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남전축 추억에 1조 경제범죄 ‘애환의 빌딩’

아남전축 추억에 1조 범죄 '애환의 빌딩'
[테헤란로의 빌딩들<39>]-아남타워…아남그룹·씨앤그룹 주인들 흥망성쇠

이창호 기자(lch9856@skyedaily.com)

기사입력 2013-01-21 00:03:36

테헤란로 르네상스호텔사거리에서 선릉역 방면으로 조금 가면 볼 수 있는 20층짜리 오피스텔이 있다. 정식 이름은 ‘아남타워현대홈오피스텔’이다. 8층부터 20층까지는 오피스텔이며 1층부터 7층까지는 일반 사무실 빌딩과 같은 다소 특이한 구조다. 오피스텔은 개별 등기돼 있는 반면 1층부터 7층 사이는 층별 등기돼 있다. 준공당시인 2000년의 1~7층 소유주는 아남건설이었다. 아남이라는 이름은 왠지 건설업계에서는 낯설지만 반도체나 전축업계에서는 무척 유명한 이름이다. 바로 고 김향수 회장이 창업한 아남그룹이 아남건설을 계열사로 설립한 곳이다. 한국 최초의 반도체 생산, 최초의 컬러TV 생산 등으로 역사에 남은 아남그룹은 1986년 아남건설을 세웠다. 2000년 부도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주력회사인 아남전자는 독자생존의 길을 가게 되지만 나머지 계열사들은 모두 다른 기업에 매각된다. 아남건설 역시 법정관리 끝에 2005년 C&우방에 매각된다. 등기부등본에 남아있던 아남건설에 빨간 줄이 그어진 것은 사명이 C&우방이엔씨로 바뀐 2006년이다. C&우방이엔씨를 계열사로 둔 씨앤그룹의 임병석 회장은 1조원이 넘는 사기대출·횡령·배임 등의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구랍 14일(2012년 12월 14일) 징역 5년이 최종 확정됐다. 아남타워는 주인들이 바뀌는 과정 속에서 기업 역사에 오랫동안 남을 아남그룹과 씨앤그룹의 흥망성쇠라는 극과 극의 애환을 담은 빌딩이 됐다. 특히 가정용 오디오의 상징이었던 ‘아남전축’의 추억까지 담은 상징으로 남았다. 스카이데일리가 오피스텔과 오피스를 겸한 빌딩이면서 우리의 현대 기업역사를 똑똑히 목도하게 하는 아남타워를 취재했다.

▲ 아남타워가 있는 르네상스호텔 사거리 일대 약도(위)와 아남타워 정면 모습. 아남그룹과 씨앤그룹이라는 주인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빌딩이 됐다. ⓒ스카이데일리 <그림=최은숙>

르네상스호텔 사거리에서 선릉역 방면으로 200여m 가다보면 빽빽이 서 있는 높은 빌딩들 중 한 곳이 시선을 끈다.

최근에 지은 빌딩들이 하나같이 대형창문을 연결한 듯한 전면 외관을 가진데 반해 이 빌딩은 창 하나하나의 크기가 작고 연결돼 있지도 않다.

건물 좌우에도 작은 창문이 하나하나 떨어져 있는 모습은 보면 단박에 이 건물이 오피스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건물의 정식 명칭은 ‘아남타워현대홈오피스텔’이다. 현대산업개발이 시공을 맡아 건물 이름에 현대가 들어간 것이다.

건물 앞에는 ‘아남타워’라는 이름이 선명히 박혀 있다.

‘아남’이라는 이름하면 왠지 뒤에 단어 하나가 더 붙어야 할 것 같다. 한국 전축계에서 이름을 날린 ‘아남 전축’이 불현듯 떠오른다. 중장년 세대들에게 레크드(LP) 판을 돌려 음악을 들었던 아남의 전축은 아련한 추억이다.

가정용 오디오의 상징이었던 아남전축은 소유하는 것 자체만으로 자긍심을 느낄 정도로 인기 제품이었다.

반도체에 컬러TV까지 최초 신화 아남의 해체사

아남타워는 지상 20층 지하 6층의 오피스텔 빌딩이다. 건물 전체의 연면적은 44083.8㎡(13335.3평)이며, 토지면적은 2799㎡(846.7평)에 달한다.

8층부터 20층까지는 오피스텔이며, 1층부터 7층까지는 일반 오피스(사무실) 빌딩과 같은 구조다.

▲ 건물 8층부터 20층까지는 오피스텔로 지어졌다. 1~7층은 일반 오피스(사무실) 건물과 유사해 매매도 함께 이뤄지는 모습을 보였다. ⓒ스카이데일리

오피스텔로 분양된 대부분의 공간들은 개별 등기됐으나 지하1층과 건물의 1층부터 7층 사이는 2000년 준공 당시 건물의 시행사였던 아남건설이 소유한 것으로 등기부등본에 나타나 있다.

아남타워 1층부터 7층 사이의 등기는 2000년 3월 이뤄졌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4월 아남건설의 회사정리계획이 법원의 인가를 받는다.

아남건설의 모기업인 아남그룹은 이미 1999년 법정관리를 신청해 법원의 심사를 받는 과정에 있었다.

아남그룹은 고 김향수 회장이 1956년 설립한 아남산업(이후 아남반도체로 사명 변경)이 모태다. 세계기업사전에 따르면 김 회장은 반도체 조립회사인 아남산업을 설립해 반도체사업을 개척하기 시작했으며, 1968년에는 반도체제품 제조와 판매를 사업목적에 추가하고 반도체 사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974년 국내 최초로 컬러TV를 생산하는 등 시대를 앞서나갔다.

계열사인 아남건설은 1986년 설립됐으며 아파트 건설 등을 전국에서 활발하게 벌여왔다.

아남은 90년대 들어서도 계속해서 개척정신을 발휘해 왔다. 1996년 반도체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도 했는데, 이후 1997년 경제위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그룹 전체가 큰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1999년 부도와 함께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된다.

이때 계열사들이 나눠져 그룹의 모태였던 아남반도체는 동부그룹에 매각되고, 핵심기업이던 아남전자만 2002년부터 독자생존의 길을 걷는다.

▲ 아남타워와 주변건물 전경.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 건물이 아남타워다. ⓒ스카이데일리

아남건설 역시 2000년 회사정리계획 인가에 따라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이후 2005년 C&우방이 아남건설을 인수하면서 2006년 3월 회사정리절차가 종결된다.

건물의 등기부에 남아있는 아남건설의 이름에 붉은 줄이 그어진 것은 이로부터 6개월 후인 2006년 9월이다. C&우방이 인수한 아남건설의 이름을 주식회사 C&우방이엔씨로 바꾼 결과다.

아남건설 사들인 씨앤그룹, 반짝 대기업 성공

C&우방에 인수된지 1년여 만인 2006년, C&우방이엔씨는 회사 소유의 아남타워 1~7층을 부동산 투자펀드에 매각한다. 2012년 10월 또 다른 부동산 펀드가 건물을 사들인 상태로, 현재 건물 소유주는 우리은행으로 등기돼 있다.

아남건설을 인수한 C&우방은 아남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흥미로운 회사다.

▲ 아남건설을 인수한 씨앤그룹의 임병석 회장은 1조원대라는 초유의 규모로 대출사기 및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뒤 구랍 14일 대법원 환송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사진은 2010년 구속된 상태에서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오고 있는 임병석 회장(가운데)의 모습. <사진=뉴시스>

C&우방의 전신은 1978년 설립된 우방주택이다. 대구지역에 근거를 두고 아파트와 빌딩, 지하철, 놀이동산 등을 건설하며 지역 건설업체 중 선도적 지위를 보였다.

하지만 IMF 이후 경영난에 시달리다 2000년 부도 후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이 우방을 씨앤그룹이 사들여 이름을 C&우방으로 바꾼 것이다.

씨앤그룹의 모태는 세븐마운틴해운이라는 해운회사다. 1990년 해운업에 뛰어든 임병석 회장은 2002년 법정관리 중이던 선박회사를 인수하면서 세븐마운틴해운을 그룹사로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주로 법정관리중인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세븐마운틴의 성장은 2000년대 중반 M&A계의 신화처럼 알려졌다.

2004년 우방을 인수한 임 회장은 2006년 그룹명을 C&(씨앤)으로 바꿨으며 아남건설을 비롯해 다양한 회사들을 계속해서 인수하며 회사를 키워나간다.

하지만 임 회장의 야심과 달리 건설경기가 악화되면서 C&우방은 자생력을 잃어갔고, 2008년 신청한 워크아웃을 채권단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C&우방은 또다시 새로운 주인을 찾아 시장에 나오게 된다. 결국 2011년 SM그룹이 인수해 이름을 다시 (주)우방으로 바꾼 상태다.

임 회장은 이후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수사 과정에서 정치권 로비 의혹까지 밝혀졌다. 임 회장은 1조원이 넘는 사기대출·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임 회장은 수사과정에서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항변했으나 서울고등법원은 구랍 14일(2012년 12월 14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이 사건에 대해 형법상 배임죄로 징역 5년(검찰 징역 22년 6월 구형, 1심 10년, 2심 7년)으로 감형·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