의 강자인 이랜드그룹의 시작은 상당히 단출했다. 많은 기업들이 창업초기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이랜드그룹의 시작은 더욱 그랬다. 창업주 박성수 회장은 지병인 근육무력증으로 일반 회사 입사가 어렵게 되자 28세의 나이로 이화여자대학교 앞에서 ‘잉글런드’라는 보세의류 매장을 열었다. 여대 앞의 이 작은 보세매장은 훗날 자산규모만 약 7조5000억원이 넘는 공룡패션그룹의 모태가 된다. 박 회장은 남다른 성실함과 뛰어난 감각을 바탕으로 매장을 키웠다. 1986년 ‘이랜드’라는 이름의 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한 후 패션 관련 브랜드를 연이어 출시하며 성공을 일궈냈다. 1990년대 후반 IMF 위환위기로 약간의 부침을 겪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해 냈다. 2000년대 이후에는 핵심역량을 패션과 유통사업에 집중, 관련 기업 인수를 통해 몸집을 불렸다. 어느 정도 사업이 안정된 후로는 패션·유통 외에 다른 사업 분야에도 속속 진출했고, 그 결과 식품·건설·유통·호텔·레저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대기업 집단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이랜드의 위상이 한 풀 꺾였다는 평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위기설까지 나돌고 있다. 덩치불리기에 급급한 무리한 인수합병이 결국 재무구조 악화라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왔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런 가운데 이랜드그룹의 주력사업이자 뿌리인 패션업 마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와 그룹 안팎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재계와 업계 일각에서는 ‘박성수 위기론’까지 나돌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이랜드그룹 패션사업의 현 실태와 이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 등을 취재했다.

▲ 이랜드그룹이 재무위기론에 휩싸인 가운데 주력사업인 패션사업에서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우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재계에서는 패션업의 성공신화로 불리는 박성수 이랜드 그룹 회장의 위기설까지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이랜드월드 가산사옥 [사진= 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최근 이랜드그룹이 주력사업인 패션사업 부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그룹 안팎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한 때 ‘패션명가’로 불리기까지 했던 위상은 그 위세가 꺾였다는 게 그룹 안팎의 시선이다. 나아가 이랜드그룹의 창업주이자 패션업 성공신화로 불리는 박성수 회장의 ‘위기론’까지 나돌고 있다.

6일 재계 및 이랜드그룹 등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이랜드그룹은 패션사업 역량 강화를 신규 브랜드 론칭 등 사업 확장에 열을 올렸지만 최근 들어 그 결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규모만 커졌을 뿐 막상 실효성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단적인 예로 패션사업이 주력인 이랜드월드는 매출규모가 증가했지만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뒷걸음질 쳤다.

이랜드그룹은 올해 대기업 집단 지정기준이 10조원(자산총액)으로 상향조정되면서 대기업집단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이랜드의 자산총액은 약 7조5300억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력 사업인 패션사업 마저 고전을 면치 못하자 우려의 목소리는 특히 더한 상황이다.

이에 2평 남짓한 여대 앞 보세매장을 지금의 이랜드그룹으로 일궈낸 박성수 회장에 대한 위기론이 나돌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불러일으킨 데 대한 책임을 박 회장에게 전가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몇 해 전 박 회장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 부문 SPA(제조·유통 일괄형)브랜드를 만들라’는 지시가 오히려 그룹에 독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패션명가 이랜드그룹, 패션사업 부진에 주력 계열사 유동성 위기까지

▲ 자료: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2016년 6월 30일 기준 [도표=최은숙] ⓒ스카이데일리

패션업계 및 이랜드그룹 등에 따르면 이랜드그룹 내 패션사업을 맡고 있는 계열사 이랜드월드는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이랜드월드의 유동부채(1년 내 상환해야 할 채무)와 단기차입금 등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들 모두 빠른 시일 내 이랜드월드가 갚아야 할 부채이라는 점에서 유동성 위기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3년간 이랜드월드(연결)의 유동부채, 단기차입금 및 사채 추이는 △2013년 3조5039억원, 2조2706억원 △2014년 3조8825억원, 2조7566억원 △2015년 4조4328억원, 3조2297억원 등을 각각 나타냈다. 이랜드월드의 유동성 위기는 결국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한국기업평가는 이랜드월드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BBB로 하향조정했다.

현재 이랜드그룹 안팎에서는 이랜드월드 재무건전성 악화 이유로 ‘무리한 확장’이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다. 기존의 브랜드 강화 대신 빚을 내서 신규브랜드 출시를 단행한 경영전략이 오히려 패션사업 전체의 경쟁력 저하를 불러왔고, 결국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는 게 관련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자료: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스카이데일리

실제로 최근 이랜드월드 실적(연결)을 살펴 보면 매출액은 커진 반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수익성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셈이다. 실적(연결) 추이는 △2014년 매출액 6조7178억원 영업이익 6558억원, 당기순이익 1661억원 △2015년 매출액 7조1070억원, 영업이익 4192억원, 당기순이익 996억원 △2016년 상반기 매출액 3조7283억원, 영업이익 2482억원, 당기순이익 273억원 등이었다.

SPA 인기하락에도 신규브랜드 출시 박차…성과 부진에 ‘박성수 책임론’ 부상

패션업계 및 이랜드그룹 등에 따르면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국내 패션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SPA(자가상표부착방식, 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브랜드의 위세가 최근 들어 한 풀 꺾인 모습이다. 가팔랐던 성장 곡선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완만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사실상 성장의 정체기를 겪고 있다는 게 패션업계의 시선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랜드월드는 꾸준히 SPA브랜드를 론칭해 왔다. 의류 뿐만 아니라 신발, 쥬얼리 등 잡화로까지 꾸준히 그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이랜드월드는 신규 출시한 브랜드를 통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소비자들의 반응 역시 미온적인 것으로 스카이데일리 취재 결과 파악됐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행보를 최근 이랜드월드의 유동성 위기 및 실적 저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랜드월드의 위기는 무리한 신규사업 진출을 위한 자금차입에서 비롯됐다는 게 이랜드그룹 안팎의 여론이다.

▲ 자료: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스카이데일리

박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방침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그룹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랜드월드가 성장 정체기에 접어든 SPA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출시한 게 박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회장은 몇 해 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 부문 SPA 브랜드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이랜드월드 관계자는 “4조가 넘는 유동부채를 1년안에 갚아야 한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부채는 대부분 연장·연기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해석되는 부분이 있다”며 “적자를 낸 것도 아니고 사업을 하다보면 빚을 지게 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신사업으로 패션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며 “그동안 과도한 수익을 창출해 왔기 때문에 현재 수익성이 조금 악화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봤을 때 정상적인 수준의 이익을 기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디자인만 비슷한 저품질의 제품이라는 느낌 지울 수 없다” 아쉬움 섞인 목소리

스카이데일리는 이랜드월드 SPA브랜드 중 최근 3년 내에 출시된 신규브랜드 라템(주얼리), 루켄(아웃도어), 슈펜(신발)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직접 들어 봤다. 신규브랜드들에 대한 대다수 고객들의 반응은 미온적인 것으로 파악됐다.

소비자들 중 상당수는 이들 브랜드에 대해 가격은 만족하지만 품질이나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 뒤쳐져 구매가 꺼려진다는 견해를 보였다. 주부 김현아(36)씨는 “‘슈펜’은 가격이 싸긴 하지만 디자인이 너무 무난하고 품목도 다양하지 않다”며 “‘라템’은 처음 들어봤다. 또 다른 주얼리 브랜드 ‘클루’는 20대 때 저렴한 맛에 종종 샀지만 지금은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슈펜 매장에서 모자를 고르고 있던 중학생 안수빈(14)·송유미(14)씨는 “신발의 경우 아무래도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아디다스나 나이키에서 주로 사게 된다”며 “슈펜에서는 가끔 모자나 가방 등을 구매할 뿐이다”고 밝혔다.

▲ 최근 신규 론칭된 브랜드 중 슈펜의 경우 인지도가 높은 편이었지만 루켄, 라템 등의 브랜드는 잘 알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사진은 왼쪽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슈펜, 루켄, 유솔, NC백화점 강서점 유아동복 층 전경, 라템, 슈펜 매장. ⓒ스카이데일리

대학생 한수지(21)씨는 슈펜의 품질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가격은 저렴한 데 신으면 발이 좀 아프다”며 “라템은 알고 있지만 루켄은 처음 들어본다”고 답했다. 직장인 손선영(31)씨 역시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그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그만큼 착화감이 별로라 신어보고 구매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대가 있는 직장인들이 구매하기에는 디자인이나 가성비 측면에서 부족하다”며 “속옷이든 의류든 이랜드만의 올드한(고전적인) 이미지가 있어 그냥 싼 맛에 사는 것 외에 특별히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NC백화점 강서점 이용객 노금주(49)씨는 가성비와 함께 디자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명품이나 기존 브랜드 제품의 유행을 카피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은 좋아할 수 있겠으나 디자인만 비슷한 저품질의 제품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루켄의 경우 아웃도어브랜드이다 보니 아무래도 품질이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다”며 “기존 아웃도어 브랜드 중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는 상황에서 가격이 저렴하더라도 성능이 보장되지 않으면 구매가 꺼려지는 편이다”고 덧붙였다.

주얼리 브랜드 라템의 한 매장 직원은 “저가브랜드다 보니 고객층이 10대~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층에 국한돼 있어 아무래도 매출 확대에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며 “더욱이 타 브랜드 제품과 달리 주력제품이라고 내세울 만한 제품이 없어 고객유치에 어려움이 뒤따른다”고 귀띔했다.

한편 지난 2011년 SPA브랜드로 전환된 유아브랜드 유솔은 2001년 시험적으로 4년간 운영한 뒤 2005년 정식 론칭된 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에게 낮은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SPA브랜드 전략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소비자들의 반응을 통해 유추할 수 있었다.

NC백화점 강서점 유아용품 층에서 만난 이미정(가명·40)·박수진(가명·37)씨는 해당 층에 적지 않은 규모의 유솔 매장이 버젓이 입점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솔이란 브랜드에 대해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또 같은 층의 다른 유아용품 브랜드 매장을 이용하고 있던 권미진(39)씨 역시 “처음 듣는 브랜드다”며 “접하는 브랜드가 많아지면 아무래도 브랜드 인지도에 따라 매장을 선택하게 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