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벤처신화’에 무대출 6천억 빌딩 세워

벤처신화에 6천억 빌딩 세워
[테헤란로의 빌딩들⑱]-엔씨소프트 사옥

이창호 기자(lch9856@skyedaily.com)

기사입력 2012-09-13 00:02:21

국내 게임업체의 대표 주자는 넥슨과 엔씨소프트다. 이들 두 회사가 최근 한 지붕을 틀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가 됐지만 경영권은 엔씨 김택진 대표가 행사하면서 ‘공동경영’의 형태를 보여 전 세계 게임업체들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넥슨의 창업주 김정주 대표와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는 서울대 선후배 사이로 사업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넥슨이 그래픽 온라인 게임으로 대박을 일궜다면 엔씨소프트는 세계 최초로 대규모 온라인 롤프레잉게임(MMO RPG)의 시대를 열었다. 특히 ‘리니지’는 누적 회원만 3000만명에 달할 정도로 국민게임으로 등극해 게임신화를 이룬 대표작이다. 지난 1998년 9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리니지로 엔씨소프트의 김택진은 20대 말의 젊은 나이에 일약 돈방석에 앉았다. 테헤란로에 임대 사무실을 쓰며 옮겨다니던 엔씨소프트는 광풍에 가까운 리니지 게임의 국민적 열기에 힘입어 막대한 부를 쌓아 올려 고층빌딩의 사옥을 갖게 됐다. 엔씨소프트는 2005년 삼성역 인근에 675평의 땅을 사들인 뒤 2008년 사옥을 올렸다. 기하학적 외관의 모양으로 지어져 눈에 띄는 이 건물의 시세는 약 6000억원대에 이른다는 것이 빌딩매매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등기부상 ‘을구’가 깨끗해 대출이 없는 이례적인 빌딩이라는 점에서 자산가치가 대단하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010년 판교 신사옥으로 본사를 이전할 계획을 발표 했었다. 하지만 엔씨 관계자는 “판교사옥과 별도로 테헤란로 사옥을 계속 쓸 계획이다”고 밝혔다. 국내 게임산업의 선두주자 메카역할을 계속하게 될 엔씨소프트 테헤란로 사옥의 이모저모를 취재했다.

▲ 테헤란로에 위치한 엔씨소프트 사옥. 포스코 사거리에서 삼성역 방면을 바라보면 왼쪽에 위치한 건물이다. 등기부상의 건물명은 엔씨소프트알앤디센터로 올라 있다. ⓒ스카이데일리

테헤란로는 90년대 중반 정보통신, 소프트웨어 벤처기업들이 자리하면서 IT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안철수연구소, 두루넷, 네띠앙 등 초기 IT산업의 화려한 역사가 숨쉬는 지역이다.

2000년대 이후 IT기업들이 떠난 자리에 금융회사가 들어오면서 성격이 변했지만 아직 이 지역을 지키고 있는 IT기업들도 있다.

게임업계의 공룡 엔씨소프트의 본사도 바로 이곳 테헤란로에 자리하고 있다.

엔씨의 사옥은 직원 20명으로 출발한 벤처기업이 최대 직원수 2800여명까지 성장한 게임계의 공룡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 왼쪽에서 세번째, 독특한 문양이 눈에 들어오는 빌딩이 엔씨소프트 사옥이다.

테헤란로의 풍광이 바뀐 것처럼 한국 IT산업도 변모했다는 사실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

2008년 준공, 엔씨소프트 신화의 상징

강남구 삼성동 테헤란로 509에 있는 엔씨소프트 사옥은 포스코 사거리에서 삼성역을 바라보면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벌집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디자인이 시선을 끈다.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 연구개발 업무 환경에 맞추어 직사광선을 차단하면서도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적정 간격을 추출해 건물 외벽을 층간 구분 없이 처리한 결과다.

이 건물은 지하 7층, 지상 15층 규모로 2233㎡(675.5평)의 대지에 자리잡고 있다. 연면적은 3만912.95㎡(9351.2평)에 달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엔씨 사옥의 건물가치를 6000억원대로 추산한다.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는 엔씨소프트 회사로 등기돼 있다.

엔씨소프트 사옥은 신축 후 소유권 이외의 다른 권리(을구)가 설정된 적이 한번도 없는 것이 눈에 뜨인다. 토지는 엔씨가 매입하기 전 근저당권이 설정된 적 있으나 엔씨가 매입한 직후 말소돼 현재는 아무런 기록이 없어 무대출 상태다.

엔씨소프트의 지배구조

엔씨소프트의 최대주주는 주식회사 넥슨이다. 넥슨의 일본지사로 설립됐다가 지금은 본사로 승격돼 흔히 넥슨재팬이라 불린다. 엔씨소프트의 지분 14.7%를 소유해 최대주주다. 엔씨의 김택진 대표는 9.9%의 지분을 보유해 2주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넥슨재팬은 엔씨소프트 외에 넥슨코리아와 넥슨계열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회사 격이다. 이 넥슨재팬의 최대주주는 NXC로 65.24%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NXC를 통칭 넥슨홀딩스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NXC는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넥슨계열사의 경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이 NXC의 대주주가 넥슨의 창업주이자 NXC의 대표인 김정주 대표다. 결국 엔씨소프트는 지분매각을 통해 김정주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넥슨 계열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 자료: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테헤란로 사옥은 2008년 준공돼 5년째 엔씨의 본사로 사용되고 있다. 엔씨가 본사 신축에 나선 것은 지난 2005년이다.

▲ 게임 시장은 리니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리니지 이전은 패키지 게임의 시대였고 리니지 이후는 온라인게임이 시장이 대세가 된다.

1998년 리니지를 런칭해 대성공을 거둔 엔씨소프트는 2003년 리니지2 역시 성공을 거뒀다.

회사가 크게 성장하면서 직원도 대폭 늘어나 2008년 테헤란로 신사옥 입주 시기에는 1700여명에 달했다. 테헤란로 4개 건물을 부분적으로 임대해 사용했는데 업무효율을 위해 한 공간에 모일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2005년 테헤란로에 540억원을 들여 대지를 매입하고 사옥을 신축하게 된다.

건축비도 500억원대가 들어 사옥신축에 총 1100억원을 들였다. 2008년 준공된 사옥의 정식명칭은 엔씨소프트 알앤디센터다. 엔씨소프트의 경쟁력은 연구기능에 있다는 김택진 회장의 의지가 담겼다.

엔씨, 판교시대 열어도 테헤란로 사옥 사용

엔씨는 2010년 판교에 신사옥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테헤란로 사옥의 향방에 큰 관심이 모였으나 엔씨 측은 사용처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아 왔다.

스카이데일리의 취재결과 엔씨소프트는 판교신사옥을 건립한 후에도 테헤란로 사옥을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테헤란로 사옥에 대해 “사용처에 대해 특별히 결정된 사항은 없다”면서 “현재도 4개 빌딩에 흩어져 있는 사무실들이 있다. 이들 직원들이 사옥으로 옮겨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판교 본사를 사용하기 시작하더라도 테헤란로 사옥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엔씨가 승승장구할 때만 해도 판교 신사옥 건립은 엔씨와 게임산업의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최근 엔씨에 대해 우울한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김택진 대표는 지난 6월 초 자신의 지분 14.7%를 경쟁 게임사 넥슨에 매각하고 최대주주 자리에서 2위로 내려왔다. 경쟁사인 넥슨이 엔씨의 최대주주에 등극하자 엔씨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또 6월 말에는 직원들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신청받으면서 위기설이 확산됐다. 회사는 희망퇴직자를 800명 수준으로 예측했으나 신청자가 1000명에 육박했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연매출 6000억원에 이르는 게임공룡 엔씨도 전체 직원의 30%가 넘는 1000명이 일시에 퇴직한다면 회사가 유지될 수 없다.

지분을 인수한 넥슨과의 조직통합이 예정돼 있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2012년 하반기를 시작한 키워드는 엔씨의 낙조였다.

하지만 실제 희망퇴직자는 400여명 수준임이 밝혀졌다. 최소한 올해 안에는 인원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엔씨 측의 발표도 나왔다.

▲ 테헤란로 쪽으로 난 정문이 기능과 공간효율을 생각한 모양새라면 건물 뒤쪽에 있는 후문은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직 엔씨의 직원은 2000명이 넘고 테헤란로 사옥은 희망퇴직 후에도 여전히 붐비고 있다.

지분을 인수한 넥슨은 엔씨에 임원을 파견하거나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은 채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문과는 달리 엔씨의 낙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테헤란로 사옥과 마찬가지로 판교의 신사옥 이름도 알앤디센터다. 김택진 회장의 지향점은 여전히 기술력을 통한 승부에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과거의 게임시장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시스템으로 승부를 봤다면 PC에 기반한 온라인게임은 수년의 개발기간과 수백억원의 자금으로 승부를 보는 시장이 됐다.

이런 트렌드를 선도한 것이 바로 엔씨이며, 리니지 시리즈와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 등 수많은 히트작들이 시장의 방향성을 증명한다.

스케일이 크면서 개성도 뚜렷한 테헤란로 사옥은 엔씨의 기업철학과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