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국가의 품격과 위상, 그리고 도덕성

지구촌 모두 생존 위해 안간힘…우리만 개인·집단이기에 함몰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기사입력 2019-06-30 19:17:18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권에서 새어 나오는 웃어넘기지 못할 코미디를 보면서 역겹다 못해 이제 현기증까지 날 정도다. 여와 야를 막론하고 막말과 추태 퍼레이드로 상대를 헐뜯기에 바쁘다. 민초들이 보기에는 하나같이 도긴개긴이다. 갈수록 국가의 품격은 더 떨어지다 못해 마침내 실종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게 나라냐’라고 비아냥거리는 시중의 목소리가 한층 더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갈수록 민생 경제는 도탄에 빠져들고 있는데 이들의 무소불위 행태는 그칠 줄을 모른다. 과연 한 차례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질주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에겐 아쉬울 것이 별로 없다. 무슨 짓을 하더라고 세비가 꼬박꼬박 나오니 서민들이 삶이 황폐해지는 것을 알 리가 만무하다.

나라를 위한다는 허울 좋은 시늉만 낼 뿐이지 절박감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다. 당장 코앞에 닥친 배지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그들의 최고 관심사다.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인물이나 조직, 행위나 도덕성까지 변화라곤 찾아볼 수 없다. 법조인, 언론인, 운동권(시민단체) 출신들만 우글우글하다. 대한민국에는 이들 밖에 없나.

지구상 일곱 번째로 ‘30-50 클럽(인구 5000만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에 가입하였다고 샴페인을 터뜨린 지가 엊그제다. 그러나 과연 그 수준에 맞는 국격이나 국민적 자질 혹은 도덕적 잣대를 겸비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지만 행동이 금수보다 못하다면 잘 산다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다. 안이 답답해서 그렇겠지만 한국인들처럼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들도 그리 흔치 않다. 더 넓은 세상에 나가보면 남과 비교를 하게 되고 우리의 현상들을 이해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구촌 어디를 다녀 봐도 우리보다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국일수록 절제와 겸양, 소통과 배려 등의 측면에서 매우 엄격하다. 밤 9시가 지나면 특정 지역을 제외하곤 다닐만한 곳이 별로 없을 정도로 ‘밤 문화(?)’가 없다. 주말에는 특히 한산해 가족 위주의 소박하고 단출한 일상을 보낸다. 한국의 고위 인사들이 선진국에서 국내에서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하다가 봉변을 당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무질서하고 탈법·편법이 기승을 부리는 후진국 여행을 더 선호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 우리 국가 대표단이 북유럽을 다녀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기업들이 동행하였다. 이번 순방에 특히 스타트업들이 대거 동참한 것은 그 지역 국가들의 경제적 특성과 장점을 고려해 구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자주 나가는 것을 놓고 일부의 왈가왈부가 있기는 하나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리 나쁠 것은 없다. 북유럽을 포함한 서유럽 국가들이 현재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성장 동력의 확보다.

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면 성장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고, 추가적인 동력 발굴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때는 마이너스 성장 혹은 1% 내외의 저성장으로 엄청난 시련에 봉착하기도 했다. 이들 경제의 특징은 노키아, 볼보,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ABB 등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간판 기업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간판 대기업에만 의존하던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생존을 위해 치고 나온 것이 스타트업의 육성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유기적으로 연결, 새로운 성장 신화를 만들어가는 현장이기도 하다. 본받는 것은 좋지만 북유럽에 우리 스타트업 거점을 만들기보다 우리 내부에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더 시급한 것 아닌가.

기업만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를 포기하는 사태가 올까 두렵다

제대로 굴러가는 국가들을 보면 소위 지도층 혹은 엘리트라고 불리는 인사들의 냉철한 이성과 자제가 근저에 깔려 있다. 우리 보다 잘 사는 나라들에게는 이러한 미담들로 인해 국가가 흔들리더라도 다시 방향키를 잡아주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최근 영국 보수당의 총리 선출 경선에서 탈락하고도 영국을 매료시킨 남자가 화제가 되고 있다. 46세의 로리 스튜어트 국토개발부 장관이다. 좋은 가문에다 뛰어난 학업 성취를 갖고 있었지만 기득권을 포기하고 최빈국의 황무지와 전쟁터에서 7년간 고행을 자처한 일화가 소개되어 가슴을 찡하게 한다. 특권층이지만 이를 포기하고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부모와 자식들의 사례는 선진국에서 허다하다.

미국 대선 후보까지 지냈던 존 맥케인이라는 베트남 전쟁 영웅이 작년 사망하였지만 그의 일생과 좌우명은 아직도 회자된다. 해군 함재기 조종사로 23번이나 출격하였으며, 급기야 전쟁 포로가 되어 5년 6개월이나 끔찍한 독방 감옥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석방은 되었지만 평생 불편한 몸으로 살았으며, 의무·명예·용기의 신조와 국익을 끝내 버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 기득권들의 삶과는 천양지차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영웅이나 지도자가 없다. 이런 풍토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국내에서도 화제다. 전원 백수의 온 가족이 한 부잣집을 대상으로 기생충처럼 뜯어먹고 사는 것을 그린 영화다. 이해할 수 없는 반전을 통해 비극적 결말로 끝을 맺지만 관람객들의 평가는 상반된다. 가진 자에 대한 반감으로 희열을 느끼는 층이 있는 반면 비인간적이고 기상천외한 스토리 전개에 대해 메스껍거나 찝찝하다는 대조적인 평가도 있는 것 같다.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라는 거대한 덩어리를 두고 우리 사회의 온갖 기생충들이 살점을 떼먹기 위해 서로 이전투구를 하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 볼 일이다. 먼저 먹는 자가 임자라고 그들에게 국가의 체면이나 존재감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품격마저 기대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국가의 위상은 거꾸로 가고 있고, 기업과 국민은 국가를 등지려고 한다. 기업만 외부로 나가는 것이 아니고 국민들마저 국가를 포기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두렵다. 사회 지도층의 추태와 도덕성이 유례없이 심각한 수준이다.